측천무후 중국 3녀 악여 그녀가 그렇게 된 숨겨진 스토리

[코리아데일리 정은채 기자]

29일 한국의 박근혜 대통령에 대한 이야기가 봇물을 이루는 가운데 오랜 역사를 자랑하는 중국에는 이름만 들으면 알만큼 유명한 역사 속 3대 악녀도 있다.

중국 역사상 황제보다도 높은 권력을 쥐어 황제를 허수아비로 만들기도 하고, 수많은 사람들을 숙청하는 등 나라를 흔들었기 때문에 ‘악녀’라는 호칭으로 불린 그녀들 가운데 가장 먼저 주목받는 이가 측천무후이다..

어떻게 보면 그녀가 악녀가 된 이유에는 파란만장한 삶이 그녀를 그렇게 만들었는 지 모른다.

▲ 축천무후 초상화 (사진출처=중국 축천무후 사당그림)

측천무후 武则天 Wǔzetiān (중국명:우쩌티엔)’의 성은 ‘무(武)’, 이름은 ‘조(照)’이며, 중국 ‘산시성’에서 태어났지만 그녀의 삶은 정말 '다사다난‘할 정도로 파란만장하다.

측천무후는 어린 나이에 뛰어난 미모로 당(唐)나라 태종(太宗, 재위 626∼649)의 눈에 띄어 후궁으로 들어가 총애를 받았지만, 25세의 나이에 태종 황제가 죽어 궁중의 법도에 따라 비구니가 되어야만 했다.

이후 절에 출가해서 살던 중 그녀의 미모에 반한 고종(高宗, 재위 649~683)이 다시 자신의 후궁으로 삼는다.

이때 그녀의 나이가 33살, 황제인 고종은 28살로 측천무후가 5살 '연상 '이었는데 실제로도 고종은 자신보다 연상인 측천무후의 매력에 빠졌다고 한 것으로 중국 역사책이 나타나있다.

측천무후는 고종의 후궁이 된 후부터 희대의 악녀라는 타이틀에 걸맞는 사악한 면모를 보여주기 시작하낟. 고종이 자신을 두고 다른 후궁을 생각하는 것에 진노하여 그 후궁의 손발을 자른 다음 술 항아리안에 가둬 죽였으며, 황후는 공주를 살해한 누명을 씌워 황후를 죽이는 등의 악행을 벌인 것.

또, 천성적으로 유약한 고종이 병으로 몸져 눕자 스스로를 천후(天后)라 칭하고 정권을 장악해 버리는 데 그녀는 '권력(权力‘)에 대한 욕구 또한 대단해 자신의 권력 유지를 위해서는 자식과 손자도 가차 없이 숙청 해 죽였다.

특히 자신의 장남이자 황태자인 이홍(李弘)을 이복자매들에게 동정심을 느꼈다고 하며 사약을 내려 ‘사사(赐死)’ 하는 일이 벌어졌는 데 이 때문에 차남 이현(李賢)이 자신의 형을 대신해 왕위에 오르게 되는데, 그가 바로 중종(中宗)이다.

그러나 중종의 왕비인 위후(韋后)가 자신의 권력을 위협하자 중종마저 폐위시키고, 자살을 하게 만들기도 하는 등 이 외에도 수많은 권력 다툼 속에서 수많은 신하, 왕족들을 유배 보내고 죽였다

이러한 암투 속에 690년, 측천무후는 65살이 되던 해에 당(唐)에서 주(周)로 국호를 바꾸고 중국 역사상 유일의, 처음이자 마지막 여황제가 된다.

고대의 주(周)나라와측측천무후의 주나라를 구별하기 위해 ‘무주(武周)’라고 부르기도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측천무후는 황제가 된 이후 전국 각지에서 '미남'을 뽑아 방탕한 생활에 빠지게 되고 놀라운 것은 70대의 노쇠한 나이에도 20대같은 피부를 유지하지만 그녀는 80대에 이르러 노환으로 인해 건강이 나빠지고, 이를 틈타 일어난 재상 장간지(張柬之)의 반란에 의해 폐위된 후 얼마 못 가 결국 죽음에 이르게 된다.이후, 그녀의 죽음과 함께 무주 시대는 막을 내리게 되고, 당나라로 다시 복고(復古)하게 된다.

여성의 몸으로 밑바닥에서 시작해 최고의 권력자가 되고, 권력욕과 성욕에 취해 보여준 광기어린 모습들은 측천무후가 지금까지도 계속해서 회자되는 이유는 또 다른 색다른 정치를 발전 시킨 업적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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