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땅에 꽂은 팽나무 지팡이가 살아나면 급제한 줄 알아요"

선비가 죽자 처녀도 함께 팽나무에 기대서 죽어
동네는 재앙에 휩싸이자 팽나무로 당산제 지내

 당산 나무로 팽나무를 모시게 된 연원에 대해서는 다음과 같은 전설이 전해 내려오고 있다. 지금으로부터 600여 년 전 대리 마을에 김초시의 딸과 홀어미를 모시고 사는 이웃의 젊은 선비가 부모 몰래 혼약을 했다. 젊은 선비가 서울로 과거를 보러갈 때 처녀는 자기의 이름을 수놓은 손수건을 정표로 주었다.

 이에 선비가 팽나무 지팡이를 땅에 꽂으면서 이 지팡이가 살아나면 내가 급제해 돌아올 것이니, 그때까지 기다려 달라고 하고는 서울로 떠났다. 그런데 마을 무당이 처녀를 짝사랑하는 부잣집 청년을 위해 자객을 시켜 젊은

 선비를 한 고갯길에서 죽여 버리고 말았다.

선비의 죽음도 모르고 처녀는 지팡이가 살아나기만을 매일 기원하였다. 처녀의 간절한 기원으로 지팡이는 살아나 순이 돋고 잎이 났다.

 처녀는 선비를 만날 기쁨으로 매일 팽나무를 보살피며 삼년을 보냈다. 그러다가 마침내 선비가 이미 죽었다는 비보를 접하고는 그날부터 식음을 전폐하고 팽나무 곁을 떠나지 않다가 나무에 기댄 채 죽고 말았다. 

처녀가 죽은 자리에서 또 한 그루의 팽나무가 생겨나더니 원래의 팽나무와 붙어서 쌍나무가 되었다. 그리고 처녀의 원한으로 내리 3년간 마을에 화재가 수없이 나고 가뭄과 홍수와 병마가 온 동네를 휩쓰는 등 재앙이 끊이지 않았다.

마을 사람들은 억울하게 죽은 남녀의 명혼식(冥婚式)을 치러 주고 팽나무를 당산 나무으로 정하여 당산제를 지내니 마을에 내리던 재앙이 사라졌다고 한다. 

1949년 5월에 제당을 건축하였으며, 1969년에 중수하였다. 그 후, 제당을 관리하던 오지영[여, 부산광역시 서구 동대신동 3가]이 신의 계시를 받고 사재를 들여 1987년 5월 26일에 제당을 개축하여 오늘날에 이르고 있다.

163.7㎡[49.6평, 앞면 10.7m, 옆면 15.3m]의 대지에 두 제당이 있는데, 산신당의 면적은 2.75㎡[0.8평, 앞면 187㎝, 옆면 147㎝]이며, 서북쪽을 향해 있다. 기와 맞배지붕에 돌로 벽을 쌓았으며, 문은 여닫이 외짝 알루미늄 새시로 되어 있다. 고당 할매당의 면적은 13.6㎡[4.1평, 앞면 490㎝, 옆면 278㎝]이며, 서북쪽을 향해 있다. 기와 팔작지붕에 벽은 돌로 쌓았으며, 여닫이 외짝 알루미늄 새시 문이 달려 있다.

산신당의 제단[앞면 103㎝, 옆면 34㎝, 두께 10㎝, 높이 72㎝]은 슬래브(slab) 형으로 되어 있으며, 제단 위에는 ‘금정산제당령신지위(金井山祭堂靈神之位)’라 쓴 나무 위패[가로 9㎝, 세로 27㎝, 두께 0.8㎝]와 산신도[가로 41㎝, 세로 71㎝]가 있다. 고당 할매당의 제단[앞면 411㎝, 옆면 52㎝, 두께 7.5㎝, 높이 68㎝]도 슬래브 형이며, 제단 위에는 ‘금정산고당령신지위(金井山姑堂靈神之位)’라 쓴 나무 위패[가로 9㎝, 세로 27㎝, 두께 0.8㎝]와 흰 고깔을 쓴 삼불제석도[가로 41㎝, 세로 71㎝]가 있다.

산신당 바로 뒤에 당산 나무인 팽나무[1982년 11월 4일 천연기념물 제309호로 지정]가 서 있고, 두 제당의 왼쪽에 300여 년이 된 소나무 두 그루가 서 있으며, 주위에는 높이 127㎝의 돌담이 직사각형으로 둘러쳐 있다.

제관을 제주라 칭하는데, 정초에 대[竹]를 잡아 선정한다.

 정월 초이튿날 동네의 청년들이 모여 꽹과리와 징을 울리며 큰 대를 앞세우고 제당에 가서 고당 할매당의 문을 열고 절을 하면서 “고당 할매가 올해 편히 계실 곳을 정해 주셔야 하겠습니다.” 하면 대가 끝으로부터 떨리기 시작하며, 그 떨림이 차차 밑으로 내려오면 다시 “고당 할매가 앞을 서셔 가르쳐 주십시오.”라고 한다. 

그러면 대의 끝이 앞으로 움직이는데, 이때 재빨리 마을로 향한다. 그러면 대 끝이 제주가 될 집으로 향한다고 한다.

제주로 선정된 집에서는 상에다가 촛불을 켜고 정화수 세 그릇을 떠 놓고 맞이한다. 제주가 절을 하며 “고당 할매 오신다고 수고가 많았습니다. 

방안으로 들어가서 좌정하십시오.”라고 말한다. 그러고 나서 대를 물리고 그곳에 정화수 세 그릇과 촛불을 켜 두고 그 때부터 6개월 간 몸가짐을 조심하며 금기 생활에 들어간다. 제관에 대한 보수는 없다.

예전에는 산신에게 생 돼지고기를 바쳤으나 요사이는 익힌 돼지고기를 바치며, 그 나머지 산신제와 고당 할매제의 제물과 진설 및 절차는 일반 가정의 기제사와 같다.

 옛날에는 산신제에 사용한 돼지고기는 제의가 끝나더라도 그대로 제단에 두었었다. ‘산신제→ 고당 할매제→ 시석제→ 목신제’의 순서로 지냈다. 시석제는 고당 할매당 앞에서 잡신을 대접하기 위해 산신제, 고당 

할매제에 쓴 제물을 조금 떼서 지내고, 목신제는 종이에 밥을 싸서 바치는 것으로 제의를 대신한다. 제의가 끝난 뒤에 동네 사람들이 모여 음복을 한다.    [삼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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