휴대전화 전쟁에서 일본은 한국에 패배했나? 그 이유 심층취재

[코리아데일리 강유미 기자]

갈라파고스 제도(Galapagos Islands)는 남아메리카 동태평양에 있는 에콰도르령(領) 제도(諸島)로 정식 명칭은 콜론 제도(Archipiéago de Colon)다.

총면적은 7,880제곱킬로미터로, 한국의 전라북도(8,061제곱킬로미터) 크기다. 인구는 2010년 기준 2만 5,000명이다. 에콰도르 해안에서 서쪽으로 926킬로미터 지점에 있으며, 대소 19개의 섬과 다수의 암초로 이루어져 있다. 이 제도에서 가장 큰 섬은 이사벨라 섬(5,800제곱킬로미터)으로, 최고봉은 아술산(1,689미터)이며, 다른 섬들은 대개 작고 평평하다.

1535년 에스파냐의 토마스 데 베를랑가(Tomas de Berlanga)가 발견했다. 발견 당시에는 무인도로 큰 거북이 많이 살고 있었다. “갈라파고”는 옛 스페인어로 “안장”을 뜻하며, 갈라파고스 제도에서 발견되는 갈라파고스 땅거북의 등딱지 모양이 “안장”과 비슷하다고 해서 갈라파고스로 불리게 되었다.

▲ 갈라파고스

갈라파고스는 대륙에서 멀리 떨어져 있어 고유종(固有種)의 생물이 많다. 1835년 9월 15일 찰스 다윈(Charles Darwin)이 로버트 피츠로이(Robert FitzRoy)가 이끄는 탐사선 비글(Beagle) 호를 타고 이곳을 방문해 진화론의 영감을 얻은 것도 바로 그런 이유 때문이다. 갈라파고스 제도 당국은 1964년 다윈을 기념하여 ‘찰스 다윈 연구소’를 설립하고 지금도 야생 동물 보호 조사에 임하고 있다.

이러한 내용은 ‘갈라파고스 신드롬(Galapagos syndrome)’이란 말을 처음 들어본 독자일지라도 그게 무슨 뜻일지 대충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무엇보다도 ‘고립’이라는 단어가 연상되지 않는가? 갈라파고스 신드롬은 전 세계적으로 쓸 수 있는 제품인데도 자국 시장만을 염두에 두고 제품을 만들어 글로벌 경쟁에 뒤처지는 현상을 가리키는 말이다.

일본 휴대전화 인터넷망 i-mode의 개발자인 나쓰노 다케시(夏野剛)게이오대학 교수가 최고의 기술을 가지고 있는 일본의 전자 제품들이 세계시장과는 단절된 상황을 설명하기 위해 만든 말로, 2007년 일본 총무성(MIC)이 발표한 일본 무선전화 시장 보고서에서 처음으로 등장했다. 특히 일본 기업들이 만든 휴대전화가 국내 소비자 취향만 따르다 갈라파고스에서 다윈이 발견했던 고유종들과 비슷해졌다는 점을 강조하고자 한 것이다. ‘일본(Japan)’과 ‘갈라파고스(Galápagos)’의 합성어인 ‘잘라파고스(Jalapagos)’라는 말까지 등장했다.

일본 통신산업은 세계 어느 나라보다 빠르게 모바일인터넷, 모바일TV 등을 상용화했으며, 휴대전화 기술은 1999년 이메일, 2000년 카메라 휴대전화, 2001년 3세대 네트워크, 2002년 음악파일 다운로드, 2004년 전자결제, 2005년 디지털TV 등 매년 앞선 기술을 선보인 바 있다. 일본 내 3세대 휴대전화 사용자가 2009년 들어 미국의 2배 수준인 1억 명에 이를 정도였다. 하지만 커다란 내수시장에 만족해온 일본은 국제 표준을 소홀히 한 탓에 경쟁력 약화라는 치명적인 약점을 만들어 한국에 완패를 당한 것.

미국이 일본보다 큰 내수시장을 갖고 있으면서도 늘 세계를 지향해왔다는 사실에 비추어 보자면, 일본이 갈라파고스화(Galápagosization)의 길을 걷게 된 것은 단지 내수시장이 크기 때문만은 아니다. 2010년 조사에서 일본 화이트칼라 노동자들의 3분의 2가 해외 근무를 원치 않는 것으로 밝혀졌는데, 바로 이런 독특한 내부 지향성과 더불어 ‘정보쇄국(情報鎖國)’이라는 악명을 얻을 정도로 견고한 일본 특유의 폐쇄적 문화가 결정적인 이유일 가능성이 높다.

