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식 개미 울리는 큰손들의 모럴해저드

[코리아데일리] 전문 지식과 인맥을 활용한 불공정 거래로 주식시장 질서를 왜곡하고, 검은 돈을 주고받아온 국내 기관투자자들이 검찰 수사로 철퇴를 맞았다.

기관투자자는 투자신탁회사, 은행 등 법에 규정된 금융회사나 대규모 주식 투자를 하는 연기금 등의 법인 투자자를 가리키는 말이다.

서울남부지검 증권범죄합수단(단장 김형준 부장검사)은 올해 4월부터 지난달까지 증권사 임직원 등 국내 기관투자자의 금품수수와 주가조작 비리를 집중 수사한 결과 모두 27명을 기소했다고 9일 밝혔다. 검찰은 이들 중 19명을 구속기소했다.

이 가운데는 최대주주 등 상장사 경영진도 2명이 포함됐다. 전·현직 금융기관 임직원 17명, 금융브로커 2명, 시세조종꾼은 5명이었다.

대표적 모럴해저드는 증권사 임직원들이 기관투자자에게 거래량이 적은 종목을 블록딜(시간외 대량매매)해주는 대가로 해당 회사 관계자 등으로부터 금품을 받는 관행이다.

검찰은 이번 수사를 통해 모럴해저드가 심각한 증권사 임직원 4명과 한국거래소 차장 최모(44)씨 등 8명을 적발해 알선수재 혐의로 구속기소했다.

지난해 KB투자증권 이사 박모(47)씨와 KDB대우증권 법인영업팀장 김모(43)씨 등 증권사 임직원 3명은 코스닥 상장사 인포바인 대주주로부터 자사 주식 45만주를 처분해 달라는 의뢰를 받았다.

이들은 8월부터 10월까지 기관투자자들에게 130억원에 주식을 블록딜해주는 대가로 6억9000만원을 받은 것으로 확인됐다.

블록딜 알선 가담자들은 '검은 돈'을 넘겨받아 모럴해저드가 심각함에도 페이퍼컴퍼니를 세워 가짜 계약을 체결하고 컨설팅 비용 명목으로 대가를 받는 등 지능적인 방법을 동원한 것으로 드러났다. 받은 대가는 자금 세탁을 통해 현금으로 환전한 뒤 가담한 사람끼리 나눠 가졌다.

블록딜 거래로 피해를 본 이는 개인 투자자들이었다.

기관투자자들은 증권사 임직원들의 알선으로 주식을 샀지만 해당 종목의 성장 가능성이 없다는 사실을 알고 당일 매수 주식 45만주를 전부 팔아치웠다.

주가는 폭락했고, 기관투자자의 대량 매수를 호재로 알고 뒤따라 해당 종목 주식을 샀던 일반 투자자들은 큰 피해를 입었다. 검찰이 파악한 피해 규모만도 10억여원에 이른다.

미공개 정보와 인맥을 활용해 조직적으로 시세를 조종한 증권사와 금융기관 직원, 증권방송 투자전문가 등의 유착관계도 이번 수사에서 전모를 드러냈다.

 

현직 증권사 직원이 시세조종 세력으로부터 돈을 받고 고객 계좌를 시세조종에 동원한 사례가 대표적이었다. 검찰은 가담자들을 자본시장법 위반 혐의로 구속기소했다.

지난 1월부터 7월까지 코스닥 상장사인 현대페인트 최대주주 이모(43)씨 등 9명은 이전 최대주주로부터 주당 평균 1300원에 회사 주식 2400만주를 인수한 뒤 주가를 인위적으로 띄웠다.

그리고는 최대주주가 바뀐 사실을 공시하지 않고 인수 주식 중 1900만주를 처분해 218억원의 부당이득을 챙겼다.

지난 3월에는 교보증권 등 현직 증권사 직원 5명이 현대페인트 측으로부터 고객계좌를 이용해 주식을 사 달라는 부탁을 받고 각각 1000~2500만원의 금품과 향응 접대를 받았다.

검찰은 고객계좌를 이용해 수천만원의 돈과 향응을 받고 주식매매 청탁을 받고 시세조종에 가담한 혐의로 교보증권 부지점장 김모(44)씨를 구속기소하는 등 현직 증권사 임직원 5명을 금품수수와 주가조작 비리로 기소했다.

증권방송에서 유명세를 얻은 투자전문가가 고객 계좌를 이용해 범행에 가담한 사실도 드러났다. 투자전문가 예모(42)씨는 방송에서 종목을 추천하는 기존 방식과 더불어 직접 투자자문사를 운영하면서 관리하게 된 고객 계좌 100여개를 동원해 현대페인트 주식을 직접 매수하는 방법으로 시세조종에 가담했다.

이씨 등은 코스닥 상장법인인 현대페인트를 무자본 합병한 기업사냥꾼으로, 일반 투자자들은 지분변경 내역을 알지 못하도록 공시도 하지 않은 채 시세조종을 하고 주식을 처분해 부당이익을 챙겼다고 검찰은 설명했다.

2013년 1월부터 6월까지 전현직 증권사들과 전 한국거래소 직원 등 금융권 관계자 9명이 조직적으로 공모해 대주주로부터 장외에서 매수한 신한 주식 100만주 주가를 띄우고 11억원의 부당이득을 챙긴 사실도 수사 과정에서 밝혀졌다.

시세조종 기간 최고 6680원까지 올랐던 주가는 이들이 주식을 처분한 이후 3000원대까지 폭락해 반토막이 났고, 손해는 고스란히 개인 투자자들에게 돌아갔다.

범행을 총괄한 주범인 한화투자증권 전 직원 박모(36)씨는 수사가 진행되는 동안에도 8개월간 고급 호텔에서 도피하며 골프를 치는 등 호화생활을 즐겼다고 검찰은 밝혔다.

검찰은 이번 수사로 확보한 73억원 상당의 범죄수익을 추징보전 조치하고 396억원의 과세대상 자료를 국세청에 통보했다.

검찰은 앞서 국내 시장에서의 영향력을 이용해 뒷돈을 받고 주가를 조작하는 등 주식시장을 왜곡한 외국계 금융사 임직원들의 비리를 수사해 11명을 구속한 바 있다.

이 과정에서 증권사와 자산운용사 등 국내 기관투자자 임직원 사이에서도 유사 범행이 암암리에 이뤄지고 있다는 단서를 입수하고 수사를 확대했다.

이번 수사를 계기로 KB투자증권 등은 블록딜 거래 창구를 본점으로 일원화하는 등 재발방지 대책을 마련했다. 한국거래소도 정기적으로 블록딜 관련 감시를 실시하기로 했다.

검찰 관계자는 "자본시장의 근간을 이루는 금융기관 임직원과 한국거래소 등 시장감시기구 직원까지 범행에 연루되는 등 들의 모럴해저드가 심각한 것을 확인했다"며 "불법으로 얻은 수익을 철저히 환수하는 등 엄단할 방침"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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