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룽지숭늉 그리고 그 화려한 승화 

 

[코리아데일리=홍이숙기자] 민속학자의 말에 따르면 숭늉이란 한자어로 숙랭(熟凉)이 오랜 세월 내려오면서 변화된 단어라고 한다. 그 뜻인즉 그대로 ‘찬물을 익힌 것’ 다시 말하면 밥을 지어낸 솥에 찬물을 부어 만든 것이다. 숭늉을 조선반도에서는 고장마다 제나름인데 제주도사투리는 ‘누렁이 물’, 자강도사투리는 ‘당수’라고도 한다. 고대 당나라사람들이 즐겨 마신 차와 비슷하다고 한다.

어떤 사전에서도 “밥솥 바닥에 눌어붙은 누룽지에 물을 붓고 한소끔 끓여 만든 음료.”라고 정의하고 있다. 그리고 반탕(饭汤), 취탕(炊汤)이라고도 한다. 이 숭늉이 언제부터 있었는지 알 수 없으나 《임원경제지》에서 숭늉을 숙수(熟水)라 하였고, 《계림유사 (鷄林類事)》에 “숙수를 이근몰(泥根没: 익은 물)이라 한다.”는 표현이 나오므로 고려 초나 중엽에 존재하였던 것으로 추측된다.

다른 고서들에서도 숭늉에 대한 기재가 많은 바 종합해보면 오늘날 같은 밥짓기의 시작은 청동기가 유입되면서 시작되였고 철기시대부터 무쇠솥이 사용되면서 본격적으로 이루어진 것으로 기록되여있다. 그 방법은 대동소이한데 거지반 밥을 짓고 난 솥바닥에 밥알이 눌어붙은 것이 누룽지고 누룽지에 물을 붓고 끓인 것이 숭늉이라고 불렀다. 예로부터 조선반도는 자연수(自然水)가 좋아 조선시대부터는 차(茶)보다 숭늉이 보편화되였다. 바늘 가는 데 실이 따라가듯이 누룽지에는 숭늉이 따르는데 조선시대 광해군때 시인 박인로의 〈숭늉〉시조에 “서홉밥닷홉죽에 연기도 하도 할사 설 데인 숭늉에 빈 배속일 뿐이로다.”

 

이런 곱돌솥이나 쇠가마솥에 장작불을 지펴 만든 누룽지는 바삭하고 고소한 감칠맛을 내는 저칼로리 영양식이며 먹으면 배가 고프지 않아 지금의 과자와 같은 역할을 했다. 허준(许俊)의 《동의보감(东医宝鉴)》(1613년)에는 ‘취건반(炊干饭)’이라 하여 다음과 같이 기록되여있다. “음식이 목구멍으로 잘 넘어가지 못하거나 넘어가도 위까지 내려가지 못하고 이내 토하는 병증으로 오래동안 음식을 먹지 못하는 병은 누룽지로 치료한다.”

그 외에도 “여러 해가 된 누룽지를 강물에 달여서 아무 때나 마신다.”고 하여 누룽지가 약으로도 쓰였음을 알 수 있다. 그리고 누룽지는 군것질에 굶주린 어린아이들의 간식이였으며 과거를 치르기 위해 상경하거나 장사길을 떠날 때, 먼길을 갈 때 함께하는 휴대식량이였다. 이러한 누룽지를 강밥 또는 깡밥이라고도 하는데 단단히 만들어놓은 밥이란 뜻인 강반(强饭)에서 비롯된 말이다.

 

이처럼 누룽지로 만든 숭늉은 우리 고유의 음료로서 밥 짓는 법과 관계가 깊다. 옛날 중국인들은 밥을 지을 때 솥에 물을 많이 넣어서 충분히 끓어오르면 물을 퍼내고 약한 불로 뜸을 들이거나 다시 쪄서 먹군했는데 그래서 숭늉이 발달하지 못하였다.

