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류창고가 건축법상 창고로 분류되는 법의 사각지대 악용
안성물류 센터 참고해 기존 센터도 개선 가능하지만 핑계만 더해져

사진=쿠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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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리아데일리 정다미 기자] 장마가 끝나고 본격적인 찜통 더위가 시작됐다. 전국이 연일 30℃를 웃도는 무더위가 이어지는 가운데 온열 질환에 대한 걱정도 늘어간다. 특히 쿠팡 등 물류센터 근로자들의 시름이 깊어지고 있다.

27일 질병관리청에 따르면 지난 25일 기준 온열 질환자가 885명 발생했고 이 중 7명이 사망했다. 이는 전년 대비 160명이 늘어난 것이며, 지구온난화의 영향으로 앞으로도 늘어날 전망이다. 2020년 응급실 온열 질환 감시체계를 봤을 때 온열 질환자는 총 1078명으로 이 중 작업장에서 발생한 경우가 35.1%에 이른다. 산업재해 통계와 비교했을 때 10배가량 많은 것으로 실제 근무 중 온열 질환을 겪는 사람이 누락되는 부분이 많은 것을 알 수 있다.

쿠팡대책위원회는 물류센터에서 24시간 노동이 이뤄지기 때문에 단순히 물건을 적재하고 보관하는 창고 시설로 분류돼서는 안 된다고 강하게 주장하고 있다. 법이 적용되지 않다 보니 시설 내의 온도와 습도, 환기시설 등에 대한 기준 자체가 없으며 이를 사측에서 점검하고 관리할 의무 또한 없기 때문에 매년 온열 질환 사고가 발생하는 것이라고 봤다.

국내 플랫폼 유통 업계를 이끌고 있는 쿠팡이 미온적인 대처가 아닌 노동자와 국민들이 납득할 수 있는 대책을 내놓을지, 여느 해처럼 여러 핑계와 시간 끌기로 올 여름을 넘어갈지 지켜봐야 한다.

산업안전보건법, 산업안전보건기준은 실제 고온 환경에서 근무하는지 여부가 아니라 옥외 작업 또는 고열 작업으로 명시된 경우에만 하위 규칙들이 적용된다. 물류센터의 경우 실내이며 고열에 직접 노출되는 것이 아니라 해당 규칙들의 적용을 받지 못한다.

특히 건축법상 ‘창고 시설’로 분류돼 ‘기계설비법’의 적용도 받지 못해 그 피해가 더욱 크다. 2020년 제정된 ‘기계설비법’은 냉난방설비, 공기조화설비 등 기계설비의 기술기준을 상세하게 정하고 이를 준수했는지 확인‧점검하도록 돼 있다. 다만 창고 시설의 경우 이 같은 법의 내용이 적용되지 않는다. 쿠팡 물류센터보다 규모가 훨씬 큰 자동차나 조선 업계의 실내 작업장의 경우 해당 법의 적용을 받으며, 근무 중 온열 질환을 걱정하지 않아도 될 정도의 냉난방 시설이 제공되고 있다.

이러한 법의 사각지대로 인해 물류센터 노동자는 야간 작업, 장시간 중노동에 더해 폭염, 한파 등의 피해도 고스란히 받을 수밖에 없다.

권영국 쿠팡대책위원회 대표(가운데)가 지난 26일 오후 국회의원회관에서 열린 ‘폭염 시기 노동, 온열병 예방을 위한 대책이 필요하다’ 토론회를 진행하고 있다. / 사진=정다미 기자
권영국 쿠팡대책위원회 대표(가운데)가 지난 26일 오후 국회의원회관에서 열린 ‘폭염 시기 노동, 온열병 예방을 위한 대책이 필요하다’ 토론회를 진행하고 있다. / 사진=정다미 기자

쿠팡에서는 휴게실에 에어컨이 있으며, 개방형 대형 물류센터 맞춤형 냉방을 가동 중이라고 해명했다. 얼린 생수도 무제한 지급하며 아이스크림도 무료 제공 중이며, 기상 상황에 따라 유급 휴게 시간도 추가 부여 중이라고 전했다. 안성센터를 예로 들어 근로자 개인 전용 냉난방 겸용 공조기를 통해 20도 이하의 온도를 유지 중이다고 밝혔다.

