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시절은 지나가고 모든 시간은 온다. 그러니 지금 이 순간에 최선 다해야'

<스물다섯, 스물하나>, <서른, 아홉>. 인기리에 방영되고 있는 드라마 제목이다. 간혹 일정 숫자를 제목으로 한 영화나 책을 접하게 될 때마다 숫자가 주는 정형성보다는 왠지 모를 서정성이 더 크다. 나이, 누구나 피해갈 수 없다는 데서 친근하기도 하지만 그래서 조금은 쓸쓸하기도 한 명사다.

<스물다섯, 스물 하나>는 아버지의 사업 실패로 가장이 된 20대 청년과 미운오리 취급을 받는 소녀가 펜싱 선수로의 꿈을 키우며 외연과 내면 사이에서 치열하게 싸운다. 하루아침에 물리적인 조건으로 꿈을 잃을 지경에 있는 청년과 자신의 꿈을 이루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소녀와의 사랑 또는 우정은 때론 진부하지만 가장 생생하고 빛나는 청춘이기에 시청자들은 그들의 언어와 몸짓에 집중하며 색다른 설렘을 갖는다. <서른, 아홉>은 미조, 찬영, 주희라는 세 친구의 우정이야기다. <스물다섯, 스물 하나>는 가슴 아프지만 20대의 풋풋함에서 희망이 있다. 반면 <서른, 아홉>은 젊지도 늙지도 않은 여자들의 가슴 저린 생의 현실이 언뜻 절망을 준다.

두 개의 시절은 분명 우리 모두에게 있다. 각자의 면밀한 인생 과정은 다르겠지만 큰 그림 안에서 느끼고 겪은 이야기는 아마 비슷할 것이다. 그래서 한껏 공감이 가고 아련하다. ‘저 때 나는 무엇을 했지?’라는 회한과 ‘저 때가 오면 나는 어떤 모습일까? 를 묻는다. 과거를 회상하고 반추하고 미래를 유추하며 잠시나마 ‘나’를 돌아보게 된다. 20대, 아무것도 가진 것 없이 젊음 하나 지녔지만 세상 만만했다. 세상은 분명 내 꿈보다 작을 것이라는 오만과 치기가 밉지 않다. 그리고 마흔을 코앞에 둔 서른아홉, 조금 세상이 무섭다는 것을 알고 어떻거나 지금의 삶에서 크게 달라지지 않을 것이라는 체념과 인간의 삶은 대충 비슷하다는 것을 알게 된다.

스물두 살 이진은 열여덟 살 희도에게 “어른들의 세계는 고등학생이 상상한 그런 일보다 더 좋지 않은 일이 많다”고 말한다. 겨우 스무 살을 넘긴 주제에 세상을 다 아는 것처럼 말하지만 일찍이 세상을 알아버린 청춘이 짠하다. 서른아홉, 인생은 그렇고 그렇게 흘러간다는 것, 다시 그 시절로 돌아간다면 무엇이 달라질까 싶으면서도 그래도 '혹시' 라는 후회를 남기는 나이.

나이를 제목으로 한 드라마는 특정한 누군가를 지정하지 않기에 오히려 받아들이기가 편하다. 때로 억지스럽고 앞 뒤 안 맞아도 코웃음 치며 외면할 수 없는 이유다. 스무 살 이야기가 끝나면 마흔 살이 궁금해서 채널을 맞춘다. 그러면서 새삼스럽게 확인한다. 스무 살 때나 마흔 살 때나 한 가지 분명한 것은 누구에게나 모든 시절은 지나가고 모든 시간은 온다는 것. 그러니 지금 이 순간에 최선을 다해야 한다고.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저작권자 © 코리아데일리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