질서는 법(法)으로 유지되고, 덕성은 인간 존엄성을 구현한다. 중국 전국시대, 맹자는 인의를 최고 가치로 여겼다. 반면 동시대 통일제국의 초석을 다졌다는 진(秦) 효공 때 재상 상앙은 법을 최고 기준으로 삼았다. 맹자는 성선설에 입각해 처벌 대신 불법을 저지르게 되는 원인을 찾고 교육했다. 상앙은 다르다. 법으로 처벌해야만 공동체 질서 유지가 가능하다고 보았다.
■‘법의 지배’ vs ‘법에 의한 지배’
상앙이 법치에 대한 백성의 신뢰를 얻기 위해 사용한 ‘이목지신(移木之信)’ 고사는 오늘에도 가르침을 준다. 그는 세 길 정도 되는 나무를 도성 저잣거리의 남쪽 문에 세우고 백성을 불러 모았다. 그러고는 이 나무를 북쪽 문으로 옮겨 놓는 자에게는 십금(十金)을 주겠다고 했다. 하지만 백성들은 이상히 여겨 그 누구도 옮기지 않았다. 그러자 다시 오십금을 주겠다고 했다. 누군가 나무를 옮겼고 상앙은 그에게 돈을 주었다. 백성들은 그 뒤로는 상앙이 공표한 법을 믿게 됐다.
이후 점차 세세한 법까지 제정됨에 따라 백성들의 불만이 많아졌지만 상앙은 효공의 지원 아래 밀어붙였다. 그러나 상앙은 훗날 자신이 만든 법 가운데 모반죄로 몰려 거열형(車裂刑)에 처해졌다. 순리에 의한 법치가 아니라, 법치지상주의가 부른 자승자박의 말로였다.
법은 공동체 질서 유지를 위한 최소한의 담보 장치다. 그러나 매사를 법으로 규제할 순 없다. 인간 양식에 의거한 도덕률이 필요한 이유다. 인간 사회엔 법과 도덕이 다 필요한 것이다. 법이 없다면 공정과 정의가 사라지고 힘센 자가 지배하는 약육강식 사회로 전락하며, 사랑과 덕이 없이 법치의 칼만 휘두르면 원성만 더 커질 따름이다.
제21대 대통령 선거에 제1야당 국민의힘으로 출마한 윤석열 대선 후보가 법치를 연일 강조하고 있다. 맞는 말이다. 법치는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를 지키는 기본축이기에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침이 없다.
다른 측면도 있다. 윤여준 전 환경부 장관은 윤석열 후보를 두고 “평생을 검찰이란 높고 두터운 벽 속에서만 지내서 그런지, 울타리 밖 세상 물정을 너무 몰라 국정 최고책임자로서 아주 위험할 수 있다”고 우려했다.
예컨대 이런 경우다. 윤석열 후보는 최근 “진실을 왜곡하는 기사 하나로 언론사 전체가 파산하게 할 수 있는 강력한 시스템이 자리 잡는다면, 언론을 자유롭게 풀어놔도 공정성에 문제가 없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언론 책임을 강조한 발언이지만, 문재인정부가 추진했던 허위·조작 보도에 최대 5배의 징벌적 손해배상을 물리는 언론중재 및 피해구제 등에 관한 법률 일부 개정법률안(언론중재법)에 찬성하는 것처럼 비치며 언론 통제 우려가 일었다.
윤 후보는 지난해 여야가 첨예하게 대립했던 언론중재법 개정안 국면에서 언론의 자유를 강조하며 반대 입장을 폈던 바 있다. 이번 발언으로 윤 후보에 비판이 쏟아지자 국민의힘은 수습에 나섰다. 이준석 대표는 “후보의 발언 취지는 끝까지 법적 절차에 의지할 수 있는 상황이 됐을 때의 원칙론적인 주장”이라고 해명했다.
■“적폐 청산”…당위성 불구 후유증 커
윤 후보는 ‘법의 지배(rule of law)’와 ‘법에 의한 지배(rule by law)’ 사이의 큰 간극을 유념해야 한다. ‘법의 지배’ 원리는 자의적 전제권력이 아닌 정규의 법의 절대적 우위, 모든 사람은 신분에 관계없이 누구나 똑같이 보통법에 복종해야 한다는 법 앞의 평등, 인권에 관한 헌법상의 일반원칙의 존중을 내용으로 한다. ‘법에 의한 지배’는 법을 빙자한 독재 통치의 우를 범할 수 있다.
윤 후보는 대통령 당선 시 전임 정권 적폐 청산을 꺼냈다. 썩어문드러진 부패엔 예리한 핀셋 사정(司正)이 마땅하다. 지위고하 구분 없이 법과 원칙이 적용돼야 한다. 하지만, 경계할 게 적잖다. 혐의와 무관한 자료까지 쓸어 담는 마구잡이식 압수수색, 이게 아니면 저걸 파헤치는 식의 별건 수사, 기획사정과 무차별적 피의사실 공표 등은 ‘수사관행’으로 포장돼 있는 검찰의 대표적인 악습들로서 답습해선 안 될 일이다. 스스로를 선, 상대를 악으로 규정하는 흑백논리로는 미래 없이 과거에만 머물 뿐이다.
그렇다. 법의 노예는 안 된다. “법이 끝나는 곳에서 폭정이 시작된다.” 영국 민주주의를 꽃피우게 한 17세기 계몽철학자 존 로크의 300년 전 경책은 오늘에도 살아 숨 쉰다. ‘검찰공화국’이 아닌 ‘인간의 얼굴을 한 법의 지배’를 권면한다. 윤석열 후보가 가슴에 담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