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사카 유지, 누구? 일본 뜨끔해할 일침 뜨거운 반응

[코리아데일리 강유미 기자]

현재 인터넷 포털 사이트에서는 호사카 유지 교수가 실시간 인기 검색어에 오르내리면서 그 배경에 대한 궁금증이 증폭되면서 많은 이들의 관심을 모으고 있다.

이같은 반응은 호사카 유지 교수는 1일 cbs라디오 김현정의 뉴스쇼에 출연, 제주해군기지에서 열리는 대한민국 해군 국제 관함식에 일본 해상 자위대가 함정에 욱일기를 게양해 오겠다고 밝히면서 논란이 된 사태에 대해 일침을 가했기 때문이다.

라디오 방송에서 호사카 유지 교수는 "일본이 침략국가라는 사실을 부정하면서 주최국 한국의 입장의 입장을 무시하는 행태에 상당히 불쾌감을 느끼지 않을 수 없다"고 비판했다.

▲ 1일 주목을 받는 호사카 유지 (사진 코리아데일리 DB)

그는 또 이러한 일본의 행태를 막기 위해 한국에서 욱일기 게양을 금지하는 법안을 만들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한편 1일 주목을 받는 호사카 유지(일본어: 保坂 祐二, 1956년 2월 26일 ~ )는 일본계 한국인 정치학자이다. 1988년부터 대한민국에 거주하였으며, 2003년에 대한민국으로 귀화한 사람이다.

일본 도쿄 대학교 금속공학과를 학사 졸업하였고 대한민국 고려대학교 대학원 정치외교학과를 정치학 석사 및 박사를 취득한 그는 현재 세종대학교 독도종합연구소 소장 겸 일본학(정치학) 전공 교수이며 근·현대 한·일관계, 독도 영유권 문제 등의 전문가다.

유치원과 초등학교가 천주교계 학교였기 때문에 천주교의 영향을 받았고 그 때 담임선생님이었던 수녀님이 그를 평생 기도해주는 50명 명단 속에 넣었다고 한다. 현재 종교는 없으며 그의 저서를 보면 일본신도, 유교, 기독교 등을 문화적으로 연구하는 연구자이기도 하다.

1956년 도쿄도에서 태어난 그는 원래 역사공부를 좋아했으나 대학은 렌즈회사를 경영하는 아버지의 권유로 이공계를 선택했다.

도쿄 대학 공학부(東京大学工学部) 금속공학과에 재학 중 『명성황후 시해사건』에 관한 내용을 접해 일본이 왜 한국과 아시아를 침략했는가라는 의문을 풀기 위해 도쿄대를 졸업한 후 대한민국의 고려대학교에 유학했다.

1988년 5월25일 김포공항을 통해 한국에 입국했으며 이후 고려대학교 민족문화연구소가 운영하는 한국어학당에 입학, 9개월간 한국어를 연수했다. 1989년 2월, 한국어학당 최우수상을 수상하여 수료. 1989년 3월, 고려대학교 정외과 3학년에 편입학했다. 도쿄대에서의 전공과 다른 분야를 전공하기 위해 편입학했다고 한다. 편입학하여 1년간만 다니면서 대학원 진학을 위한 선수과목을 이수했다. 1990년 3월,고려대학교 대학원 정치외교학과에 진학, 석·박사 과정을 마치고 1998년부터 세종대학교 교수로 임용되었다.(전공은 비교정치)

정치학 석사 학위 논문 제목은 <후쿠자와 유키치와 조선개화파>, 박사학위 논문 제목은 <일본제국주의의 민족동화정책분석-조선, 만주, 대만을 중심으로>이다.

한편 최종학위는 정치학 박사이다.

1998년부터 본격적으로 독도영유권연구를 시작해 독보적인 독도연구자로 알려져 있다.

2001년 3월, 일본정부가 왜곡된 역사교과서(새 역사 교과서, 후소샤)를 검정 통과시켰을 뿐만이 아니라 같은 해 8월13일 고이즈미 수상(당시)이 야스쿠니신사를 참배했을 때 이를 강도높이 비판했다.

2003년 5월, 일본 자민당의 아소타로 국회의원이 “창씨개명은 한국인이 원해서 실시한 것”이라는 망언을 했을 때 창씨개명이 일제가 강제적으로 시행한 것임을 근거자료를 제시하면서 증명했다.

2003년 8월, 대한민국에 귀화했다. 그러나 이름은 일본 이름을 그대로 사용하고 있다.

2004년 8월 15일, 주한일본인과 일본계 한국인으로는 처음으로 보신각 타종행사에 참가했다.

2005년, 일본 시마네현이 ‘다케시마의 날’을 제정해 독도가 일본영토라고 주장했을 때 독도가 일본영토로 기재되지 않은 일본 고지도를 다수 발견하여[8] 고지도를 다수 수록한 저서 <일본 고지도에도 독도 없다>(2005, 자음과모음)를 출간, 일본의 독도영유권 주장의 허구성을 지적했다.

