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방송화면 캡쳐

[코리아데일리 김민정 기자]

연극계에서도 ‘미투’(MeToo·나도 당했다) 운동이 들불처럼 번지고 있다. 앞서 배우 이명행(42)이 성추행으로 물의를 빚은 데 이어 유명 연극 연출가 이윤택(66)마저 같은 논란에 휩싸였다.

극단 미인의 김수희 대표는 14일 페이스북에 “이제라도 이 이야기를 해서 용기를 낸 분들께 힘을 보태는 것이 대학로 중간선배쯤 된 내가 많은 후배들 앞에 부끄럽지 않을 수 있는 방법이라 생각했다”며 장문의 글을 남겼다. 김 대표는 10여년 전 연극 ‘오구’ 지방공연 당시 겪은 일을 돌이켰다. 그는 “여관방을 배정받고 후배들과 같이 짐을 푸는데 인터폰이 울렸다. 내가 받았고 전화 건 이는 연출이었다. 자기 방 호수를 말하며 지금 오라고 했다. 안마를 하러 오라는 것이었다”고 적었다.

해당 연출가의 실명이 명시되진 않았으나 이윤택인 것으로 드러났다. ‘오구’는 극단 연희단거리패의 대표 기획전 ‘굿과 연극’ 시리즈 중 하나로, 이윤택이 극작·연출 모두 맡았다.

김 대표는 “안 갈 수 없었다. 당시 그는 내가 속한 세상의 왕이었다. …문을 열고 들어가니 그가 누워 있었다. 안마를 하던 중 갑자기 그가 바지를 내렸다. 자신의 성기 주변을 주무르라고 했다. 난 ‘더는 못하겠다’고 말한 뒤 방을 나왔다”고 회상했다. 이어 “무섭고 끔찍했다. 그가 연극계 선배로 무엇을 대표해서 발언할 때 마다, 멋진 작업을 만들어냈다는 극찬의 기사를 대할 때 마다 구역질이 일었지만 피하는 것 외에는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면서 “그런데 오늘 그가 국립극단 작업 중 여배우를 성추행했고 극단 작품에 참여하지 않는 선에서 조용히 정리됐다는 기사를 접하고 그 여전함에 분노가 치밀어 올랐다”고 토로했다.

이어 2015년 국립극단에서 ‘문제적 인간 연산’을 공연할 당시 이 연출가가 국립극단 직원을 성추행한 사실도 알려졌다. 국립극단 관계자는 “성폭력 문제를 일으킨 예술가와는 작업하지 않는다는 조항을 넣은 계약서를 새로 만들고, 이 연출가에 대해 국립극단 출입 및 향후 작업 금지 조치를 내렸다”고 말했다.

논란이 번지자 이윤택은 성추행 사실을 인정하고 근신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이윤택이 예술감독을 맡고 있는 연희단패거리의 김소희 대표는 국민일보와의 통화에서 “선생님이 ‘예전 일이라도 잘못을 반성하는 게 맞다. 앞으로 연극 작업을 안 하겠다’는 입장을 전해오셨다”고 말했다. 이어 “공연 중인 ‘수업’과 다음 달 1일부터 시작 예정이었던 ‘노숙의 시’를 취소하기로 했다”고 덧붙였다.

한편 이윤택은 시인 겸 극작가·연출가로, 1986년 부산에서 창단한 연희단거리패를 이끌어 왔다. 2004~2005년 국립극단 예술감독을 맡았고, 2012년 대통령선거 당시 문재인 후보를 공개 지지했다는 이유 등으로 박근혜 정부의 블랙리스트에 올랐다. 그가 연출한 연극 ‘오구’는 2008년 대한민국연극대상 작품상을 받았고, ‘시민K’, ‘문제적 인간 연산’ 등 다양한 작품으로 각종 상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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