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백산’, 백두에서 유례한 특별한 사연

[코리아데일리 강동우 기자] 태백산을 지나 선달산을 지난 백두대간은 영주시 단산면 마락리에서 충북 단양군 영춘면 의풍리로 넘어가는 고치령을 지난 뒤 소백산에 이른다.

“허리 위로는 돌이 없고, 멀리서 보면 웅대하면서도 살기가 없으며, 떠가는 구름과 같고 흐르는 물과 같아서 아무런 걸림이 없는 자유로운 형상이라서 많은 사람을 살릴 산이다.” 조선 중종 때의 천문지리학자인 남사고가 이렇게 말한

▲ 소백산 정산

소백산(小白山)은 충청북도 단양군 가곡면과 경상북도 영풍군 순흥면 사이에 있는 산이다. 태백산(1568미터) 부근에서 남서 방향으로 뻗은 백두대간에 위치한 이 산은 해발 1440미터에 이르며, 북동쪽에 국망봉(1421미터)이 있어 험준한 연봉을 이룬다. 북서쪽으로는 비교적 경사가 완만하여 이른바 고위평탄면을 이루며, 그 위를 국망천이 흘러 남한강에 유입된다. 동남쪽으로는 비교적 경사가 급하다. 낙동강 상류의 지류인 죽계천이 발원한다.

소백산의 ‘백산’은 ‘희다’, ‘높다’, ‘거룩하다’ 등을 뜻하는 ‘’에서 유래한 것인데, 소백산은 여러 백산 가운데 작은 백산이라는 의미다. 예로부터 신성시되어온 산으로 삼국시대에는 신라ㆍ백제ㆍ고구려 3국의 국경을 이루어 수많은 역사적 애환과 문화유산을 지니고 있다.

소백산에서 남서쪽으로는 완만한 능선이 이어지는데, 이 길을 따라 내려가면 연화봉이 있고 이곳에서 약 4킬로미터 정도 더 내려가면 제2연화봉(1357미터)에 이른다. 이 산의 남쪽 4킬로미터 정도에 죽령이 있으며, 5번 국도와 중앙선 철도가 통과한다. 제2연화봉 동남쪽 기슭에는 643년(선덕여왕 12)에 두운조사가 창건했다는 유명한 희방사와 내륙에서 가장 큰 폭포인 희방폭포가 있다.

소백산은 장엄하나 완만한 산등성이와 끝없이 펼쳐지는 운해 그리고 울창한 산림이 수려한 계곡과 어울려 장관을 이루어 많은 등산객이 찾아든다.

주요 등산로는 죽령의 가운데에 있는 희방사역을 기점으로 하여 희방폭포와 제2연화봉을 거쳐 올라가는 코스와 북쪽의 국망천, 남쪽의 죽계천 골짜기를 따라 올라가는 코스 등이 있다. 소백산 일대는 예로부터 산삼을 비롯하여 많은 약초가 자라 지금도 약초 채취가 활발하며, 풍기는 이들 약초의 집산지이자 풍기 인삼으로 이름난 곳이다. 죽령과 제2연화봉 사이의 산기슭에는 우리나라 제일의 우주 관측소인 국립천문대가 있다.

소백산 일대는 웅장한 산악 경관과 천연의 삼림, 사찰, 폭포가 많으며 주변에 부석사나 온달산성 등의 명승고적이 많아 1987년 12월에 소백산국립공원으로 지정되었다. 공원 면적이 320.5제곱킬로미터로 경상북도 영주시ㆍ봉화군, 충청북도 단양군에 걸쳐 있다. 공원 내에는 희방사ㆍ부석사ㆍ보국사ㆍ초암사ㆍ구인사ㆍ비로사ㆍ성혈사 등 여러 사찰과 암자가 있다.

특히 나라 안에 제일가는 절로 평가받는 부석사를 비롯한 수많은 문화유산들이 산재하고, 소백산 기슭에 자리한 희방폭포는 소백산의 정봉인 비로봉으로 등정하는 길목에 위치한다. 높이 28미터로 내륙에서는 가장 큰 규모인 희방폭포가 떨어지는 계곡에는 숲과 그늘과 괴암이 한데 어우러져 절경을 이루고 폭포 바로 위에는 선덕여왕 12년에 두문스님이 창건한 희방사가 자리한다. 다음은 『택리지』의 기록이다.

소백산에는 옥금동이라는 곳이 있는데, 바위와 샘의 훌륭한 경치가 수십 리에 걸쳐 있고 그 위에 있는 비로전은 신라 때 지은 옛 절이다. 마을 입구에는 퇴계 이황을 모신 서원이 있다. 대부분 태백산과 소백산의 샘과 돌은 모두 낮고 평평한 골짜기 안에 있고, 산허리 이상에는 돌이 없는 까닭에 산이 비록 웅장하여도 살기가 적은 편이다. 먼 데서 바라보면 봉우리들이 솟아나지 않아서 엉기어 있는 듯 보인다. 산은 구름이 가득, 냇물이 흐르듯 하며 하늘에 닿아 북쪽이 막혔고, 때로는 자색 구름과 흰 구름이 그 위에 떠 있기도 한다. 옛 시절에 술사였던 남사고가 소백산을 보고는 갑자기 말에서 내려와 넙죽 절을 하며 “이 산은 사람을 살리는 산이다”라고 감탄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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