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즈상 수상 뒤 영상으로 기자간담회 열어 수상 소감 발표
제2의 허준이 나오려면…"수학자들 장기 프로젝트 연구 환경 제공돼야"

[정다미 기자] 수학자 최고의 영예인 '필즈상'을 받은 허준이 미국 프린스턴대 교수 겸 한국고등과학원 석학교수가 지난 6일 "우연의 우연을 거듭해서 정답으로 귀결되는 과정이 신기하고 개인적으로 소중한 추억이 됐다. 끊을 수 없는 중독성이 수학의 매력"이라고 소감을 피력했다.

이날 허 교수는 서울 강남구 소재 한국과학기술회관에서 열린 2022 필즈상 수상 기념 영상 기자브리핑에서 이같이 밝혔다. 

수학자 최고의 영예인 필즈상을 수상한 허준이 미국 프린스턴대학교 교수 겸 한국고등과학원 석학교수와 금종해 대학수학회장이 지난 6일 서울 강남구 한국과학기술원에서 열린 수상기념 기자간담회에서 영상으로 기자들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수학자 최고의 영예인 필즈상을 수상한 허준이 미국 프린스턴대학교 교수 겸 한국고등과학원 석학교수와 금종해 대학수학회장이 지난 6일 서울 강남구 한국과학기술원에서 열린 수상기념 기자간담회에서 영상으로 기자들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수상 사실 언제 알았나

"필드상 수상 소식은 올해 초에 처음 들었다. 좀 묘한 시간대에 국제수학연맹(IMU) 회장님이 전화 통화를 요청하셔서 혹시 필즈상 말씀을 하시려고 그러는 건가라고 큰 기대를 안고 전화를 받았는데 그 소식이 맞더라고요. 밤 시간대이기도 하고 아내는 자고 있는 중이라서 얘기를 아내한테 지금 깨워서 해야 되나 말아야 되나 고민하고 있다가 한 10분 정도 고민하다가 깨워서 했다. 그랬더니 아내는 "그럴 줄 알았어"라고 하고 바로 다시 자더라고요."

-수학 난제를 해결한 비결과 중요 연구를 꼽는다면

"열 손가락 중에 어느 손가락을 더 좋아한다고 말하기 힘든 것처럼 제가 했던 연구는 다 제가 애정을 가지고 있는데요. 대부분의 연구가 공동 연구로 진행되고 각각의 연구마다 같이 일한 연구자들이 다르거든요. 한 명과 여러 번 공동 연구를 진행한 적도 있긴 하지만 연구 하나하나마다 제 나름대로 돌이켜 보면 추억 속의 앨범을 보는 것처럼 소중한 경험이라서 뭐라고 하나를 꼽기는 힘들 것 같습니다."

-미국 뉴욕타임즈에서 인터뷰 중 언급하신 내용 중에 유년 시절에 보드게임, 컴퓨터 게임, 체스 등을 즐긴 것이 수학적 사고의 도움이 된 것 같다고 언급하신 부분이 있다. 구체적으로 어떻게 도움이 됐나

"수학적 사고에 도움이 될 것 같다라고 말씀드렸던 거는 아닌 것 같고요. 제가 학창 시절에 과목 중 하나로 수학에는 이런저런 이유로 크게 정을 붙이지 못하고 있었는데 게임이라든가 퍼즐 같은 데 논리적 사고력을 요구하는 그러한 종류의 문제들이 많이 있잖아요. 그런 것들에 자연스럽게 끌리는 면이 있었다는 점을 말씀드리고 싶었던 문맥에서 했던 말인 것 같습니다."

-한국 교육에서 만족스러웠던 부분 그리고 다른 나라와 비교한다면.

"저는 사실 한국에서만 교육을 받아봤기 때문에 다른 비교 대상이 마땅치 않아서 한국 교육이 다른 나라의 교육에 비해서 어떨지는 모르겠는데 개인적으로는 굉장히 따뜻하고 만족스러운 유년 시절을 보냈다고 생각해요. 다른 나라도 그런 경우가 많이 있겠지만 특히 초중고 때에는 굉장히 다양한 종류의 친구들과 한 반에 40~50명씩 모여가지고 하루 종일 생활을 같이 하면서 서로를 알아가는 과정이 있습니다. 좋은 때도 있고 싸울 때도 있고 했지만 지나고 돌이켜보면 지금의 저로 성장하는 데 있어서 자양분이 된 수많은 경험을 제공해 준 소중한 시기였다고 생각이 드네요."

-수포자라고 들었는데 국내 최고 대학인 서울대에 입학했다.

"어느 인터뷰에서 초등학교 2학년 때 구구단을 외우는 것을 굉장히 힘들어 해 부모님이 많이 좌절하셨다는 얘기를 했더니 기사 제목이 수포자로 나와가지고 그렇게 된 거다. 사실 수포자였던 적은 없다. 수학 성적이 좋았을 때도 있고 좋지 않았을 때도 있지만 항상 중간 이상은 했기 때문에 수포자라고 말하기에는 조금 힘들다. 특히 고등학교부터는 수학을 굉장히 재미있어 하기도 했고 열심히 해서 충분히 잘했기 때문에 수포자라고 하기에는 적절하지 않다."

-물리학과를 가시게 된 이유는 무엇인지도 얘기해 달라

"제가 가장 열정을 가지고 있었던 거는 글쓰기였거든요. 그래서 글쓰기, 특히 그중에서도 제가 가장 좋아하는 장르였던 시를 쓰는 삶을 살고 싶다는 게 당시 꿈이었어요. 하지만 조금씩 머리가 굵어지면서 실제로 어떤 걸로 맞벌이를 하며 살 수 있는가를 생각해 봤더니 제 글쓰기 재능이나 실력 가지고는 어림도 없는 것 같더라고요. 그래서 현실적으로 가능하고 제가 적당히 만족하면서 살 수 있을까를 생각해 봤을 때 과학저널리스트를 하면서 살 수 있지 않을까 싶어서 그에 적합하다고 생각한 물리천문학과에 진학했다."

-한국 수학계에서 제2의 허준이가 나오기 위해서 우리나라 교육에서 변하거나 보완됐으면 좋은 부분은 무엇이라고 보나?

"지금 너무나 젊은 수학자분들이 잘해 주시고 계시기 때문에 저도 그중에 하나인 거지, 저 같은 사람이 또 나오기 위해서 어떻게 해야 되는가를 말씀드리기는 껄끄러운 면이 있는데요. 젊은 수학자들이 부담감을 느껴서 단기적인 목표를 추구하지 않고 마음 편하게 자유롭게 즐거움을 쫓으면서 장기적인 큰 프로젝트를 추진할 수 있을 만한 여유롭고 안정감 있는 연구 환경이 제공되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입니다."

-수학은 매력은 뭘까요

"특히 현대 수학에 있어서 공동 연구가 굉장히 활발해졌는데, 그 이유는 다른 무엇보다도 혼자 하는 것보다도 다른 동료들과 함께 생각하는 것이 훨씬 더 효율적이기 때문이죠. 그리고 멀리 갈 수 있고 깊이 들어갈 수 있기 때문에 그런데요. 그런 효용성 측면뿐만 아니라 그러한 과정을 거치는 경험이 수학 연구자에게 있어서 큰 즐거움을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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