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녀가 아버지 성씨를 우선해서 따르도록 한 부성 우선주의는 대한민국의 고질적인 가부장제의 잔재로 꼽혀왔다. 하지만 정부는 ‘부성 우선주의 원칙’을 폐기하려는 계획을 사실상 백지화했다. 법무부는 개정 계획을 중단에 대해 '대안이 마련되지 않은 상태여서 법 개정 작업이 2025년 이후로 늦춰질 수 있다'고 설명한다. 또한 개정 계획 발표 이후 이 사안과 관련해 공청회나 토론회를 한 적이 없고, 올해 안에도 할 계획이 없으며 국민적 합의가 이뤄지면 법 개정 작업에 나서겠다고 덧붙였다.

민법 781조1항은 “자녀는 부의 성과 본을 따른다”라고 규정돼 있다. 다만, 부모가 혼인신고를 할 때 모의 성과 본을 따르기로 협의한 경우에는 아이에게 엄마 성을 물려줄 수 있다. 혼인신고서를 제출할 때 ‘자녀의 성·본을 모의 성·본으로 하는 협의를 했는가?’라는 조항에 ‘예’라고 기재했어야 한다. 그렇지 않았을 경우 아빠 성을 따른 뒤 법원에 성·본 변경 허가를 청구하거나, 서류상 이혼한 뒤 다시 혼인신고를 하면서 해당 조항에 동의해야 하는 번거로움이 있었다. 태어나지도 않은 아이의 성을 출생신고가 아니라 혼인신고를 할 때 결정하도록 명시돼 있어, 관련 제도 개선의견이 제기돼 왔던 터였다.

여성가족부는 현행 부성 우선주의 원칙이 미혼모 자녀 등 다양한 가족 자녀에게 차별과 불편을 야기할 수 있어 법 개정이 필요하다고 했다. 아버지 성을 우선적으로 따르게 하는 현행 방식이 아니라, 자녀 출생신고 시 부모가 협의하여 부 또는 모의 성을 따를 수 있도록 하는 ‘부모협의 원칙’으로 전환하겠다는 뜻이었다. 하지만 1년 만에 계획이 뒤집혔다.

부성 우선주의 폐기 방침은 2020년 12월 관계부처 합동으로 발표한 ‘제4차 저출산·고령사회 기본계획’에도 담겼다. 법무부 산하 ‘포용적 가족문화를 위한 법제개선위원회’도 부성 우선주의 원칙 폐기를 권고한 바 있다.

가부장제는 한국의 발전을 저해하는 가장 큰 요인으로 지적돼왔다. 더욱이 결혼 형태가 다양해진 시대에 여전히 구태의연한 법 조항이 호적이라는 이름 아래에서 갈 길을 잃고 있다. 여전히 부의 혈통이나 혈연에 종속돼 출생을 숨겨야 하고 미래가 불안하다면 피해는 누구의 몫일까. 더 이상의 관계 지속을 할 이유가 없는데도 법 조항이 한 사람의 인생 위에 군림해서는 안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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