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종인, 선비처럼 곧은 마음으로 살아온 생애 국민들 추앙

[코리아데일리 이규희 기자]

더불어민주당을 수습하고 올바른 생애의 길을 떠나는 김종인 대표는 국내 최고의 경제학자이자 정치인이다.

초대 대법원장 김병로의 손자인 그는 한국외국어대학교 졸업 후 뮌스터 대학에서 박사 학위를 취득했으며, 1973년부터 1988년까지 서강대학교 경제학과 교수를 역임했다.

1981년부터 비례대표로만 4선 국회의원을 지냈다. 1987년 제9차 헌법 개정에서 경제민주화 조항 신설(헌법 119조 2항)을 주도하기도 했다. 2016년 제20대 국회의원 선거를 앞두고 더불어민주당 비상대책위원회 대표로 임명됐으나 흔드는 자에 의해서 당무를 거부하기도 한 굳은 절개를 가진 선비 정신의 정치인이다.

김종인 대표는 1940년 경기도 시흥군 동면 신림리에서 태어났다. 중앙고등학교 졸업 후 한국외국어대학교에서 독일어를 전공했다.

▲ 김종인 더불어민주당 대표
한국외대 재학 중이던 1962년에서 이듬해까지 할아버지 김병로가 야당 지도자가 되면서 보좌관역으로 정계를 경험했다.

졸업 후 독일 뮌스터 대학에 유학해 경제학 박사를 취득했다. '라인강의 아버지'로 불리는 경제학자 루드비히 에르하르트(Ludwig Erhard,1897-1977)에게 영향을 받았다.

그는 1977년 박정희 대통령에게 국민건강보험 도입을 건의했으며 1980년에는 신군부의 국가보위입법회의 전문 위원을 지내면서 재벌의 비업무용 부동산 투기 등에 대해 문제를 제기했다.

이듬해 민정당 소속으로 전국구 국회의원(비례대표)가 됐다. 이후 노태우 당시 민정당 대표의 핵심 경제 참모로서 그는 당사 안팎에서 기회 있을 때마다 기자들에게 독일과 미국을 비롯한 선진국의 사례를 들어가며 한국 사회가 초고속 성장 과정에서 불가피하게 치르게 될 엄청난 대가와 이에 따른 정치·경제·사회적 부작용을 최소화하는 방법에 관해 역설하고 다닌 일화는 유명하다.

민주정의당 비례대표로 제11·12대 국회의원을 지낸 후 노태우 정부의 보건사회부 장관으로 8개월 가량을 보낸 뒤 청와대 경제수석비서관이 돼 경제민주화에 대한 구상과 재벌의 비업무용 부동산 처리, 재벌의 문어발식 확장에 대해 업종전문화 등을 강도 높게 밀고 나갔다. 이후 민주자유당 비례대표로 제14대 국회의원을 지냈다.

2004년에는 새천년민주당 제17대총선 선거대책위원회 공동위원장을 맡으며, 새천년민주당 비례대표를 지냈다.

2012년에는 박근혜 대선경선캠프 ‘국민행복추진위원회’의 공동선거대책위원장을 역임하며 선거 승리를 돕는 등 여야를 넘나들며 소위 킹메이커로서 자리매김해 대선 공약을 만드는 데 일조를 했다.

그는 또 노태우 정부 시절 집값,땅값 급등을 막기 위해 토지공개념제가 도입되나 줄줄이 위헌 소송 등으로 좌초됐다. 당시 청와대 경제수석을 지낸 김종인은 토지공개념을 도입한 주체로 여겨졌었다.

그러나 이런 세간의 인식과는 달리 김종인은, 2005년 부동산 투기 열풍에 열린우리당이 재도입하려던 토지공개념이 궁여지책일 뿐이라며 폄하하고 다음과 같이 말했다. "토지공개념은 1989년 도입 논의 당시 경제기획원이 창작한 단어로 경제학에도 없는 개념이며, 국유지·사유지는 있을 수 있어도 토지공개념은 소설 속에서나 나올 수 있는 말"이라고 밝혔다.

