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박자’ ‘둥지’ ‘봉선화 연정’ ‘사랑의 이름표’ 등 다수의 히트곡으로 국민 작사·작곡가 등극
가사 쓰다 보면 멜로디 저절로 나와

▲ 사진=정대성

[코리아데일리(KD) 정다미 기자] ‘네박자’ ‘둥지’ ‘상사화’ ‘봉선화 연정’ ‘사랑의 이름표’ 등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모두에게 인기가 많은 곡을 탄생시킨 김동찬 작곡가와 만나 그의 72년 인생 중 대부분을 차지하는 노래에 대한 이야기를 나눴다.

올해 가요 인생 53주년을 맞은 김동찬 작곡가는 KBS1 ‘전국 노래자랑’ 심사위원, KBS2 ‘불후의 명곡-전설을 노래하다’ 등으로 ‘기똥찬 사나이’라 불리며 대중에게 이름도 얼굴도 익숙하다. 50주년이던 2017년에는 KBS홀에서 국민 MC 송해가 사회를 보고 가수 남진, 현철, 김국환, 배일호, 김혜연, 현당 등 유명 가수들이 대거 출연하는 ‘김동찬 가요 인생 50주년’ 기념 공연이 열리기도.

어린 시절 김동찬 작곡가는 학교 콩쿠르 대회에 나가면 매번 1등을 하는 등 가수의 꿈을 품고 있었다. 공부를 곧잘 했지만 선생님이 되기 싫었던 그는 대학 진학을 권유하는 가족들을 만류하고 가수를 하기 위해 서울로 상경했다. 김동찬 작곡가는 “고생 많이 했다. 먹고 살려고 판잣집에서 더부살이도 하고 노가다도 하고 별짓 다 했다. 현재를 보면 고생을 안 했을 줄 아는데, 음식 냄새에 창자가 꼬여서 쓰러지기도 했다. 그 고생이 있어서 지금의 내가 있는 것이 아닐까”라고 회상했다.

그의 인생에서 전환점이 된 것은 바로 영화 녹음 스튜디오에서 일을 시작한 것. 한양스튜디오에서 일하는 매형을 따라 음향효과 분야에 발을 디뎠고, 실력을 인정받아 동아방송에 들어가 후에 KBS까지 오랜 시간을 음향효과 전문가로 활약했다. 그와 동시에 작사와 작곡을 손에서 놓지 않아 ‘네박자’ ‘둥지’ ‘봉선화 연정’ ‘사랑의 이름표’ 등의 메가 히트곡들이 탄생할 수 있었다.

그는 “가수가 되고 싶어서 다닐 때 항상 마지막은 돈이 필요하다는 것이었다. 영화판에 들어가길 잘한 게 내로라하는 작곡가를 다 만날 수 있었다”며 “겸직을 못 하게 돼 있었는데 ‘봉선화 연정’ ‘돌팔매’가 인기를 끌자 KBS에서도 인정을 해줬다. 작사가로 시작을 했기 때문에, 작곡을 하고도 다른 사람에게 주곤 했다”고 밝혔다.

김동찬 작곡가의 인생 첫 곡은 ‘마지막 데이트’. 중학교 3학년 때부터 펜팔로 알고 지내던 친구와 헤어지고 나서의 슬픔으로 가사와 곡을 썼고 이를 정민섭 작곡가에게 보여준 것. 김동찬 작곡가는 “곡을 보여주니까 멜로디는 더 공부하고 가사가 좋다고 칭찬을 해줬다. 끌어줄 테니 가사부터 써보라 했다. 우리나라 대표 작곡, 작사가들이 많이 예뻐 해주셨다”고 말했다.