한편 갈라파고스 신드롬은 일본을 넘어 어떤 나라에서든 국제 표준을 무시하고 독자적인 발전 경로를 걷는 그 무엇에 대해서 사용할 수 있다. 예컨대, 미국의 자동차 산업이 디자인에만 신경 쓰다가 낙후된 것, 미국의 크레딧 카드가 퇴물이 되어버린 마그네틱 스트라이프(magnetic stripe)를 여전히 사용하고 있는 것도 갈라파고스 신드롬으로 간주되고 있다.

2013년 8월 포스코의 경영 위기와 관련, 권원순은 「포스코, ‘갈라파고스 신드롬’ 버려야 산다」는 칼럼에서 학계의 동종교배처럼 교류되지 않는 기업 DNA를 갈라파고스 신드롬으로 규정하면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포스코는 지금 비상한 경영 전략이 요구되며 이는 동종교배 기업 DNA를 청산하고 이종교배 혹은 혁신과 개혁의 창조적 DNA를 필요로 한다. 불요불급한 사업 부문과 해외투자 사업을 재검토해 위기를 극복하고, 성장기반 확충을 위한 대책 수립이 절실하다. 또한 순혈주의 인사 관행을 개혁하고, 국제적 경험과 국가정책 차원의 폭넓은 시야를 지닌 인물들을 대거 영입해 창조경제 시대에 맞는 경영 체질을 확보해야 한다.”

북한도 자주 갈라파고스에 비유된다. 구본영은 2010년 9월 「갈라파고스 섬의 선군주의」라는 칼럼에서 외부 세계와 담을 쌓으며 60여 년 폐쇄사회를 지켜온 북한 사회는 ‘현대판 갈라파고스 섬’에 비견된다며 자주 설명하곤 한다.

2013년 9월 한국 사회를 떠들썩하게 만든, 통합진보당 이석기 의원이 이끄는 지하 혁명조직(RO)의 대화 녹취록과 관련, 이민수 고려대학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는 RO를 갈라파고스에 비유했다. “외부와 소통 없이 자기들 생각에만 편집증적으로 집착해 ‘정신적 갈라파고스’에 산다”는 것이다. 이와 관련, 박해현은 다음과 같이 주장했다.

“주사파는 ‘한국은 미제(美帝)의 식민지이고 북한이 이상(理想) 사회’라고 믿는다. RO 조직원은 이석기 의원을 ‘수(首)’라고 불렀다. 수령(首領)의 줄임말이라고 한다. 몸은 남녘에 있지만 혼은 북녘에 둔 사람들이다. 다윈이 찾아간 갈라파고스에서 방울새는 사는 환경에 맞게 다양하게 진화해 있었다. 우리 사회엔 정신적으로 퇴행한 갈라파고스 종족이 있다. 끼리끼리 모여 퇴화하더니 이번에 그 추한 꼴을 드러냈다.”

2013년 10월 14일 경기도 과천 정부청사에서 열린 미래창조과학부 국정감사 자리에서 새누리당 남경필 의원은 “게임 강제 셧다운제처럼 한국에만 있는 규제를 갈라파고스 규제라고 한다. 실제 이것이 도입된 후 게임에 빠진 청소년이 구제되었나? 실효성 없이 국내 사업자에게 역차별만 하고 있다. 이렇게 무의미한 갈라파고스 규제는 없어져야 한다”고 말했다.

한편 갈라파고스의 자연은 아름답지만, 이처럼 갈라파고스라는 말은 전혀 아름답지 않은 ‘시대착오’라는 말과 거의 동의어로 쓰이고 있다. 휴양지로 유명한 필리핀의 세부(Cebu)는 해변 이름을 ‘갈라파고스 비치’로 붙여 놓고 그 뒤에 거대한 리조트 단지를 세웠는데, 이때의 갈라파고스는 ‘낭만’과 동의어다. 낭만이 휴양을 넘어 일상까지 지배하면 시대착오가 된다고 보아야 할것에 대한 으;문이 남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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