일본에서는 같은 방법으로 밥을 짓긴하지만 숭늉을 먹지 않는다. 이것은 부엌구조의 차이에서 오는 것으로 해석된다. 우리의 부엌구조는 부뚜막 아궁이와 온돌이 일체가 되여있고 솥은 고정식이므로 솥을 씻기가 힘들다. 따라서 누룽지에 물을 붓고 끓이면 숭늉을 마실 수 있다. 그리고 솥을 씻는 방법도 되기 때문에 발달하였다는 것이다. 따라서 밥을 먹고 숭늉을 마시거나 숭늉에 밥을 말아먹으면 식사의 순서가 끝나는 식문화를 형성하게 되였다. 조선반도에서는 조선시대로 오면서 숭유억불사조와 함께 차문화가 쇠퇴되면서 숭늉문화가 더욱 발달된 것이라는 설도 있다.

우리 민족이 밥이나 죽, 별미 음식을 만드는 솥으로는 곱돌이 주재료이다. 그제날 곱돌은 조선반도의 남단 전라북도 장수지방에서 생산되는 것이 품질이 제일 좋았다고 한다. 그 방법은 곱돌을 쪼아 솥의 형태로 만든 뒤 안을 파서 만드는데 이런 곱돌솥은 열이 빠르게 전도되지 않는 반면 밥을 지으면 뜸이 고르게 들고 잘 타지 않아 밥맛이 아주 좋으며 쉽게 식지도 않는다.

옛날 어머니들은 밥을 지을 때 일정한 분량의 물과 쌀을 가마솥에 넣고 끓이다가 여분의 물이 없어질 때까지 뜸을 충분히 들인다. 가마솥에 수분이 남아있는 동안은 아무리 가열하여도 100℃ 이상이 되지 않으나 뜸을 들이는 과정에서 솥바닥은 수분이 없어져서 220∼250℃까지 올라간다. 이 온도에서 3, 4분 지나면 밥알에 갈변이 일어나고 갈변한 누룽지 부분에서 전분이 분해하여 포도당과 구수한 냄새의 성분이 생기게 된다. 여기에 물을 붓고 푹 끓이면 구수하고 푸근한 맛의 숭늉이 되는 것이다. 이와 같은 누룽지와 숭늉은 다른 나라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우리 민족 고유의 독특한 맛의 음식이며 음료이다.

 30여년 전까지만 하여도 지금처럼 전기밥솥이나 가스레인지나 오븐이 없던 시절, 시골농촌에서는 산에 가서 땔나무를 하였다. 그때 장작으로 불을 피워 밥을 해 먹는데 밥 한공기에 김치 한두가지, 간장종지가 전부인 소박한 밥상이였지만 마지막에는 항상 구수한 숭늉이 있어 행복했다. 밥을 거의 먹어갈 때쯤 어머니가 주시는 숭늉 한그릇은 김이 모락모락 피여나는 구수한 냄새와 함께 행복이 마음으로까지 흘러 들어간다. 지금은 전기밥솥에 밥을 하거나 그것도 귀찮아서 인스턴트 밥을 사 먹기에 옛날처럼 구수한 누룽지를 맛보기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다.

요즘에는 숭늉 대신에 보리차를 끓여서 마시는 습관이 생겼다. 하지만 아무리  변신하거나 다르게 만들어도 슝늉의 그 고유한 진가, 그 참맛에는 비교도 되지 않는다. 그래서 일부 식당에서는 일부러 커다란 가마솥을 가게 앞에 걸어놓고 구수한 숭늉냄새로 손님들을 유인하기도 한다.

오늘날 누룽지와 거기서 파생되여 나온 슝늉은 새로운 시대에 맞게 변신하고 있다. 세월이 흘러도 누룽지의 구수한 맛의 매력은 잊혀지지 않는가 보다. 전기밥솥 기능에도 누룽지를 만드는 기능이 더해지고 있으며 누룽지과자가 상품으로 나와 인기를 끌고 있다. 바쁜 일상에서 아침을 거르는 일이 많은데 누룽지를 끓여 숭늉을 마시면 속이 든든하고 편하다. 이렇듯 가난을 상징했던 누룽지는 이제는 현대인의 웰빙식품, 다이어트 식품으로 사랑받고 있다.

이처럼 누룽지와 숭늉이 오늘날 화려한 승화를 하고 있어 한결 반갑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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