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리아데일리=박태현 기자] 이토 히로부미를 저격한 안중근 의사(1897∼1910)와 헤이그 특사로 성명회 선언서를 주도했던 이상설 선생(1870∼1917)의 ‘사상적 연대’를 엿볼 수 있는 사료가 나왔다. 일제강점 초기 독립지사 탄압의 주범인 아카시 모토지로 헌병대사령관(1864∼1919)의 비밀보고서가 처음으로 세상에 공개된 것.

동아일보의 보도에 따르면, 19일 이상설선생기념사업회(회장 이석형)는 “근대사다큐멘터리 제작사 ‘더채널’의 김광만 PD와 함께 일본 외무성 공문서관과 러시아 극동문서보관소 하바롭스크 도서관에 잠자고 있던 ‘한국주차군 참모장 아카시 모토지로 보고’를 찾았다”고 밝혔다.

이 기밀문서는 안 의사가 1909년 10월 26일 중국 하얼빈에서 이토를 사살하고 체포된 뒤 ‘일제 스파이의 대부’로 불리던 아카시가 작성한 것으로 알려졌다. 현대로 치면 중장급 참모장이던 그가 직접 중국으로 건너가 밀정들을 진두지휘해 만든 보고서다. 일제가 안 의사의 배후세력을 찾기 위한 사전 작업 성격이었다.

50여 일 동안 당시 여러 독립지사를 조사한 이 보고서는 안 의사와 이 선생의 관계에 집중했다. 특히 안 의사가 이 선생에게 정치적 사상적 감화를 받았음을 보여주는 대목이 많이 등장한다.

보고서에 따르면 안 의사가 1906년 8월 고향을 떠나 간도 룽징에 망명한 것은 이 선생의 문하생이 되기 위해서였다. 당시 이 선생은 간도에서 서전학교를 설립해 운영하고 있었다. 1907년 고종황제의 명을 받아 헤이그 특사로 갔던 이상설을 모셔오기 위한 모금운동도 안 의사가 주도했다.

이런 사실은 그간 밝혀지지 않았던 안 의사의 사상적 기반에 대한 흥미로운 해석을 제공한다. 안 의사는 체포된 뒤 일제 법정에서 논리와 강단을 갖춘 언변을 자랑했다. 옥중에서 ‘동양평화론’과 ‘안응칠 역사’를 집필했다. 하지만 유년기에 사서삼경과 신문, 가톨릭교양서를 수학했다는 것 외엔 크게 알려진 게 없었다. 김 PD는 “안 의사가 천명한 ‘동양평화론’의 뿌리가 당대의 지성으로 꼽히던 이상설 선생과 닿아 있음을 시사한다”고 설명했다.

보고서 말미에는 ‘조선통감부 촉탁경시 사카이의 신문’에서 안 의사가 이 선생을 언급하는 대목이 나온다. “포부가 매우 크며 세계 대세에 통해 동양의 시국을 간파하고 있다. 만인이 모여도 상설에는 미치지 못한다. 용량이 크고 사리에 통하는 대인물로서 대신(大臣)의 그릇이 됨을 잃지 않았다.” 옥중에서 모진 시련을 겪으면서도 안 의사는 항일투쟁의 사상적 스승에게 맑고 곧은 찬사를 바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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