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혜리 삶은 가요를 위한 인생에 가요를 위한 아름다운 생애를 살고 있다.

[코리아데일리 이경미 기자]] 25일 전국노래자랑에 남다른 포즈로 등장한 가창력이 뛰어난 이혜리는 이 자리에 초대가수로서 참여한 것이 아니라 이웃의 다정한 벗으로 참여를 했다.

그는 자신의 곡 ‘아이 좋아라’를 부르며 남다른 가창력을 과시한 그녀는 이 곡의 코러스는 별도의 코러스 가수 없이 ‘전국노래자랑’ 연주진이 직접해 보는 이들의 이목이 모이게 했다.

오늘날의 영광을 위해 때를 기다리며 그늘에 숨죽이고 15년을 보낸 가수 이혜리의 이야기를 하려면 먼저 골프라는 문으로 들어가야 쉬울 것 같다. 갸름하고 눈매 고운 얼굴에 짧게 커트한 머리카락을 흐트러뜨려 사방으로 치켜 올린 상큼한 모습이다. 이 모습이 비치발리볼 선수처럼 싱그럽고 아름답다.

▲ 가요계 여왕으로 거듭태어난 이혜리 (사진 코리아데일리 DB)

다음은 코리아데일리와 인터뷰

- 골프 실력이 싱글이라면서요?

“누가 그런 소문을 냈어요?”

그가 펄쩍 뛴다. 그러나 조금씩 파고들어가니 오래지 않아 결국 싱글이라는 말이 나오고 만다. 골프에 입문한 지 10년 만에 73타를 친 적이 있다고 한다. 말이 73타지, ‘1언더’를 일생에 한 번도 못해 보는 골퍼가 대부분이다. 그런 사람에게 1언더는 꿈 같은 이야기일 뿐이다.

- 혹시 골프선수였어요?

“아뇨. 볼링선수 경력은 있어요. 1982년부터 1985년까지 4년 동안 춘천에 살면서 강원도 대표도 했고 서울시 대표도 했어요.”

어쩐지 그에게서는 스포츠 선수 냄새가 나는 것 같았는데, 예감이 맞아떨어졌다. 그는 스키도 잘 타고 수상스키도 선수만큼 잘 탄다고 한다. 1985년 ‘들꽃처럼’이라는 노래를 불러 가수로 데뷔하면서 볼링선수 생활을 그만두었다. 주현미·김범룡 등이 그의 데뷔 동기다.

- 트로트가 오히려 어렵다고 하던데요?

“어릴 때부터 부른 노래가 트로트였어요. 아마 제 몸 어딘가에 그 리듬이 배어 있었나 봐요. 초등학교에 입학하기도 전인데, 그때 시장에 나가면 노래하는 엿장수가 있었어요. 그 엿장수의 마이크를 빼앗아 엿을 다 팔도록 계속 노래를 불렀어요. <양주골 처녀> 같은 트로트 말이에요. ”

- 그 엿장수는... 모르는 사람이었어요 ?

“그럼요. 마이크를 잡고 노래하는 게 좋았나 봐요. 그러다 고3 때부터 밤업소에서 노래했어요. 노래도 하고 돈도 벌 수 있고, 얼마나 좋았는지 몰라요. 그러다 본격적으로 곡을 받아 취입하고 가수로 데뷔했어요.”

그러나 그는 데뷔한 지 1년 반 만에 가수 활동을 중단할 수밖에 없었다.

그는 숨기지 않고 지난 이야기를 털어놓았지만, 약속대로 여기에 쓸 수는 없다(궁금하면 개인적으로 알려드릴 수 있다. 그는 단지 공표하는 것을 마다하는 것일 뿐 애써 숨기려고 하는 것은 아닌 것 같았기 때문이다). 아무튼 그 일로 인해 그는 15년 동안 공중파를 탈 수 없었다. 그렇지만 그는 그 오랜 세월 동안 그늘에서 열심히 노래를 불렀다.

여자의 인생에서, 아니 가수의 인생에서 15년이란 얼마나 길고 긴 시간인가? 3년도 채 못 되는 시간이 아까워 병역 의무를 기피하는 연예인들도 많지 않던가? 그렇게 힘들게 보낸 시간의 곰삭음이 있어서인지, 그는 보통의 연예인이라는 느낌 대신 나이답지 않게 원숙하고 깊은 맛이 있었다.

