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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용어 ‘청문회’ 얽힌 암울한 정치사
이규희 기자  |  khlee@ikorea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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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5.02.10  16:16: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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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완구 ‘청문회’ 얽힌 역사 그 진정한 의미는?

[코리아데일리 이규희 기자]

청문회의 본래 취지는 국회는 주요 국정 현안들과 관련하여 새로운 입법의 필요성에 대한 점검, 입법추진에 필요한 공적 기록의 축적, 관련단체나 시민들의 불만 또는 의견의 표출기회 제공, 정부의 정책집행에 대한 점검 등의 효과를 얻을 수 있기에 알권리를 위해 꼭 필요한 제도다.

   
▲ 여의도 국회의사당
국회가 의정활동을 수행하는 과정에서 사실이나 진상의 규명, 입법정보의 수집, 관련 전문가 또는 단체의 의견을 청취할 수 있게 하는 제도인 청문회가 이완구 청문회 중계로 10일 네티즌들의 주목을 받고 있다.

이는 이완구 국무총리 후보자가 인사청문회 이전에 여러 의혹에 휘말렸다. 이에 따라 이완구 청문회 중계에 대한 국민적 관심도 높아지고 있는 것.

청문회는 또 그 준비 및 실행과정에서 의원들에게 특정 현안에 대한 전문적 정보와 지식, 그리고 다양한 정책적 평가를 수집하거나 청취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해 준다는 점에서 의정활동의 전문성 제고에 기여할 수 있다.

이런 점에서, 청문회는 주요 국정 현안에 대한 정보와 지식, 이해 당사자들간의 쟁점 등을 국민에게 공개·전파함으로써 주요 정책결정 또는 국정 현안에 대한 국회의 대정부 감시활동에 간접적으로 국민의 참여를 보장해 주는 효과도 지니고 있다.

청문회는 그 내용에 따라 입법청문회·조사청문회·인사청문회로 구분된다. 입법청문회는 입법 현안에 관련된 정보와 전문적 지식의 청취에 목적이 있으며, 조사청문회는 쟁점현안의 사실이나 진상의 규명에 초점을 둔 것이다. 인사청문회는 주요 공직인사 후보자의 적임성을 검증하기 위한 청문회이다.

청문회가 가장 잘 발달되어 있는 나라는 미국이다. 청문회 없이 법안이 입법되는 사례는 없다고 할 만큼 청문회가 의회활동의 필수불가결한 과정으로 정착되어 있다. 우리 나라에서는 1987년 민주화 이후인 1988년 6월 ‘국회법’(법률 제4010호)을 개정하면서 처음 도입되었다.

   
▲ 청문회를 중계하는 중계 요원들
뒤이어 1988년 8월 ‘국회에서의증언·감정등에관한법률’(법률 제4012호)을 제정하여 국정감사 및 국정조사에서의 입법 및 조사청문회의 개최를 가능하게 하였다.

그러나 인사청문회는 여·야 간의 오랜 논란 끝에 제15대 국회의 마지막 회기였던 2000년 2월에 국회법 개정(법률 제622호)을 통하여 입법화되었다.

그 동안 국회에서 진행된 청문회는 주로 국정조사과정에서의 조사청문회가 주를 이루었다.

1988년 전두환(全斗煥) 정권의 5공화국 비리를 규명하기 위한 제5공화국의 정치권력형 비리조사특별위원회의 청문회, 5·18 광주민주화운동 진상조사특별위원회의 청문회 및 국회 문공위원회의 5공화국언론탄압진상규명과 관련한 청문회 등이 사상 처음으로 개최되었다.

전두환 전 대통령을 포함한 전·현직 정치인과 고위공직자들을 출석시킨 가운데 텔레비전으로 생중계된 각 청문회는 5공화국 정권에 대한 국민적 분노와 함께 폭발적인 국민적 관심과 흥분을 불러 일으켰다.

그 이후 입법과 관련된 청문회나 조사청문회는 한동안 개최되지 않고 있다가, 1997년 외환위기 발생과 관련하여 1999년 1월에 국제통화기금(IMF)환란 조사특별위원회가 개최되었다.

그러나, 이 청문회는 외환위기 발생 당시의 여당이었던 야당(한나라당)이 불참한 ‘여당단독 청문회’로 진행되었을 뿐만 아니라, 사안 발생 이후 1년 여의 시간이 경과한 시점에 개최되었다는 점에서 국민적 관심을 끌지 못했다. 또한, 의원들의 질의수준도 시민들로부터 ‘내용은 없고 목청만 높인 3류 정치청문회’라는 비난을 받을 정도였다.

   
▲ 청문회 모습
개정국회법 ‘제65조의 2’와 ‘제46조의 3’에 의해 도입된 인사청문회는 야당이 주장해 온 국가정보원장·검찰총장·경찰청장·국세청장을 제외하고, 최종적으로 국회의 임명동의를 요하는 대법원장·헌법재판소장·국무총리·감사원장 및 대법관과 국회에서 선출하는 헌법재판소 재판관 및 중앙선거관리위원회 위원 등 23명만을 대상으로 하기로 결정되었다. 그리고 2000년 6월에 이한동 국무총리 후보자가 첫 인사청문회 대상자가 되었다.

뒤 이어 2000년 7월에는 신임 대법관 6명에 관한 인사청문회가 개최되었다. 이들 청문회에서 국회의 동의를 얻는 데 실패한 후보자는 없었다. 우리 나라의 청문회제도는 아직도 정착단계에 있다고 볼 수 있다.

이러한 의정활동의 일환인 인사 청문회제도의 본래적 취지를 살리기 위해서는 입법청문회가 보다 활발하게 이루어져야 하며, 의원들의 질의수준을 높이기 위한 다양한 제도적 보완이 필요하기에 논란이 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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