쿠팡대책위원회는 쿠팡이 고용노동부 지침에 따라 폭염경보 때 15분의 휴식을 부여하지만 그 시간이 매우 짧아 현실적으로 작업장에서 휴게실을 왔다 갔다 하면 휴게 시간이 끝나는 점을 지적했다. 또 실제 근로자들의 체감 온도가 아닌 실외 기온을 기준으로 한 폭염경보로 휴게 시간이 부여되는 것이 현실적이지 않다고 봤다. 이들은 쿠팡 측에서 “안성 물류센터를 시작으로 전국 물류센터로 확대해 나갈 방침이다”고 대대적으로 홍보한 내용을 지킬 것을 촉구했다.

권영국 쿠팡대책위원회 대표는 지난 26일 오후 국회의원회관에서 열린 ‘폭염 시기 노동, 온열병 예방을 위한 대책이 필요하다’ 토론회를 진행하며 “쿠팡은 안성센터를 대대적으로 홍보하고 있다. 이처럼 가능한데 왜 안 하는 것인가. 아이스크림을 주고 있다고 하지 말고 어떻게 해서 온도가 얼마나 떨어졌다는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고 말했다.

쿠팡은 지난해 매출 284억637만달러를 기록했다. 한화로 환산하면 22조가 넘는 금액이다. 전년 동기 대비해 54% 증가했으며 이는 유통업체 평균 매출 증가율이 15%에 그친 것과 비교해서도 압도적이다, 2014년과 비교했을 때는 무려 60배가 치솟았고, 2010년 창사 이래로 최대 매출을 기록했다.

적극적인 투자로 매년 적자폭도 줄어들고 있다. 올해 1분기에는 매출 51억1668만달러(약 6조5212억원)를 기록해 역대 최대 분기 매출 기록을 세웠다. 같은 기간 영업 손실도 지난해 동기 대부 29% 감소한 2억929만달러(약 2667억원)로 상장 이후 가장 낮은 수치를 모였다. 쿠팡은 올해 1분기 기준 34억달러에 이르는 현금성 자산을 보유하고 있고, 활성고객 또한 늘어 성장 전망이 밝은 것으로 분석된다.

쿠팡은 전국을 ‘쿠세권’으로 만들기 위해 물류센터 구축에 막대한 투자를 진행하고 있다. 현재 전국 400만㎡(약 121만평) 부지에 100곳의 물류 센터를 보유하고 있으며, 1조원을 투자해 6곳의 물류센터를 추가할 계획이다.

사진=쿠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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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기존의 물류센터를 개선하는 작업에는 소극적인 모습을 보인다. 막대한 비용이 든다는 이유에 더해 물류센터로 이용되는 건물을 임대해서 사용하는 것임으로 시설 개선이 어렵다는 것이다. 쿠팡 물류센터에서 근무하는 한 참석자는 “사업주가 노동자와 대화할 자세가 돼 있는지가 문제다. 휴식시간 부여는 사업주 마음대로 가능하지만, 항상 법 핑계다. 사업주가 노동조합을 하나의 인간으로 바라보면 할 수 있는 것들을 안 하고 있다. 그것이 노동자를 가장 아프게 하는 점이다”고 꼬집었다.

지난 주말 진행된 ‘에어컨 로켓배송 도보 행진’에 함께 한 정의당 류호정 의원은 토론회에 참석해 “온열 질환 대책 마련은 더워질 때쯤 논의가 시작돼 더위가 꺾일 때 사그라드는 행태가 반복되고 있다”며 “물류센터 내부가 바깥보다 더 덥다. 밤에도 덥고 습한 사우나다. 사우나에서 오래 버틸 수 있게 말고, 사우나가 아닌 곳에서 일할 수 있게 해달라는 것이다”고 덧붙였다.

쿠팡 물류센터 근무자는 “고양 센터의 경우 35~36℃에 이른다. 더워 죽겠어서 온도를 떨어트려 달라고 꾸준히 얘기하지만 바뀌지 않는다. 모든 물류센터 노동자가 힘들다”며 “물류센터의 경우 일용직이 60% 정도다. 하루를 일해도 존중받는 일터가 모토다. 이를 위해서 개선이 필요하다”고 호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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