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맹희, CJ그룹 명예회장 ‘땀 한말 눈물한짐’ 학처럼 곱게 산 생애 빈소 표정

[코리아데일리 이규희 기자]

故 이맹희 CJ그룹 명예회장 빈소에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등 범 삼성가 인사들의 조문이 이어지는 등 유산문제로 갈등을 빚어온 삼성과 CJ가문이 화해하게 될지 재계의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17일 밤 9시쯤 이맹희 CJ그룹 명예회장의 빈소인 서울대학교 병원을 찾아 조문한데 이어 가장 먼저 이건희 회장의 부인인 홍라희 리움미술관장과 딸인 이부진 호텔신라 사장과 정용진 신세계 부회장 등이 빈소를 찾는 등 범 삼성가인 삼성과 신세계, 한솔, 새한 일가의 조문이 이어져 눈길을 끌고 있다.

▲ 서울대학병원에서 조문을 받고 있는 故 이맹희 CJ그룹 명예회장
한편 이 부회장은 병석에 있는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을 대신해 삼성가의 대표로 조문에 나섰고, 빈소에서 별다른 언급을 하지 않은 채 유족을 위로한 것으로 알려졌다.

18일 부토 본격족인 조문을 받을 예정인 故 이맹희 CJ그룹 명예회장 빈소는 손경식 CJ그룹 회장과 이 명예 회장의 차남인 이재환 대표 등이 문상객을 맞고 있다.

CJ그룹 측은 이 명예회장의 장남인 CJ그룹 이재현 회장은 신장 이식 수술 이후 감염억제제를 투여하고 있어 감염 문제로 빈소에 오지 못할 것으로 알려져 안타까움을 더 해주고 있다.

한편 CJ그룹은 18일 오전 9시부터 공식 조문을 받고, 영결식은 20일 오전 서울 CJ 인재원에서 열기로 했다.

이에 앞서 지난 14일 이국 땅인 중국에서 지병으로 별세한 故 이맹희 CJ그룹 명예회장은 이건희 삼성그룹의 회장과 뒤 바뀐 운명 속에 한 평생을 한을 안고 산 삼성그룹 칭업주 이병철 전 회장의 장남이다.

이러한 가운데 네티즌들은 이맹희 전 회장이 회상한 '묻어둔 이야기'가 새롭게 조명되고 있다.

후일 이병철 전 회장은 자신의 자서전 ‘호암자전’에서 정부가 삼성을 죽이려고 한 것이라며 억울함을 호소한 것이 재조명되고 있는 것.

이 명예회장은 사카린 밀수 사건의 최대 피해자이다.

이 사건으로 인해 이병철 회장은 결국 사카린 밀수사건으로 “모든 사업에서 손을 떼겠다”고 밝히고 사업에서 물러났다가 18개월 만인 1968년 2월에 다시 복귀하기전 까지 삼성을 이끈이가 바로 故 이맹희 CJ그룹 명예회장이다.
결국 사카린 사건은 아들인 이창희 등만이 처벌되고 이병철 회장에게는 아무런 제재도 가해지지 않았다. 이 기간 중 사카린 밀수 사건을 수습하고 삼성그룹의 안정을 위해 노력했던 故 이맹희 CJ그룹 명예회장은 아버지 이병철이 삼성의 경영에 복귀한 뒤에는 1968년 삼성전자 부사장이 되었다.

▲ 17일 밤 9시경 큰아버지인 故 이맹희 CJ그룹 명예회장을 조문한 이재용 삼성그룹 부 회장
그 뒤 이맹희 회장은 후계자에서 밀려났고 아버지 사후 그룹이 셋째 아들 이건희에게로 승계되면서 故 이맹희 CJ그룹 명예회장은 1993년 제일비료 회장이 됐다.

두 사람의 갈등은 급기야 2013년에는 이병철 선대회장의 상속재산을 둘러싸고 이맹희와 이건희는 법정다툼을 벌였다.

이건희 회장에 따르면 이맹희 전 회장은 “30년전에 자신을 군대에 고소하고 아버지를 형무소에 넣겠다고 하고 청와대 그 시절에 박정희 대통령한테 고발했다가 가문에서 이미 퇴출당한 양반'이라며, '자기 입으로는 장손이다, 장남이다 그러지만 이미 아버지께서 "맹희는 완전히 내 자식 아니다"라고 못 박았으며, 지금도 자신을 포함해서 누구도 장손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없다”고 주장하였다.

이 소송에서 법원은 상속회복 청구권의 소멸시효가 지났고 재산의 동일성을 인정할 수 없다는 이유로 이건희 회장의 손을 들어줬다. 이맹희는 이어 항소를 했으나 2심에서도 패소하였다.

이후 故 이맹희 CJ그룹 명예회장은 2012년 12월 폐암 2기 판정을 받고 폐의 3분의 1을 절제하는 수술을 받았지만 이듬해 암이 전이되어 일본과 중국 등을 오가며 치료를 받아왔으나, 결국 2015년 8월 중국 베이징에서 끝내 별세했다.

이맹희 전 회장의 묻어둔 이야기는 아버지 이병철 전 삼성의 창업주와 가족들이 자신을 정신병 환자로 몰아갔다는 점을 회상했다.

그는 "부산의 어느 양심 없는 의사를 찾아가 당시 돈으로 300만원인가를 주고 내가 정신병이라는 의사 소견서를 받아냈다고 한다."고 적었다.

또 "용인의 가족회의 석상에서 공개적으로 이야기를 진행했던 바 집안 식구들끼리 일을 분담했다. 물론 아버지의 지시였다.

누구는 병원에서 진단을 받고 누구는 경찰에 가서 형사 지원 요청을 하고 심지어는 내가 나중에 은행 대출을 하려고 하자 그것까지 집안 식구라 막고 나섰다. 당시 누구라도 아버지의 명령을 거역한다는 것은 불가능했다."고 회상했다.

▲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과 다정한 시절의 故 이맹희 CJ그룹 명예회장
1984년 9월 중순 어느 날 밤 이맹희는 아버지 이병철의 부산 해운대 별장에서 지내고 있었다. 그의 손에는 브라우닝 6연발 샷건이 있었다. 잠시 뒤 현관문에서 건장한 사내 둘이 들어오더니 주춤거리며 "삼성 비서실에서 왔습니다."라고 말했다. 이맹희는 화를 참지 못하고 총을 쏴서 사내들을 별장에서 몰아냈다. 이맹희는 이를 가족들이 자신을 정신병 환자로 몰아 격리시키려는 시도였다고 회상하기도 했지만 이 사건은 영원한 수수께끼로 남게 됐다.

한편 故 이맹희 CJ그룹 명예회장은 안국화재 상무이사와 미풍산업 상무이사를 지냈고 1966년 사카린 밀수 사건 이후 잠시 삼성그룹을 맡아보기도 했다.

또 故 이맹희 CJ그룹 명예회장은 아버지 이병철 삼성의 창업주와 불화를 겪으며 삼성에서 쫓겨난 이후 대구와 부산 국내 산간벽지를 떠도는 생활을 한 것으로 알려진 파란만장한 삶을 산다가 학처럼 살다가 떠난 비운의 기업인이고 가족에 따르면 눈을 감기전 까지도 장남인 이재현 현 CJ그룹 회장이 옥고를 치루고 있는 것을 안타까워하고 아들의 건강을 주위측근에 부탁한 유언장이 새삼 18일 네티즌들의 가슴을 아프게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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