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영수 전 특별검사의 딸이 대장동 개발 민간업체인 화천대유로부터 2019~2020년 여러 차례에 걸쳐 11억원을 지급 받은 사실이 새롭게 드러났다. 박 전 특검 측은 화천대유 직원인 딸이 회사로부터 빌린 돈이라고 해명했다. 차용증을 작성한 정상적 대출이라고 주장한다. 연봉 6000만원 정도인 직원이 회사에서 11억원을 빌렸다는 얘기는 상식적으로 납득하기 어렵다.

■화천대유에서 딸 11억원 수수

이상하게도 화천대유와 대주주 김만배씨를 둘러싸고선 이처럼 일반인이 이해하기 힘든 일들이 벌어졌다. 그 혜택은 고위 공직자와 인허가 관련 요직에 있었던 사람들에게 돌아갔다. 곽상도 전 국민의힘 의원이 구속됐다. 대장동 개발 사업의 편의를 봐주고 화천대유에 근무한 아들이 퇴직금 명목으로 50억원을 받았는 내용이 핵심 혐의다.

천문학적 돈거래의 진상을 밝히는 작업이 검찰에 맡겨졌지만 실망의 연속이었다. 초기부터 성남시청 압수수색을 미뤄 비난을 자초했고, 김만배씨랑 전직 검찰 고위 간부와 대법관에게 50억원씩을 제공하기로 했다는 ‘50억 클럽’ 증언을 입수한 이후에도 무기력한 모습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곽 전 의원의 경우 지난해 구속영장을 청구했다가 한 차례 기각당하기도 했다. 검찰 수사가 지지부진한 와중에 지난달 언론에 공개된 김만배씨와 정영학 회계상의 대화 녹취록은 충격적이었다.

두 사람이 유력 인사들에게 50억원 씩 나눠주는 논의 내용이 적나라하게 드러났다. 박 전 특검과 권순일 전 대법관 등 6명의 이름이 등장했다. 2020년 3월 이뤄진 대화에서 김씨가 아들의 이름을 거론하면서 “50개(억)가 몇 개냐”고 묻자 청 회계사가 “50, 50, 50, 50, 50, 50이면 300(억원)”이라고 답했다. 물론 녹취록에 나왔다고 무조건 수사를 강화할 필요는 없다. 그러나 신비성을 더 하는 정황이 밝혀진 경우엔 신속하고 과감한 수사로 진실을 밝히는 게 상식이다.

박 전 특검은 딸의 11억원 대출 이외도 딸의 대장동 아파트 분양 등 석연치 않은 사안이 이어지고 있다. 그런데도 검찰은 박 전 특검을 소환 조사했을 뿐이다. 권 전 대법관도 마찬가지다 그는 2020년 9월 퇴임한 뒤 화천대유 고문으로 활동하며 많은 보수를 받았다.

이재명 후보 공직선거법 위반 사건 상고심을 전후해 김만배씨가 권 전 대법관의 사무실을 여러 차례 방문한 사실이 밝혀져 재판거래 의혹까지 제기한 상태다. 검찰은 대법원에 대한 압수수색 영장을 두 차례 기각당한 뒤 돌파구를 찾지 못하는 건지, 의지가 없는 건지 수사에 진전이 없다. 박 전 특검 측은 특혜가 없었다고 해명하고 있다. 이 아파트는 “법규에 따른 가격으로 정상 분양” 받았고, 11억원은 “차용증을 작성하고 정상적으로 대출” 받았다는 것이다. 하지만 화천대유가 30대였던 2016년에 직원으로 입사한 딸에게 5년간 이런 거액을 지급했다는 것은 상식적으로 납득하기 어렵다.

■전관 법조인들 비리 의혹 한 축

또 박 전 특검은 화천대유에서 월 1500만원을 받으면서 8개월간 고문을 지냈고, 박 전 특검의 계좌를 통해 화천대유에서 5억원이 송금됐다. 박 전 특검은 대장동 개발업자들이 부산 저축은행에서 대출받을 때 알선한 혐의로 재판을 받은 조모 씨의 변호를 받았고, 박 전 특검의 인척은 화천대유의 아파트 분양을 대행하며 김씨와 100억원대의 돈거래를 했다. 이 모든 걸 우연의 일치라고 할 수 있을까. 그런데도 박 전 특검과 관련한 검찰의 수사는 지지부진하다.

검찰은 박 전 특검에 대해 압수수색 등 강제수사를 하지 않았고, 박 전 특검 딸과 화천대유 간의 자금 거래 내역도 지난해 10월 확보했지만 아직 돈의 성격을 규명하지 못했다. 대장동 게이트는 전관 법조인들이 비리 의혹의 중요한 한 축이고, 박 전 특검은 그 중심인물 중 한 명이다. 박 전 특검의 혐의를 규명해 밝히지 못하고서는 검찰이 대장동 사건을 제대로 수사했다고 할 수 없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