이후 호사카교수는 독도가 한국땅으로 기재되어 있거나 독도를 일본영토에서 제외시킨 일본 측 고지도 등을 다수 발견하여 그때마다 이를 논문 등으로 발표하면서 언론에도 공개했다.

2006년 4-6월, 독도에서 한일 간 충돌이 일어날 가능성이 있던 시기에 방한한 일본의 국회의원들(후에 총리가 된 민주당 하토야마 유키오씨 포함)에게 2차례에 걸쳐 한국의 독도영유권 논리를 설명했다.

2006년10월, 독도를 한국영토로 일본정부 스스로가 인정한 1877년 태정관 지령문에 대해 연합뉴스와 함께 일본정부에 질문서를 보냈고 일본정부를 하여금 사실상 독도가 한국영토임을 인정케 하는데 성공했다.

2007년 10월, 중국의 한국인학교, 난징대학교 및 상하이 사범대학의 초청으로 한일관계, 위안부문제 등을 강연했다.

2008년 9월 및 10월, 방한한 일본의 대학생들의 초청으로 2차례에 걸쳐 독도문제를 일본어로 강의했다.

2009년 5월, 세종대학교 부설 독도종합연구소 소장으로 취임.

2009년 1월부터 2012년 1월까지 3년 간 중앙일보에 ‘삶의 향기’ 칼럼필진으로 활약.

2009년 5월 7일 미국 워싱턴D.C. 프레스클럽에서 하와이 대학의 존 반 다이크 교수들과 함께 워싱턴D.C. 독도수호대책본부 주최, 미국 최초의 독도 심포지엄에서 논문을 발표했다. 영어로 강연해 참가자의 질문에 대답했다.

2009년 6월, 호주의 독도수호 단체의 초청으로 시드니, 브리즈번, 메르번 등에서 독도영유권문제를 강의. 2014년까지 꾸준히 호주연합의 초청으로 호주 전역에서 활동했다.

2009년 7월, 방한 중인 호주, 뉴질랜드, 서유럽 등의 사회과 교사들의 초청으로 고려대 등에서 독도영유권문제를 강연.

2009년 9월, 일본의 간사이 지구의 한 청년 단체의 초청으로 교토에서 한일 관계사와 독도 영유권문제를 강연.

2009년 9월, 저서 『우리역사 독도』가 한국 간행물 윤리위원회의 <9월의 읽을 만한 책> 역사 부문에 선정.

2010년 2월, 1877년 일본 육군참모국이 작성한 "대일본전도" 원본을 공개. 독도가 일본영토에서 빠져 있는 것을 지적, 일본 정부의 독도 고유영토론은 성립되지 않는 것을 주장. 이 지도는 동북아 역사 재단 주최로 3월 2일부터 9일까지 한국국회도서관에서 열린 <동해 독도 고지도전시회>에 출품됐다.

2009년 11월 및 2010년 3월과 11월, 가수 김장훈씨가 독도종합연구소에 총 3억원을 기부.

2010년 11월 호사카교수는 가수 김장훈씨와 함께 ‘독도의 진실’(www.truthofdokdoo.com)을 한국어, 일본어, 영어 등으로 제작, 오픈해 인터넷과 SNS를 통한 독도홍보에 적극적으로 나서기 시작했다.[19] ‘독도의 진실’ 사이트는 그후 네이버, Daum 등 주요 포탈사이트에서 검색어 1위에 몇 번 올라가기도 했다.

기타 활동으로서, 한국일본언어문화학회 부회장, 대한변호사협회 자문위원, 동북아 역사재단 자문위원(역임), 한국외교부 독도대책 위원회 자문위원, 동아시아평화문제연구소 상임이사, 한국국회도서관 자문위원 및 홍보대사, 해양박물관 홍보대사, 동아시아평화학회 회장, "조국애, 독도사랑"호주연합회 고문, 세종대 독도종합연구소 소장, "독도와 동아시아(dokdoandeastasia.com)" 웹사이트 운영자(이상 현직) 등.

2015년 1월, KBS의 객원논설위원으로 위촉.

2015년 3월, 한국 천안 소재 독립기념관의 비상임이사로 임명됨. 일본 출신자로 처음 있는 일로 많은 주목을 받았다.

2015년 3월, 경상북도청이 독도위원회를 발족시켜 호사카교수를 독도위원회 위원으로 위촉.[26]

2015년 8월, 세종대학교에서 호사카교수의 독도문제(러스크서한에 대한 반박)에 관한 SSCI논문 발표 등의 공로를 인정해 '세종대 우수교수상'을 수여. 호사카 교수 자신으로는 2008년 8월에 이어 2번째 수상이다.

1일 호사카 유지 교수의 시원한 사이다 발언에 많은 청취자들은 환호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SNS에서는 호사카 유지의 인터뷰 내용이 공유되면서 많은 이들에게 공감을 받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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