이어 "나는 보건사회부 장관으로 있었는데 토지공개념은 절대로 안된다고 반대했었다"며 "도입을 주장했던 사람도 근거를 제대로 설명은 못한 채 토지공급 확대가 어렵다는 명분만 내세웠다"고 덧붙였다.

"토지공개념은 세제정책으로 일시적 효과를 거둘 수는 있겠지만 결국시장이 적응하는 방법을 찾게 된다"며 "토지초과이득세 등은 절대로 부과할 수 없는세금으로 위헌소지가 있으며 '개발이익환수제'도 결국 토지값으로 전가되게 된다"고 강조했다.

그는 부동산 투기를 억제할 근본 방책은 "세제로 투기억제를 하겠다는 발상은 잘못됐고 금리인상 등 경제정책 전반을 잘 조율해서 해법을 찾아나가야 한다"고 주장했다.

한편 2016년 더불어민주당의 비대위원장을 맡은 그는 평소 경제민주화나 재벌 독과점 철폐에 대한 지론과는 달리 김현종 한미FTA 전 통상교섭본부장을 당내에 영입해 논란을 불렀다.

김현종 씨는 게다가 2009년 이후 삼성전자 글로벌 법무 담당 사장으로 일해온 터였다. 이에 대해 국회 농해수위 소속 더민주 신정훈 의원은 코리아데일리와 통화에서 "우리당은 국내산업을 고려해 탄력적으로 개방을 조절해야 된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다"며 "물론 당 지도부가 바뀌면서 정체성과 정책은 변화할 수 있지만, 반농민적이고 당의 정책에 명백히 반하는 인사(김현종 씨)를 아무런 해명과 검증없이 데려온 것은 당 정체성 문제를 야기할 것"이라고 비판했다.

장하나 더민주 의원도 20일 '김현종 전 본부장 영입을 철회해야한다'고 주장해 논란은 더욱 커졌다. 인천 계양 갑에 출마를 선언한 김현종 전 본부장은 2016년 3월 18일 4차 경선 결과 43.15%를 얻어 66.85%를 기록한 유동수 전 인천도시공사 상임감사에게 밀려 공천이 좌절된 상태다.
2016년 2월 9일 김종인 더민주 비대위 대표는 경기도 파주의 군부대를 방문해 “장병들이 국방 태세를 튼튼히 유지하고 우리 경제가 더 도약적으로 발전하면 언젠가 북한 체제가 궤멸하고 통일의 날이 올 것을 확신한다”고 말했다.

2016년 3월 분열된 야권을 연합시키기 위해 김종인 대표가 안철수 국민의당 공동대표를 만났다. 회동 후 안철수 공동대표는 회담 결렬을 선언하며 “더민주 내부에서 (김종인 대표에) 짜르라는 별명이 붙었다고 한다. 모두까기 짜르인 셈이다. 우리나라가 그럼 여왕(박근혜 대통령)과 짜르의 시대란 말인데 정말 국민이 불쌍하다는 생각이 든다”고 덧붙였다. 연대 논의에 대한 거듭된 질문에 안 대표는 “어제부로 다 정리됐다고 생각한다”고 잘라 말했다.

한편 김종인 대표의 가족사를 보면 본관은 울산으로 문묘 배향자인 김인후의 후손이고 초대 대한민국의 대법원장 가인 김병로의 손자이며 동아일보, 고려대학교의 설립자인 인촌 김성수 전 부통령과 먼 친척이다.

친인척 중에는 헌법재판소장, 청와대 비서실장, 경제 각료와 참모 등이 두루 포진해 있다. 처삼촌이 박정희 대통령의 비서실장을 8년 9개월이나 지낸 김정렴 씨고 장인이 한일은행장을 지낸 김정호(작고)다.

매형은 박봉환 전 동력자원부 장관이고, 4촌 처남이 노태우 정부 시절 건설부 장관과 청와대 경제수석을 지낸 이진설이다. 대법관과 헌법재판소장을 지낸 윤영철, 작고한 이택돈 전 신민당 국회의원(변호사)도 4촌 처남이다. 또한 강만수 사단의 일원으로 청와대 경제수석, 필리핀 대사, 지식경제부 장관직을 지낸 최중경이 5촌 조카사위다. 아랍에미리트 대사를 지낸 권태균 전 조달청장도 5촌 조카사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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