방정배 성균관대 명예교수-전 한국언론학회장
방정배 성균관대 명예교수-전 한국언론학회장

 

밀레니엄은 정보기술(IT) 기반 지식서비스사회로 명명되리만큼 무한정한 정보와 지식이 생산 유통 소비되는 시대다. 이것은 신문 잡지 책 라디오 티비 필림 등 대중매체 시대를 거쳐, 인터넷신문 웹진 네이버 같은 포털, 블로그 트위터 페이스북 같은 사회관계망서비스(SNS), 넷플릭스처럼 인터넷을 통해 볼 수 있는 TV 서비스(OTT), 유튜브 같은 개인 방송 전성시대를 타고넘어 스마트와 모바일폰 등의 디지털매체 지형으로 매체 환경이 격변한 결과다.

매체 소비 관점서 정리컨대 읽는 시대는 가고 영상과 이미지를 보는(viewing)시대가 도래했고, 정보상품을 값 주고(구독료나 수신료) 소비하는 게 아니라 언제 어디서나 무료로 디지털정보를 이용할 수 있게 됐다.

 

정보 홍수 속 고품질 신문의 성공

 

손안에 모바일 핸디 하나만 가지면 뉴스나 정보를 맘껏 소비 가능하다. 그 결과 신문 방송 같은 전통 저널리즘 매체는 구독자 고객을 빼앗겼다. 아니 빼앗겼다기보다 매스 미디어 고객들이 디지털 정보시장으로 대거 빠저 나갔다는 표현이 적합하다. 북적거렸던 대중매체 시장이 썰렁해졌고 신문방송업자들이 파산에 직면하게 된 것이 우리 현실이다. 한국 재벌급 신문들이 종편방송으로 저널리즘 변신을 시도했으나 출범 십수 년 동안 줄곧 수백억원씩 적자경영을 하고 있으니 그건 신문의 갈 길이 분명 아니다.

그렇다면 종이신문의 미래는 없는가. 소생한다면 그 방법과 길은 무엇인가라는 질문에 해답하는 형식으로 신문의 내일을 전망해본다. 우선 저널리즘 매체인 신문 방송이 유튜브 같은 전자통신매체와 구별되는 정체성과 역할을 상실했다. 전자는 사회공익을 목적으로 추구하는 공기(公器)로 존재했고 현재도 미래도 존재 목적이 공익이다. 후자는 자기 선전과 사익을 추구하는 마음대로통신매체다. 사익과 자기 선전에 도움된다면 거짓과 욕설도 쏱아내는 유튜버와 개인방송이 수두룩하다. 페이크(가짜) 뉴스가 많을 수밖에 없다.

신문에 대한 뉴스소비자 고객의 신뢰를 회복하지 않으면, 떠났던 그들이 신문시장으로 결코 돌아오지 않는다. 거짓 보도나 미확인 너절한 정보는 저널리즘 게이트키핑에서 여과되고, 정제되고 확인된 진실정보만 제공해 저널리즘 매체의 구독자 신뢰를 회복하는 과제가 급선무다. 현 언론에 대한 국민 불신도가 72%로 아주 높다. 옥스퍼드대 저널리즘연구소 조사보고에 따르면 한국언론 신뢰도가 28%로서 40개 선진국 중 꼴찌로 나타났다. 허위 과장보도가 인터냇의 페이크 보도 수준으로 저질화했기 때문이다.

정보와 지식의 시뻘건 홍수가 흘러넘치는 디지털미디어 지형에서도 깨끗하고 맑은 샘물을 퍼 올려 공급하듯 심층적 공익정보와 뉴스를 생산 공급해 30만 독자에게 신뢰를 받는, 독일의 SZ와 스위스의 세계적 퀄리티 페이퍼 NZZ의 뉴스 제작 보도는 디지털시대에 신문의 살길을 어렴풋이 제시한다.

두 신문 모두 지방지 성격을 가짐에도 그 큰 구독자층을 확보하고, 구독자들은 월 구독료 각각 35000, 8만원을 지불하면서도 신문정보를 찾아 읽는 데는 그만한 이유가 있다. 인터넷의 홍수정보와는 비교 불허의 고품질이기 때문이다.

하이퍼텍스트(사용자에게 비순차적인 검색을 할 수 있도록 제공되는 텍스트)로 흘러넘치는 디지털 기사가 아니라, 이들 신문의 뉴스 기사 문장은 사건이나 이슈의 전말을 논리적으로 스토리텔링 해주는 심층적 보도 텍스트로 구성된다. 독자는 기사를 대강 보아서는 안 되고, 시간을 가지고(멈춰서) 생각하며 천천히 독해한다. 이렇기에 학부모나 학교 선생은 자녀와 학생들의 사고훈련과 작문 교육에 신문이 필수교재로 사용된다.

 

공적 영역 심층 정보로 승부해야

 

이것은 쉽고 재미있는 인터넷의 하이퍼텍스트에 장시간 탐닉하는 것이 어린이들에게 제한되고, 귀찮고 어려운, 읽고 쓰고 사고하는 교육매체로 적합한 신문 기사 생산을 가능케 한다. 이런 관점서 보면, 신문 독자의 수준 높은 교양과 역사관이 신문의 내일을 결정하고 자라나는 세대의 읽기 문화 증진에 신문이 큰 역할을 담당한다고 할 수 있다.

민주사회의 신문이라면 감시자 및 파수꾼의 역할을 담당해야 한다. 퓰리처는 다리 위에서 교량 밑을 통과하는 국가라는 배가 교각을 들이받지 않고 방향을 제대로 잡고 항해하는지 감시하는 자가 신문이라 했다. 이것은 공동체의 진로를 지시해주는 거시적 관점의 신문 역할을 의미한다. 그래서 정부와 신문 중 하나를 선택해야 한다면 신문을 택하겠다는 제퍼슨 대통령의 명언이 나올 수 있었다.

끝으로 주기성을 태생적 한계로 가진 신문이 비주기적 순간 매체인 인터넷 뉴스와 속보 경쟁하면 필패한다. 신속하고 가벼운 기사가 아니라 무겁고 더뎌도 공적으로 중요한 심층 정보로 승부해야 된다. 그래서 신문과 인터넷은 경쟁이 아닌 보완 매체들이다. 그것이 상생 근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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