2000년 그는 새로 데뷔한다는 각오로 역시 트로트 곡인 ‘혼자 사는 여자’를 불렀다. 반응이 좋았다. 그에 힘을 받아 지난해에는 ‘당신은 바보야’를 발표했다. ‘당신은 바보야’는 그를 한순간에 뜨게 했다.그는 이 노래 한 곡으로 완전히 스타덤에 올랐다. 선배 트로트 가수가 언젠가 그에게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트로트는 ‘움직이는 부동산’이야. 한 곡만 히트하면 평생 그 한 곡으로 벌어먹고 살 수 있다는 거 아니냐.”

그 선배의 말이 맞는지, 그는 지난해와 올해 <당신은 바보야> 한 곡으로 전국을 누비고 다녔다. 그래서 지금 그는 전국구 가수다.

- 얼마만의 성공인가요?

“저는 이번 곡이 히트하는 것을 보면서 열심히 하면 끝내 성공한다는 믿음을 얻었어요. 예전에는 방송국에서 PD한테 인사해도 돌아보지 않았어요. 그래도 뒤따라가면서 인사하는 처지였지요. 이제는 좀 수월해졌어요.”

- 많이 힘들었겠네요?

“혼자 매니지먼트를 하며 노래도 부르는 가수를 독립군이라고 하죠. 그런 면에서 저는 스스로 용맹스럽고 의리 있는 독립군이라고 생각해요.”

- 그래도 이제는 그만큼 올라섰으니 대단하네요.

“저는 사실 남보다 약한 성대를 가지고 태어났어요. 한 시간 이상만 노래를 부르면 목이 가라앉는 것 같아요. 그래서 남들보다 몇 배 더 노력해야 한다는 걸 알고 있어요.“

그럴 것이다. 가수에게 약한 성대는 치명적이다. 그만큼 그에게는 지금이 가수로 살았던 시간 중에서 가장 행복한 시간일지도 모른다.

- 기쁜 일이 있으면 골프도 잘 맞죠?

“그런가 봐요. 요즘은 연습도 별로 안 하는데 잘 맞는 편이거든요.”

- 골프는 언제 시작했나요?

“1991년도인가? 그때 노래를 못 불러 참으로 답답하고 쓸쓸했지요. 그럴 때마다 혼자 동네 뒷동산을 휘젓고 돌아다니며 마음을 달랬죠. 그러던 어느 날인가, 새로 문을 연 골프 연습장 광고 플래카드를 발견했어요. 무심코 발을 들여놓았지요. 주인은 열심히 골프 연습장 자랑을 하더니 사은품이라며 골프화를 선물하는 거예요. 그때까지 저는 골프채도 못 잡아봤는데요, 어쨌든 공짜로 얻은 골프화 때문에 그 연습장에 나가게 되었어요.”

- 볼링선수 생활을 했다고 했는데...골프는 어떻든가요?

“연습장에서 7번 아이언으로 한 달 연습하고 처음 골드CC에 나갔는데 116개 쳤어요.”

- 한 달 만이라면 그 정도도 나쁘지 않은 성적이네요?

“제가 이래보여도 승부욕이 좀 있나봐요. 처음부터 내기골프를 했는데 번번이 지는 거예요. 오기로 열심히 했죠. 5개월 만에 보기 플레이를 했어요. 그게 7~8년 계속되더니 그 뒤로 껑충 뛰어 82개로 줄었어요. 10년째에는 73타를 쳐보기도 했고, 이글을 아홉 번 했어요. 2003년에는 연예인 골프대회에서 챔피언 컵을 땄지요.”

- 즐겨 함께 치는 분들이 있습니까?

“유연상·권인하·정수라·현숙·오승근·설운도 선배들과 쳐요. 얼굴 팔리는 직업이니 동업자들끼리 칠 때가 가장 마음 편하고 좋아요.”

- 내세울 만한 주무기로는 무엇이 있어요?

“드라이버는 200야드 정도, 퍼팅은 2퍼트 이상은 없어요. 감각이 좋다고들 해요. 아이언 5, 6번은 마음대로 다룰 수 있어요.”

- 어떻게 그렇게 퍼팅을 잘할 수 있죠?

“반드시 홀에 넣겠다고 욕심내지 않고 가까이 붙인다는 생각으로 보내는 것이 중요하더라고요.”

한편 이혜리의 남편과 딸은 국내 골프 선수들이다.그녀는 지금 행복감에 젖어 어려운 사람을 위한 봉사도 열심히 하고 있는 국내 기요계 여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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