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한구, “해당행위자는 누구냐?” 정계에 부는 삭풍바람

[코리아데일리 이규희 기자]

이번 총선에서 새누리당의 현역 의우너을 비롯한 공천 탈락자들의 원성을 한몸에 받고 있는 이한구 새누리당 공천관리위원장은 정치인이라기 보다는 경제학자다.

이한구 위원장이 정치에 뛰들기 전까지 계에 가장 오랫동안 몸 담았던 곳은 대우경제연구소였다.

경북고와 서울대 경영학과를 나와 1969년 행정고시 합격한 후 재무부에서 근무하다 1984년 대우그룹으로 옮겼다. 당시 회장실 상무로 일하던 그는 김우중 회장의 두터운 신임을 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 오명속에 새누리당 공천의 대임을 끝낸 이한구 새누리당 광천관리 위원장 (사진=뉴스1)
이러한 이한구 위원장은 “세상은 넓고 할 일은 많다”는 김우중 회장의 대표책도 이한구 위원장이 기초했으며 김 회장의 ‘세계경영’ 전략도 그의 머리에서 나온 것은 유명한 일화다.

이러한 철저한 김 회장 맨이었던 이한구 위원장은 대우 그룹이 1999년 문을 닫을 때까지 민간 ‘싱크탱크’ 역할을 톡톡히 했다.

그에게는 당시 대우그룹을 출입하던 기자들 사이에는 1987년부터 9년간 대우경제연구소장을 지내는 동안 ‘완벽주의자’로 통했다. 이러한 그가 정치에 뛰어들었고 가장 먼저 20대 공천 불출마를 선언했다.

그러나 그는 김무성 새누리당 대표와 연일 설전을 벌이면서도 자신의 소신을 굽히지 않았다.

이한구 위원장의 가장 큰 공과는 역사가 말해주겠지만 현재 이한구 위원장의 마음은 허탈할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23일까지 이 위원장은 유승민 무소속 의원이 23일 밤 새누리당을 전격 탈당한 가운데 새누리당 공천관리위원회는 24일 4·13 총선의 대구 동을 지역구 후보로 이재만 전 대구 동구청장을 단수 추천하는등 바쁘게 보냈다.

욕과 함께 칭찬하는 사람이 없는 가운데서도 그는 묵묵히 주어진 일에 최선, 역사 앞에 부끄러움 없는 사람이 되기 위해 노력을 했다.

하지만 김무성 대표는 대구 동을 공천 심사 결과 추인을 위해 개최할 예정이었던 최고위원회의를 연기하는 등 쉽사리 도장을 찍어줄 기색이 없어 막판 갈등 국면이 연장되고 있다. 만약 김 대표가 후보자등록 신청 마감일인 25일까지 추인을 거부한다면 대구 동을에 유 의원만 출마하는 사태가 벌어지는 등 여권이 대혼란 속에 빠질 전망이다. 그렇게 되면 역사의 죄인은 누가 될까?

그의 원칙적인 삶은 이 위원장이 대통령 선거 때가 되면 대권후보들의 ‘경제교사’ 명단에 오른 것만 봐도 잘 알수가 있다.

이회창 한나라당 총재의 권유로 정계에 입문한 이 위원장은 2000년 제16대 총선에서 비례대표로 의원 배지를 달았다. 2004년 제17대 총선에서 대구 수성갑에 출마해 당선된 이후 같은 지역구에서 3선을 했다.

2012년 대선 때 박근혜 후보 캠프에 몸담으면서 ‘진박’으로 자리매김한 그는 올해 2월 불출마를 선언하고 지역구를 떠나면서 ‘잊혀진 정치인’이 되는 듯했지만 마지막 봉사라는 차원에서 새누리당 공청관리위원장 직을 맡아 소신있는 결단을 내려왔다.

그러나 정계 일각에서는 “새누리당 공천관리위원장이 돼 공천 칼자루를 쥐면서 피바람을 몰고 왔다. ‘유승민계’ ‘친이계’ 등 비박계 의원들은 그가 휘두른 칼날에 베어 줄줄이 낙천했다.”고 곱지 않은 시선을 보내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이번 공천에서 컷 오프 당한 한 현역 의원은 “이한구 씨는 청와대의 하청을 받고 무자비한 공천학살의 전면에 섰다”고 질타를 하고 있지만 아직 그를 질타하거나 폄하하기에는 이르다.

그는 평생을 그렇게 했듯이 ‘마이웨이’를 이번 공천 과정에서도 고집했다.

그러나 그의 이러한 과감한 ‘공천학살’속에는 억울하게 총선 후보자 공천을 위한 여론조사 경선에서 ‘진박’ 예비후보들이 대거 탈락을 몰고왔다. 그가 그토록 하고 싶었던 현역 의원의 물갈이는 조직적인 한 힘의 축에 의해서 연일 발이 잡혔고 부산의 경우는 현역 의원이 전원 살아 남는 역사의 후진성을 그대로 보여줘 대다수의 국민들은 이한구 위원장이 못한 일에 대한 질책보다는 그를 그렇게 매도한 한축에 대해 곱지 않은 시각을 보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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