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과 함께 울고 웃으며 살아온 그의 검사인생

[코리아데일리 강동우 기자]

문재인 대통령은 12일 청와대 직제 개편에 따라 신설된 민정수석실 반부패비서관에 박형철 전 부장검사를 임명하면서 윤석열 검사도 덩달이 주목을 받고 있다.

박형철 신임 비서관은 윤석열 검사와 함께 2012년 ‘국가정보원 대선개입 사건’ 특별수사팀 소속으로 근무하다 정권에 밉보여 검찰을 떠났으나 정권 교체 덕에 청와대에 입성했기 때문이다.

특히 박 비서관은 지난 2012년 국정원 ‘여론조작(댓글) 사건’ 특별수사팀에서 부팀장으로 윤석열 팀장을 보좌했고 당시 수사팀은 원세훈 전 국정원장에게 공직선거법 위반 혐의를 적용해야 한다는 의견을 냈고, 검찰 수뇌부의 반대를 무릅쓰고 국정원 직원들에 대한 체포영장을 집행했다.

▲ 윤석열 검사 (사진 코리아데일리 DB)

이후 박 비서관은 ‘보고 절차 누락’을 이유로 감봉 1개월의 징계 처분을 받은 이후 한직을 전전했다. 검찰의 ‘징계성 인사’가 이어지자 박 비서관은 지난해 1월 검찰을 떠났다.

이와함께 주목을 받는 윤 검사도 같은 이유로 정직 1개월의 징계를 당했다. 박 비서관과 달리 검찰에 남아있었던 윤 검사에게는 대구와 대전고검 등 지방 발령이 계속됐다. 이후 윤 검사는 ‘최순실 국정농단 사건’을 수사하는 박영수 특별검사팀에 수사팀장으로 합류하기도 했다.

그러나 무엇보다 윤석열 검사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는 것은 그의 깨어있는 삶 또한 주목을 받고 있기 때문이다.

이는 철저한 분석이 이재용 부회장과 박근혜 전 대통령을 구속으로 이끌어 내며 또 하나의 감동을 주고 있기에 윤석열 검사가 주목을 받는 이유다.

검찰내 양심으로 주목을 받는 윤석열 검사는 사법연수원 23기 수료 후 1994년 검사로 임용되었다. 수원지방검찰청 여주지청장[1]으로서 근무 중 국가정보원 여론 조작 사건 특별수사팀장으로 활동하면서 검찰 수뇌부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국정원 압수수색을 단행하고 직원을 체포해 국민들에게 강인한 인상을 남겼다.

2016년 12월 1일 특검 수사팀장에 지명되어 수락하였다.[2] 제39대 검찰총장 채동욱은 '검사 윤석열'을 '치밀하고 해박한 법률 이론가이자 자기 헌신적 용기를 가진 예리한 칼잡이'라고 평가했다

윤석열은 1960년 서울 연희동에서 태어났다. 그의 부친 윤기중은 연세대학교와 일본 히토쓰바시대학 대학원을 나와 모교인 연세대학교의 통계학과에서 후학을 가르치다 정년 퇴직했다. 그의 모친은 이화여자대학교에서 강의를 하던 중 윤기중과 결혼하고 교수직을 마무리했다.

윤석열은 서대문에 있는 충암고등학교를 졸업하였고 1979년 서울대학교 법학과에 입학했다. 동기동창인 문강배 변호사는 “그는 재학 중 친구와 잘 어울리며 활달했고, 특히 의리가 있는 친구였다”고 기억했다.

그는 대학 재학 중이던 1980년 5·18 광주 민주화 운동 유혈 진압과 관련한 모의재판에서 검사로 출연해 대통령 전두환에게 ‘사형’을 구형했다고 한다. 당시 상황으로는 모의재판이라도 사형을 구형하기는 쉽지 않았다. 윤석렬은 이 모의재판 후 한동안 강원도로 도피했다.

그는 대학 4학년 때 사법시험 1차에 합격하고 2차에서 아슬아슬하게 떨어진 후 9년간 낙방하고, 1991년 제33회 사법시험에 합격했다.

다른 사법연수원 동기들보다 나이가 많아 ‘형’으로 통했다. 사법연수원 동기인 더민주당 소속 국회의원 박범계는 자신의 페이스북에 “윤석렬 형! 형을 의로운 검사로 칭할 수밖에 없는 대한민국과 검찰의 현실이 너무 슬픕니다”라는 글을 올린 적이 있다

그리고 국가정보원 대선개입 사건 특별수사팀장으로 검찰 수뇌부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국정원 압수수색을 단행하고 직원을 체포했다.

특별수사팀은 원세훈 전 국정원장에게 공직선거법 위반과 국가정보원법 위반 혐의를 적용했다. 윤석열은 국정감사 증인으로 나와 “나는 사람에게 충성하지 않는다”라는 말을 남겼고 이러한 그의 강직함에 특검에서 제일먼저 선택이 돼 최순실 국정농단을 지휘하고 박근혜 전 대통령의 뇌물죄에 대한 수사를 한 장본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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