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늦사랑' 가수 양재동, "내 가슴에 남은 정을 어디다 쓰겠니”

[코리아데일리 강윤지 기자]

“잠시 왔다 가는 청춘 모른 내가 바보지 내 가슴에 남은 정을 어디다 쓰겠니”

신인 가수 양재동의 ‘늦사랑’ 가사이다. 이 구절은 그의 인생과 마음을 나타낸다.

인터뷰 처음 마주한 가수 양재동은 멋이 느껴지면서도 친근한 아버지의 느낌이었다. 실제로 그는 두 아들의 아버지다. 두 아들의 아버지가 된 지금에서야 자신이 어렸을 적부터 꿈꿔온 가수라는 꿈에 첫발을 내딛은 가수 양재동을 만나봤다.

사진- 김학철 기자

▲늦은 나이에 가수의 꿈을 시작한 이유는 무엇인가.

일찍 시작하고 싶었지만 주위 환경이나 여건이 여의치 않아서 지금에야 꿈을 시작했다. ‘가수를 하지 않으면 눈을 감지 못할 것 같았다’ 어렸을 때부터 꿈이라고 할 수 있는데 내가 어렸을 때는 노래하면 시골에서는 속된 말로 “난리난다”고 했었다. 지금에야 시대가 많이 바뀌어서 꿈에 도전할 수 있었다. 지금은 제가 노래한다니까 같이 모시고 사는 어머니께서도 정말 좋아하시고 집에서 노래 부를 때 박수도 치면서 좋아하신다. 아내와 두 아들도 많이 응원하고 있다.

 

▲가수를 하기 전에는 어떤 일을 하셨나.

가수하기 전에는 대표적으로 건축일, 외식업을 했었는데 그 외에도 많은 일들을 하면서 성공하기도 하고 실패도 많이 하면서 그렇게 살았다. 20대 젊은 시절에는 막노동도 했었다. 현재도 그렇게 가진 것은 많지 않지만 ‘노래’라는 꿈을 시작하고 싶었다.

1년 전까지만 해도 여러 가지 일을 했지만 지금은 가수 활동에만 집중하고 있다.

▲ 사진- 김학철 기자

▲차태일 작곡가와는 어떻게 알게 됐고 어떻게 앨범 준비를 하셨나.

차태일 작곡가는 지인을 통해서 알게 됐다.

작곡가 차태일 선생님의 연습실은 교대에도 있지만 장호원에 하나가 더 있다. 대중교통을 이용하면 왕복 네 시간 거리인 그 곳에서 숙식하면서 1년을 다니면서 연습해 앨범을 내게 됐다.

차태일 선생님께서 남진 선배님의 둥지를 작곡하시기도 했고 제가 남진.나훈아 선배님과 닮은 점이 많아 작곡가님이 나훈아 선배님의 '고장난벽시계'처럼 가사가 길지 않으면서 비슷하게 ‘늦사랑’을 만들어주셨다. 비슷하게 따라한다기보다는 저만의 개성이 드러나게 좋은 곡으로 만들어 주셨다.

차태일 선생님께서는 고음이 잘 나오고 호흡이 좋다고 말씀해주셨다. 빠른 템포의 곡을 잘 소화한다고 생각하시는 것 같다.

 

▲이번 앨범 곡 ‘늦사랑’, ‘빙고’의 곡 소개를 해달라.

늦사랑은 이번 앨범의 타이틀곡이다.

평소 ‘남진, 나훈아’ 선배님과 비슷하다는 말을 많이 들었다. 차태일 선생님도 이 부분을 느끼시고 이 점을 많이 고려하셔서 곡을 만들어 주셨다.

나의 스타일과 장점을 파악하셔서 저에게 어울리면서도 좋은 곡을 주시려고 고심하신 것에 매우 감사하다.