따로 작사, 작곡 공부를 배운 적이 없었던 김동찬 작곡가는 음향효과를 하며 알게 된 음악감독과 작곡가들의 어깨너머로 배운 지식으로 혼자 공부해 곡을 만들기 시작했다. 따라 부르기 쉽고 깊은 공감을 주는 가사와 한 번 듣고도 여운이 남는 멜로디는 일상 곳곳에서 영감을 얻는다. 김동찬 작곡가는 “가사를 쓰다 보면 멜로디가 나온다. 곡마다 다 이야깃거리가 있다. 모든 것은 우리 생활 속에 있는 것이다. 강의할 때도 ‘생활 속 대중가요’를 주제로 하곤 한다”고 설명했다. 실제로 자신을 좋아하던 여학생을 보고 ‘봉선화 연정’, 싸움하는 연인을 보고 ‘사랑의 이름표’, 모닥불을 쬐고 앉아 있다가 ‘사랑의 모닥불’, 자주 가던 단골 빵집의 직원을 보고 ‘사랑에 푹 빠졌나 봐’ 등 쉽게 접할 수 있는 생활 곳곳에서 히트곡이 탄생했다. 그는 자신의 히트곡을 하나하나 열거하며 비하인드를 들려줬다. 노래에 담긴 이야기를 상세하게 기억하고 즐거운 표정으로 이야기를 풀어놓는 모습에서 노래에 대한 진정한 열정과 애정이 절로 느껴졌다.

김동찬 작곡가는 “트로트는 그냥 생겨난 것이 아니다. 심장이 뛰는 소리다. 삶의 희로애락이 담겨있다”며 “내 노래도 아무것도 아닌 것 같아도 현실 감각들이 들어 있는 숨은 뜻이 있다. 국민들의 호응도 얻고 터질듯한 가슴을 다른 쪽으로 달래주는 물꼬를 트는 역할을 하는 것 같다”고 자부심을 드러냈다.

오랜 시간 가요계에서 활동한 대선배인 김동찬 작곡가는 안타까운 마음도 전했다. 그는 “기회를 한 번도 못 얻은 사람도 대부분이다. 무명이라도 괜찮은 가수와 곡들이 너무 많다. 사람들 마음속에 트로트에 대한 갈증이 있었어서 ‘미스트롯’ ‘미스터트롯’이 대박 난 것 같다”며 “물론 노래가 좋아야겠지만 방송 무대에서 많이 나오면서 알려져야 한다. 무대가 없어서 그렇지 제대로만 있었으면 빛을 봤을 아까운 노래도 아까운 가수들도 너무 많다”고 말했다.

그런 안타까움에 김동찬 작곡가는 노래를 가르치고 곡을 쓰는 것이 많은 시간과 노력, 정성이 소요되는 일임에도 재능기부를 통해 후배들에게 힘을 실어주고 있다. 김동찬 작곡가는 “음악실연자협회에서 형편이 어려워 앨범을 내지 못하는 사람들을 위한 프로젝트가 있다. 지난해 6명의 앨범을 발매해줬다. 올해는 이북에서 온 사람들을 위해 2곡을 선물했다”고 밝혔다. 이어 올해 함께 작업한 가수 전향진에 대해 “북한의 주체 창법이 대중가요 창법과 달라 고치기 힘들었는데 지금은 많이 좋아졌다. 두 창법이 섞여서 통일 창법이 탄생했다. 녹아들려고 노력하는 자세가 괜찮다”고 칭찬하기도.

53년간 많은 히트곡으로 한 시대를 풍미한 김동찬 작곡가의 전성기는 아직 끝이 아니다. 최근에도 ‘미스터트롯’ 나태주와 KBS1 ‘아침마당’의 ‘도전 꿈의 무대’ 5연승을 한 성국 등 떠오르는 트로트 스타들이 그의 곡을 받고 싶어 한다는 후문이다.

“노래를 만들어 달라고 하면 바로바로 그 사람에게 맞는 악상이 떠오른다”고 호탕하게 웃는 김동찬 작곡가가 앞으로 또 어떤 인생곡을 만들어낼지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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