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리아데일리 칼럼] 유례없는 ‘원전 찬성 시위’ 벌어질 판

 

새 정부는 4차산업혁명의 중요성을 인식하고 대통령 직속의 4차산업혁명위원회를 구성해 컨트롤 타워를 구성하겠다는 의지를 보이고 있다. 이는 정부의 화두인 일자리 정책과도 맞닿아 있다. 4차산업혁명에 따라 기존의 일자리가 폐쇄되기도 하지만 인공지능, 사물인터넷(IoT), 자율주행차 등 새로운 산업이 열리면 그만큼 양질의 일자리도 늘어난다. 하지만 4차산업혁명에 반드시 대비해야 할 에너지(전기) 수급에 대해서는 거꾸로 가는 듯하다.

30일 산업통상자원부는 30년 이상 된 노후 석탄화력발전소 8기 가동을 6월 한 달간 일시 정지(셧다운)하고, 6월 18일부터 고리원전 1호기의 가동을 영구 정지시킨다는 대책을 내놓았다. 이렇게 되면 모두 3400㎿(메가와트)의 전력공급이 줄어든다. 원전 사업자인 한국수력원자력 관계자는 “전력수급계획은 정부 정책에 따라 결정되기 때문에 한수원이 왈가왈부할 상황이 아니다. 공정률이 28%인 신고리 5, 6호기도 백지화하라고 하면 따를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문재인 대통령은 후보 시절 노후되는 원전을 차례로 철폐하고 향후 원자력발전소 정책을 재검토하겠다고 공약한 바 있다. 미세먼지가 많은 봄철(4월~5월)에는 석탄발전소 가동을 멈추고, 신규 화력발전소 건설을 중단하겠다고 했다. 하지만 원전·석탄 비중을 줄인다면서 그에 따른 전력 공급 부족에 대한 뚜렷한 대책은 없었다. 에너지 정책의 중요성은 인식하고 있지만 그에 대한 전문성은 물론 현실성과 구체성이 없었다. 오로지 원전 안전에 대한 불신과 근래에 국민 건강과 산업 환경을 위협하는 이산화탄소와 미세먼지 논란을 의식한 결과다.

산업부 관계자는 “고리 1호기 영구 정지에 폭염까지 감안하면 공급 예비력은 1만㎿ 안팎, 전력 예비율은 13% 수준으로 떨어질 것으로 예상된다”고 보고 있다. 전력 예비율이 최소 15%는 넘어야 돌발변수에 무리없이 대응할 수 있는데, 13% 예비율로는 원전 1, 2기가 갑자기 고장 나거나 이상기후로 폭염이 닥칠 때 수급에 차질이 발생할 가능성이 높다.

원전과 석탄발전을 줄인다면 줄인 만큼 다른 데서 필요한 전력을 확보해야 한다. 전력 사용량은 늘어나게 마련인데, 천연가스로만 대체할 수도 없고, 태양열·풍력·조력 등 신재생에너지에 의존하기에도 자본과 기술 문제에 가로막힌다.

이를테면 현재 보급되고 있는 태양열·풍력 발전을 통해 원전 수준의 에너지를 생산하려면 기술상 문제는 별도로 하더라도 엄청난 규모의 인프라가 확보돼야 한다. 친환경 천연가스 발전만 하더라도 생산비가 2배 이상 든다. 후보들의 공약을 현실에 적용하면 전력 가격이 지금보다 최소한 5배 오른다(서균렬 서울대 원자핵공학과 교수)는 지적도 있다.

한편 ‘신고리 원전 5·6호기 건설 백지화 반대 범군민대책위원회’는 29일 울주군청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원전건설 중단 철회를 요구하고 있다. 국정기획자문위원회가 원자력안전위원회의 업무보고를 받은 이날 5호기는 터파기 공사를 마치고 철근 설비 작업에 돌입했고, 6호기는 터파기 공사가 한창이다. 총사업비 8조6254억 원 가운데 1조5000억 원이 이미 투입됐고 공정률은 28%를 보이고 있다.

주민들은 지난 10년간 원전 건설을 격렬히 반대해 오다 5·6호기 건설 정책에 협조하기로 했고 지원금 1500억 원을 받아 지역경제 활성화를 꾀하려고 했는데 무산될 판이다. 주민들은 억울하다며 “상경투쟁도 불사하겠다”고 선언하고 나섰다. 유례없는 원전 찬성 시위가 벌어질 판이다.

나라의 에너지 정책은 국민생활과 산업안전에 직결되는 문제다. 정책을 전환하기에 앞서 전기요금 인상, 전력공급 안정성, 과세 형평성 같은 에너지 전반에 대해 종합적이고 체계적인 접근을 통한 문제 해결이 우선이다. 그렇지 않으면 2011년 ‘9·15 대정전’의 악몽이 재연될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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