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서울시 서울대 제공

73년 만에 세상에 드러난 일본군 위안부 영상자료가 73년 만에야 세상에 드러났다. 1940년대 미·중 연합군으로 활동했던 미군 사진부대 소속 병사를 일일이 추적하는 과정에서 발견된 것이다.

이는 이들이 남긴 필름에 한국인 위안부의 모습이 있을 것으로 추정하고 매달려온 서울대 인권센터 연구팀들의 2년여 간 작업 결과물이었다. 그들은 미국 국립문서기록관리청 (NARA)에서 사진 속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를 촬영한 영상을 발굴했다.

지금까지 한국인 위안부 피해자 증언과 사진, 문서 등이 공개된 적이 있지만 영상이 공개된 것은 세계 최초다. 이번 위안부 영상 발굴의 가장 큰 의미가 바로 그 점이다.

감춰져 있던 사실이 새롭게 드러난 것은 아니기 때문에, 한국인 위안부 영상자료에 학술적인 가치를 크게 두긴 어렵다는 게 중론이다. 하지만 문서와 사진만으로는 알 수 없었던 위안부 여인들의 세세한 표정, 행동 등이 이 영상자료에 고스란히 담겨 있어 이들을 `한 인간`으로 바라볼 수 있도록 한다는 점에서 큰 의미가 있다고 성공회대 강성현 교수는 말했다. 발굴 작업에 참여한 성공회대 강성현 교수는 이 과정을 "조각조각 끊어진 필름더미를 하나하나 확인해 모은 것이 18초짜리 영상"이라며 "마치 서울에서 김 서방 찾기와 같은 작업이었다"고 설명했다.

서울시와 서울대 인권센터는 5일 18초 분량의 해당 영상을 첫 공개했다.

무음의 흑백 영상 속에는 일본군 위안부 피해 여성 7명이 흙벽 앞에 나란히 서 있는 장면이 담겨있다. 영상이 촬영된 날짜는 1944년 9월8∼11일로 미·중 연합군이 기지를 점령한 후인 것으로 추정된다. 영상 속 여성들은 굳은 표정으로 군인들과 눈조차 마주치지 않는다. 한 여성 만이 포로 심문에 나선 중국군 신카이 대위로 추정되는 남성과 이야기하고 있다. 영상 속 위안부 피해자 2명은 1990년대 중반에 공개된 사진 속 2명의 얼굴과 옷차림이 같았다.

발굴을 주도한 성공회대 강성현 교수는 “둘의 대화를 이해하는 것으로 보이는 기모노를 걸친 여성과 다른 한 명은 일본인으로 추정된다”며 “나머지 5명 중 한 명은 북한에서 생존했던 윤경애 할머니인 것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송산에서 붙잡힌 위안부 10명은 훗날 윈난성 쿤밍의 미·중 연합군 포로수용소로 이동해 포로 심문 보고서를 작성했다. 2003년 공개된 ‘쿤밍 포로 심문 보고서’에는 조선인 25명의 이름과 나이, 고향이 기록돼 있다. 강 교수는 “영상 속 한국인 위안부들이 미·중 연합군이 심문과정에서 만든 ‘조선인 위안부 명부’에 있는 여성들인 것은 분명하다”고 밝혔다.

중국 원난성 용릉에서 일본군 위안소로 활용됐던 건물을 촬영한 영상도 함께 공개했다. 1944년 11월4일 촬영한 미군 사진병은 해당 건물을 ‘일본군 게이샤(기생)하우스’라고 기록했다.

이날 한국인 위안부 피해자를 촬영한 영상공개 소식을 접한 위안부 피해자 김복동 할머니는 “일본 정부가 지금이라도 정식으로 사과해 꼭 명예를 회복했으면 한다”고 입장을 밝혔다.

강 교수는 미군이 촬영한 영상이 더 있을 것으로 추정했다. 167통신대를 추적해온 강 교수는 “오키나와와 미얀마 등지에서 활동한 다른 미군 사진병들이 남긴 기록 중에서 위안부 피해 관련 영상과 사진이 있을 것으로 보인다”며 “더 늦기 전에 일본군 위안부 피해 자료의 체계적인 조사와 수집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2015년 한·일 위안부 합의 이후 당시 박근혜정부는 위안부 연구 관련 예산 지원을 끊었다. 이에 서울시는 서울대 인권센터를 지원해 발굴 사업을 지원해왔다. 박원순 시장은 “관련 자료를 체계적으로 정리해 오는 9월 ‘일본군 위안부 피해 관련 기록물’의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 등재를 적극적으로 지원하겠다”며 “다시는 불행한 역사가 반복되지 않도록 역사를 기억하고 바로 세우는 데 앞장서겠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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