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 체육계에 만연됐던 도핑(금지약물사용)이 정부 기관 차원에서 조직적으로 이뤄진 일이란 사실을 러시아 국립 도핑방지위원회(RUSADA)의 위원장이 시인했다.

러시아 정부가 운동선수들의 경기 실적 향상을 위해 금지약물을 조직적으로 투여했던 정황이 속속 드러나 파문이 확산되고 있는 가운데, 정부 기관장이 도핑 문제를 국가 차원에서 이뤄진 일로 인정하기는 이번이 처음이다.

▲ 캡처

안나 안첼리오비치 RUSADA 위원장 직무대행은 27일(현지시간)자 뉴욕타임스(NYT)와의 인터뷰에서 “도핑 스캔들은 제도적 음모였다”며 “수년에 걸쳐 도핑이 이뤄졌다”고 밝혔다. 또 다른 러시아 관리들도 2014년 러시아 소치 동계 올림픽 뿐만 아니라 전 올림픽 대회에서 대규모로 러시아 선수들에게 금지약물이 투여된 사실을 시인했다고 NYT는 보도했다.

안첼로비치 위원장 직무대행은 NYT와의 인터뷰에서 국제반도핑기구(WADA)의 조사와 언론의 보도를 통해 드러난 러시아 체육계의 도핑 실태에 대해 “충격을 받았다”고 밝혔다. 그는 도핑이 정부 기관 주도로 이뤄진 사실은 인정했지만, 정부의 최고위 관리들은 개입되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푸틴 대통령에 의해 반도핑 시스템 개혁 책임자로 임명된 비탈리 스미르노프 역시 “누구에게 책임이 있는지는 말하고 싶지 않다”며 “전직 체육부 장관이자 러시아올림픽위원회 (명예)회장인 나의 관점에서 보자면 우리가 많은 잘못을 저질렀다”고 말했다.

지난 5월 RUSADA 당시 책임자였던 그리고리 로드첸코프는 NYT와의 인터뷰에서 2014년 소치동계올림픽 때 금지약물 3가지를 칵테일한 약을 자신이 직접 개발해 시바스 리갈이나 마티니 등의 술에 타 러시아 선수 수십명에게 제공했다고 폭로한 바 있다.

자신을 비롯한 도핑전문가들과 정보국원들이 함께 매일 밤 경기를 마친 러시아 선수들의 소변샘플을 몰래 실험실 밖으로 빼내 수개월전에 미리 채취해놓은 해당 선수의 깨끗한 소변샘플로 바꿔치기하는 식으로 금지약물을 복용한 사실을 숨겼다는 것.

로드첸코프는 올림픽이 끝날 때까지 이런 식으로 폐기된 러시아 선수들의 소변샘플이 100여개였다고 말했다. 이 덕분에 금지약물을 복용한 러시아 선수들 중 단 한 명도 적발되지 않았으며, 러시아는 소치올림픽에서 최다 메달국가가 됐다는 것이다.

소치올림픽이 열리기 1년 전인 2013년부터 연방보안국(FSB) 요원들이 상시적으로 모스크바에 있는 RUSADA 실험실에 드나들었고, 소치올림픽 기간 동안에는 매일 정부 관계자로부터 소변 샘플을 바꿔치기 해야 하는 러시아 선수 명단을 받았다고 밝혔다.

당시 비탈리 무트코 러시아 체육부 장관은 로드첸코프의 주장에 대해 “전혀 근거없는 공격이며 허튼 소리”라고 반박했다. 또 로드첸코프가 돈을 받고 개인적으로 한 일로 몰아갔다.

그러나 지난 9일 리처드 맥라렌 캐나다 법학 교수가 이끄는 세계반도핑기구(WADA) 독립위원회는 “국제올림픽위원회(IOC)가 제공한 러시아 선수의 소변 샘플 95개를 조사해 28명의 선수가 샘플을 바꿔치기 했다는 증거를 발견했다”고 보고한 바 있다.

지난 24일 IOC는 소치올림픽에 참가한 러시아 선수 28명에 대한 징계 절차를 시작했다고 발표하는 한편 소치올림픽 뿐 아니라 2010년 밴쿠버동계올림픽 샘플에 대한 전면 재조사에도 박차를 가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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