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제석실분 잇단 발견, 백제무덤설 재부각

고고학계 해묵은 국적논란 종식될지 관심 모아져

▲ 코리아데일리 DB

맨 왼쪽에 입구가 보이는 고분이 1호분, 바로 뒤에 있는 고분이 2호분이다. 그 옆으로 조금 떨어져 있는 고분 2개가 3호분과 6호분. 이번에 발굴하는 고분은 3호분이며 나머지 고분들은 1970년대 조사된 바 있는 서울 송파구 방이동 산 47의 4번지에 있는 방이동고분군이다.

그런데 1500여년 전 무덤 잡은 자리는 옛 백제 도읍터 코앞인데, 나온 토기들은 죄다 신라의 유물이다. 30여년째 학자들 사이에 신라 무덤인지 백제 무덤인지를 놓고 국적 논란이 사그라들지 않고 있다.

이 무덤들은 1970년대 초 한 주민이 자기 집 축대와 인접한 1호분 무덤의 돌방과 널길을 발견해 신고하면서 존재가 알려졌다. 뒤이어 1975년 잠실 택지개발을 앞두고 문화재관리국이 1, 4, 5, 6호분 무덤을 발굴한 결과 백제, 신라 공통의 굴식돌방무덤(석실분)들이 대부분 나왔다.

조사단은 4세기~5세기 한성(서울)에 도읍한 초기 백제 무덤으로 점찍었다. 하지만 대부분 도굴된 상태에서 빈약하게 나온 굽다리접시, 직구호 항아리 따위의 토기 유물들은 한성백제 유물로 봤지만 1980년대 초까지 진행된 경주의 신라고찰 황룡사터 발굴 현장에서 방이동 출토품과 똑같은 굽다리접시, 항아리들이 무더기로 나온 것이다.

방이동고분군 주인이 6세기 한강 유역에 진출한 신라인들이란 학설이 제시됐고, 결국 신라계 무덤이라는 통설이 힘을 얻게 됐다. 1979년 사적 지정 당시 고분군 정식 명칭이 ‘방이동백제고분군’이었다가 2011년 명칭에서 백제가 빠진 건 이 때문이다.

백제설이 맞다는 주장도 있다. 최근 부근의 우면동과 하남시 감일동 등에서 한성백제의 정교한 석실무덤이 잇따라 발견되면서 방이동고분군 국적은 백제가 맞다는 설이 다시 힘을 얻기 시작했다.

일부 학자들은 백제인들의 석실무덤을 나중에 들어온 신라인들이 재활용했다는 주장까지 펴고 있다.

5세기~6세기 백제·신라 무덤 변천사에서 수수께끼의 고리가 되는 방이동고분군이 1970년대 이래 40년 만에 처음 발굴된다.

한성백제박물관은 4월 첫주부터 전문가들 자문 아래 고분군의 3호분을 발굴하는 학술조사에 들어간다고 28일 밝혔다. 3호분은 1970년대 발굴되지 않았다.

한성백제박물관 관계자는 “40년 만에 진행되는 이번 발굴조사가 방이동 고분군을 둘러싼 국적 논란을 잠재울 수 있을 지 관심이 쏠리고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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