‘빙고’는 ‘늦사랑’보다 더 신나는 노래다. 행사에서도 즐겁고 신나게 부를 수 있는 곡이며 들으면 많은 사람들이 좋아하실 것 같다. 개그적인 요소도 있고 '경쾌.유쾌.상쾌'한 춤추기 좋은 곡이다.

 

▲‘양재동’이라는 이름이 특이한데 본명이신가.

‘양재동’ 이라는 이름은 가명이다. 원래는 김철기라는 이름인데 앨범을 내면서 좋은 이름이 없을까 아내랑 집에서 많은 이름들을 직접 적어보면서 많이 고민하다가 쉽게 부를 수 있는 이름으로 양재동이라고 지었다. 내가 양재동에 살고 있어서 지은 이름이기도 하다. 도곡동 하계동은 이상하지 않느냐(웃음). ‘재동’이라는 이름은 “재동아 재동아” 라고 부르면 귀엽기도 하고 쉽고 편하게 부를 수 있는 이름이다. 이름 짓는데 많이 신경썼다.

나중에 가수 생활을 하면서 많이 알려지더라도 본명으로 바꿔서 활동 할 생각은 없고 ‘양재동’이라는 이름으로 계속 활동할 것이다.

사진- 김학철 기자

▲앨범을 내고 가수로 활동하는 데 대한 주변 반응은 어떠한가.

음반을 내니까 사람들이 들어보고 10년 전에만 냈더라도 지금쯤은 대성했을 것이라는 과찬의 말들도 하고 있다. 많은 사람들이 늦게 시작한 것에 안타까워하고 있지만 나는 지금이라도 시작한 것에 감사하다. 가족한테도 감사하고 주위에 있는 모든 분들에게 감사한 마음이다.

 

▲앞으로의 계획과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말은.

6개월 사이에 요양원이나 노인정에서 개인 사비로 지방으로 이동하면서 무료로 공연을 해 드리기도 했다. 할머니 할아버지들이 박수치고 웃고 잘한다며 칭찬해주셨다.

특히 제가 어머니를 30년 동안 모시고 살아서 요양원 같은 곳을 가면 어머님 생각이 많이 나서 먹먹해진다.

이 뿐만 아니라 앞으로도 불러주는 곳이 있다면 어디든 감사히 다니며 대중들을 만날 생각이다.

늦사랑을 40.50대 이상 분들이 많이 좋아하신다. 그렇지만 나는 가사가 젊은 층에게도 인기가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사랑이 갈 때 가더라도 이별이 올 때 오더라도’ 라는 가사는 모든 층에게 공감을 얻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또한 노래교실 박상훈 회장님을 만나서 이번 앨범 악보도 드리고 앞으로 수록될 예정이니 많이 사랑해주셨으면 좋겠다.

사진- 김학철 기자

가수 양재동은 한마디로 겸손한 가수이자 사람이었다. 자랑 좀 해달라는 말에 나는 잘난 것이 없다며 열심히 하겠다는 말만 연거푸 했다. 또한 “취미이자 특기는 노래뿐이다”라며 노래만을 향한 애정을 드러내기도 했다.

양재동의 노래는 익숙한 느낌이 들면서도 그만의 새로움이 느껴진다. 한 번 들으면 계속 듣고 싶은 멜로디와 목소리다.

특히 타이틀곡 '늦사랑'의 가사는 젊은 층 또한 많이 공감할 것이라는 생각이 들어 청춘들에게도 추천하고 싶은 노래다.

"40대 초반에 시작했으면 좋았을 걸 하는 아쉬움이 있지만 늦게 시작한 만큼 최선을 다하고 무조건 열심히 해서 초심을 잃지 않고 대중으로부터 인정받고 오랫동안 사랑받는 그런 가수가 되고 싶다"는 그.

"‘국민 가수’ 등의 멋진 타이틀보다 중요한 것은 좋은 노래를 들려드리고 좋은 가수가 되는 것"이라고 말하는 그에게서 청춘 못지 않은 열정과 진심을 볼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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