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적 지위와 경제적 자산까지 자신들의 격에 맞는 끼리끼리 심리 발현

[코리아데일리 이주옥기자] 자본주의 사회에서 사는 동네와 아파트는 이 시대의 또 다른 계급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들이 지닌 부와 능력을 1차 적으로 볼 수 있는 조감도와 같기 때문이다. 언젠가 대한민국 부자들만 산다는 아파트 로비에 자녀 매칭 프로젝트 공지가 붙었다는 뉴스가 있었다. 자본주의의 또 다른 단면을 보는 것 같아 흥미로웠다. 한편으로는 자녀들의 안심형 짝을 찾아주고 싶은 부모들의 지극한 사랑의 공표인 것 같아 이해되는 부분이었다. 같은 아파트 주민끼리의 혼사는 우선은 믿고 보는 보증수표일 수밖에 없다. 그것도 아파트 부녀회 주최였다니 확고한 의지가 깔린 공식적인 행사였다.

혼인은 인륜지 대사에다 사랑하는 자식의 장래가 걸려있는데 신중을 기하는 자세는 나무랄 것 없다. 무엇보다 비혼이나 저출산이 걱정되는 시대에 이런 적극적인 자세는 국가적으로도 고무적인 일이기에. 하지만 씁쓸함을 감출 수 없다. 한편에 도사리고 있는 ‘끼리끼리 어울리자’라는 옵션이 슬그머니 보였기 때문이다.

언제부턴가 혼인은 끼리끼리라는, 일종의 계급 상징으로 변질됐다는 것을 여러 사례를 통해서 실감한다. 어쩌면 자녀 혼처를 자신이 사는 고급 아파트 단지에서 찾는 발상의 전환은 지극히 영리한 것이리라. 하지만 말 그대로 결혼은 하나의 영혼과 영혼이 맺어지는 일이다. 나이 찬 남녀가 만나 한 가정을 이루는 것이 기본이지만 더 나아가서는 한 집안과 집안이 맺어지는 일이기도 하다. 한번 맺어지면 50~60년 이어지는 인연이기에 단순하게 감정만 가지고 선뜻 추진할 일은 아니다. 오죽하면 결혼을 비즈니스라고 표현하겠는가. 공지에 붙은 프로젝트라는 단어가 적절하다는 생각도 든다.

내 자식이 살아가면서 물리적이든 정신적이든 부족하고 고통스럽지 않게 하려는 것은 부모들의 본능이다. 저울에 달아 어느 쪽으로도 기울거나 손해 보지 않는 짝을 찾아주는 것도 부모의 의무 중 하나일 테다. 하지만 삶이 어디 계획하고 도모하는 대로 흘러가던가. 결혼은 어느 누구도 관여하거나 대신해 줄 수 없는, 순전히 성인 남녀가 구상하고 끌어가는 영역이기에 일련의 현실이 씁쓸할 따름이다.

동질혼. 소득, 학력, 사회적 지위 등에서 비슷한 조건과 배경을 가진 사람들끼리 결혼하려는 경향을 말한다. 자신들의 리그에서 ‘끼리끼리’ 하는 결혼을 통해 안정적인 생활을 영위하고자 하는 욕망. 젊은이들에게도 아무런 조건 없이 ‘운명적인’ 사랑에 이끌려 결혼에 골인하는 것은 비현실적이고 무모한 일이라는 인식이 이미 뿌리 깊다. 그러다 보니 사회적 지위와 경제적 자산까지 자신들의 격에 맞는 끼리끼리 만나 안전하게 살 수 있는 바탕을 부모가 마련해 줌으로써 사회적 물리적 안전성을 유지하려는 것이다. 사회적 관계나 현실에서 파생된 것이 동질혼이라 해도 조금은 삭막하면서도 자괴감이 느껴지는 단어인 것은 사실이다.

배우자 간 사회적 경제적 격차 변화와 저출산 대응 방안에 동질혼은 지난 2015년 이후 거의 90%에 육박한다고 한다. 우리 사회의 경직성을 단편적으로 나타내는 현상이며 여전히 불평등한 사회가 존재한다는 증거다. 또한 분석 과정에서 나타난 계층 이탈이라는 단어가 새삼스럽게 이 시대의 실질적인 계층 실상을 확인시켜 준다. 가장 주관적인 판단과 잣대가 필요한 결혼마저도 부모가 재단하는 대로 살아가고 부모에게 의지하는 이 시대의 젊은이들에게 과연 제 몫의 인생이란 있긴 할까.

세상은 섞이고 나뉨으로써 재분배된다. 결혼으로 인해 집안과 개인들이 합해져서 또 다른 평등한 사회와 문화가 형성된다고 할 수 있다. 결혼이란 적당한 짝으로 시작되지만 그 결혼이 정상적인 범위 안에서 순조롭게 이어지는 것은 다분히 개인의 몫이라고 생각한다. 부모가 마련해 준 부드러운 융단을 바탕에 깔고 평생을 꽃길만 가면 좋겠지만 삶에는 이러저러한 문제와 고통이 닥치게 마련이다. 부모의 영역 밖에서 철저하게 독립하여 개척해 나가야 하는 것이 결혼생활인만큼, 그들도 그들만의 리그에서 온전한 독립체가 되어 치열하게 한 세상 살아내야 하지 않겠는가. 끼리끼리 만나서 늘 그 패턴대로 살아가는 삶에 어떤 의미와 가치가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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