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노찬 편집위원
안노찬 편집위원

[5차산업경제 안노찬 편집위원] 얼마전 동네 마트에 들러 물건들을 살펴보던 중 때 미는 타올에 붙어 있던 문구를 보고 웃음지었던 기억이 있다. 언어학을 전공했던 경험으로 갑작스레 ‘시간의 때’ 와 ‘우리 몸에서 나오는 때’ 의 어원이 궁금해 졌다. 아마도 우리는 동음이의어(homonym)로 관련없다는 정의를 내릴 수 있겠지만 우리 몸에서 나오는 때는 우리의 피부가 수명을 다하여 벗겨져 나온 결과물일 것이다. 한 때 그 피부층도 탄력있었고 외부 바이러스로부터 힘차게 우리 몸을 보호하기위해 사력을 다해 싸웠을 것이라 생각하니 갑자기 짠한 생각이 들었다.

음식을 소화한 결과물이 우리의 배설물이다. 우리는 일반적으로 배설물은 더럽다고 생각한다. 그 배설물이 한때는 싱싱했던 곡식이었고, 과일이었으며 맑은 물이었을 것이다. 소화의 결과물이다. 그런데 그 소화의 결과물인 배설물이 또 다시 토양을 비옥하게 만드는 또다른 에너지가 된다는 삶의 순환(Circle of Life)의 원리를 잊고 살고 있다.

필자의 부친이 직장암으로 소천하기 전 배변의 고통과 직장 절제 후 고통스러워 하는 모습을 어린 시절 지켜 봤다. 결국 배설을 잘하는 것이 얼마나 감사한 일인지 모른다. 가까운 지인이 자신은 아침마다 변기에서 건강한 배설물을 보며 자랑스러워 한다는 말이 이해된다.

기업이 성장만을 하고 나눔을 하지 못하는 것, 지구가 너무 많은 배설물로 병들어 가고 있는데 방치하는 것, 일반 국민들이 고통받고 있는데 삶의 도덕과 윤리에 무감각한 지도자층 역시 순환의 문제를 지적하는 것이며 학문적으로 표시해 ESG(En ironmental, Social, Governance)라는 이름으로 지금 경제에 적용되고 있는 것이다.

에너지와 생명을 잃어가면 추하고 더럽다고 생각하는 것은 사람에게도 적용된다. 그래서 사람들은 얼굴에 주름이 지고 피부가 처지고 머리색이 백발이 되는 것이 두려워 자꾸 여러 모양으로 감추려 한다.

시간에는 자연스럽게 흘러가는 물리적인 시간인 크로노스(Chronos)의 시간이 있다. 현대인이 자주 느끼는 만성피로를 chronic fatigue 라고 한다. 시간의 흐름대로 써내려간 기록 ‘연대기’ 를 chronicle 이라고 하는 것도 어원이 같다.

상대적으로 카이로스(Kairos)의 시간이 있다. 그리스의 신화에서 나오는 기회의 신인 카이로스는 앞에 머리카락이 무성한데 뒤통수는 대머리인 신이다. 기회를 앞에서 발견하면 머리채를 잡아채 쉽게 잡기 위함이며 기회를 뒤에서 발견하면 잡기 어렵게 만든 까닭이다. 따라서 카이로스는 기회의 시간으로 우리 삶에서 가끔씩 다가오는 삶의 기회를 말한다.

하지만 삶의 기회란 것은 크로노스의 시간속에 꾸준히 기회를 찾으려는 하루하루의 노력이 쌓였을 때 그 순간이 다가옴을 느끼는 통찰력을 갖게 된다. 하루하루를 선물이라 생각하고 최선을 다하고 소중히 여기는 자에게 카이로스는 앞머리카락을 보여준다. 시간이 흐르는 대로 방치하는 사람들은 먼 훗날 그것이 기회의 시간이었음을 느끼거나, 느끼지 조차 못하기도 한다.

우리가 몸에서 나오는 때 역시 시간의 결과물이듯 우리 사업의 실패, 질병, 고난 등도 우리 삶의 시간의 결과물이다. 하지만 그러한 눈에 보기에 좋지 않아 보이는 결과물들을 어떻게 받아들이는지에 관한 삶의 태도에 따라 삶의 가치가 달라진다. 그 역시 내가 투자했던 관리했던 삶의 결과물로 내 삶의 자양분으로 써야만 크로노스의 시간을 늘리고 카이로스의 시간을 발견할 확률이 높아진다. 그러므로 우리 몸에서 나오는 ‘때’와 인생의 기회의 ‘때’는 시간의 결과물이라는 의미에서 동의어(?)라는 필자만의 주장이다.

코로나 팬더믹을 통해 경기가 둔화되고 국민의 삶의 질이 떨어져 있지만 하루의 삶에 대한 감사와 건강한 삶의 태도를 가지고 단 한명의 고객이라도 더 만나 보려는 노력, 단 한 건의 계약이라도 더 이뤄보려는 노력이 지금 이시기에도 앞머리를 휘날리며 내 옆을 지나고 있는 카이로스를 볼 수 있도록 해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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