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문화생활 > 여행/레저
경주 월성 성벽서 인골 2구 발굴
고창식 기자  |  changsik@ikoreadaily.co.kr
폰트키우기 폰트줄이기 프린트하기 메일보내기 신고하기
승인 2017.05.16  11:07:32
트위터 페이스북 미투데이 네이버 구글 msn

성벽 쌓는 과정에서 인골 확인된 최초국내 사례

경주 월성 A지구 성벽 내 인골 출토
   
▲ 경주 월성 A지구 성벽 내 인골 출토 전경. 사진=문화재청 제공

문화재청이 사적 제16호인 경북 경주의 월성에 대한 정밀 발굴조사를 하던 중 서쪽 성벽의 기초층에서 제물로 추정되는 인골 2구가 출토되고 ‘소그드인’으로 추정되는 터번을 쓴 토우 및 병오년 간지가 정확하게 적힌 목간을 발굴했다.

문화재청 국립경주문화재연구소는 2015년 3월부터 진행 중인 경주 월성 정밀발굴조사의 중간 조사결과를 16일 월성 발굴현장에서 공개했다.

경주 월성 조사구역은 총면적 22만2000㎡규모로 편의상 A, B, C, D 등 총 네 지구로 나뉘어 있다. 월성 서편지구인 A지구는 지난 2015년 6월 발굴조사가 시작된 곳으로 이곳의 발굴조사를 통해 서쪽에 있는 성벽이 5세기에 처음으로 축조됐고 6세기에 최종적으로 보수됐던 사실을 확인했으며 문이 있던 자리는 이미 유실됐다는 사실을 밝혀냈다.

월성 성벽은 토성으로 성질이 다른 흙을 서로 번갈아 가면서 쌓아올리는 성토 기술로 축조했다.

성벽 최상부에는 사람 머리 크기만한 돌이 4단~5단 가량 무질서하게 깔려 있었다. 이는 흙이 아래로 흘러내리는 것을 막기 위한 기능으로 보이며 월성의 특징 중 하나이다.

문화재청은 이 월성 서쪽 성벽을 조사한 결과 축조연대를 5세기 전후로 판단하고 국내에서 최초로 성벽을 쌓는 과정에서 사람을 제물로 사용한 제의의 흔적이 확인했다.

인골은 성벽을 본격적으로 쌓기 직전인 기초층에서 출토됐는데 한 구는 정면으로 똑바로 누워 있고, 다른 한 구는 반대편 인골을 바라보게끔 얼굴과 한쪽 팔이 약간 돌려져 있었다. 두 구 모두 얼굴 주변에 나무껍질이 부분적으로 확인됐다.

성벽을 쌓는 과정에서 인골이 확인된 국내 사례는 이번 발굴이 최초다. 주거지 혹은 성벽의 건축과정에서 사람을 제물로 사용한 습속은 고대 중국 상나라에서 성행했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우리나라에서는 지금까지 제방이나 건물의 축조와 관련된 인주 설화로만 전해져 오다가 이번에 그와 같은 사실이 고고학적으로 확인됐다.

문화재청은 현재는 발굴된 이들 인골을 대상으로 자연과학적 연구를 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인골의 성별 및 연령 등을 확인하기 위한 체질인류학적 분석과 DNA 분석, 콜라겐 분석을 통한 식생활 복원, 기생충 유무 확인을 위한 골반 주변 토양 분석 등을 하고 있다. 이 인골에 대한 연구 결과가 나오면 당시 사람들의 다양한 생활상을 더 자세히 알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 해자에선 중앙아시아의 이란계 민족인 소그드인의 형상을 한 토우도 발견됐다. 사진=문화재청 제공

이번 조사 중 월성 북쪽 면에 길게 늘어서 있는 못인 해자에선 중앙아시아의 이란계 민족인 소그드인의 형상을 한 토우도 발견됐다.

월성 북쪽 해자는 지난 2015년 12월부터 지금까지 내부 정밀보완조사가 진행돼왔다. 조사 결과 해자가 500여 년 동안 수혈해자에서 석축해자로의 변화를 거치며 지속해서 사용됐다는 사실이 확인됐다.

수혈해자는 월성 성벽을 둘러싼 최초의 해자로 성벽 북쪽에 바닥층을 U자 모양으로 파서 만들었으며 해자 가장자리가 유실되거나 이물질을 막기 위한 판자벽을 세웠다.

석축해자는 수혈해자 상층에 석재를 쌓아올려 조성했으며 독립된 각각의 해자는 입·출수구로 연결돼 있다. 해자는 시간이 가면서 다시 쌓거나 보강하면서 폭이 좁아졌으며, 내부 토층별 출토 유물을 분류해본 결과 수혈해자는 5세기~7세기, 석축해자는 8세기 이후 사용된 것으로 판단됐다.

이 해자에서 출토된 흙으로 형상을 빚은 토우들이 여럿 출토됐는데 모양은 사람과 동물, 말 탄 사람 등 다양하지만 이중 터번을 쓴 토우도 발굴됐다.
   
▲ 경북 경주의 월성 지구. 사진=문화재청 제공

이번 터번 토우는 눈이 깊고 끝자락이 오른쪽 팔뚝까지 내려오는 터번을 머리에 두르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팔 부분이 소매가 좁은 카프탄을 입고 있으며 허리가 꼭 맞아 신체 윤곽선이 드러나고 무릎을 살짝 덮은 모양인데 중국 당나라 시대에 호복이라고 불리던 소그드인 옷과 모양이 유사해 페르시아 복식의 영향을 받은 소그드인으로 추정해 볼 수 있는 근거가 된다.

이 토우의 제작시기는 6세기로 추정되며 현재까지 출토된 소그드인 추정 토우 중 가장 이른 시기로 판단된다.

국립경주문화재연구소 관계자는 “신라 1000년 궁성인 월성의 체계적 복원을 위한 철저한 고증연구와 학술 발굴조사를 진행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고창식 기자의 다른기사 보기  
폰트키우기 폰트줄이기 프린트하기 메일보내기 신고하기
트위터 페이스북 미투데이 네이버 구글 msn 뒤로가기 위로가기
이 기사에 대한 댓글 이야기 (0)
자동등록방지용 코드를 입력하세요!   
확인
- 200자까지 쓰실 수 있습니다. (현재 0 byte / 최대 400byte)
- 욕설등 인신공격성 글은 삭제 합니다. [운영원칙]
이 기사에 대한 댓글 이야기 (0)
신문사소개기사제보광고문의불편신고개인정보취급방침청소년보호정책이메일무단수집거부
(주)코리아데일리  |  등록번호:서울 다 10506  |  등록일자:2011년12월12일  |  제호 코리아데일리
사장:박인환  |  상임고문:명정민/신상현  |  자문위원장:정찬우  |  발행인 겸 편집인:김양순  |  청소년보호 책임자:정다미  |  편집국장:이성호
발행소 : 코리아데일리 서울시 영등포구 여의도 61-4 라이프콤비 4층  |  대표전화 (02) 6924-2400  |  발행일자:2011년12월 12일
Copyright © 2017 코리아데일리.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