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루나이 국왕 역사에 얽힌 28조 재산가진 특별함

[코리아데일리 유윤옥 기자]

브루나이 국왕의 행보가 11일 네티즌의 관심을 모으고 있다.

브루나이 국왕은 12명의 완자와 공주 등 대규모 수행단과 함께 부산 해운대 근처의 특급호텔을 숙소로 정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는 가운데 그이 전용 비행기 또한 관심을 끌고 있다.

브루나이 국왕
전체 객실의 절반에 가까운 119개의 객실을 브루나이 국왕이 예약했고 자신은 하루 숙박비가 1천만원에 달하는 198평 스위트룸에 머물 것으로 알려졌다.

한편 브루나이는 중국과 아랍의 고대문헌에 의하면 7~8세기경 브루나이 강 유역에 무역 왕국이 존재했으나 9세기경에 이르러 스리위자야왕국과 마자빠힛왕국에게 차례로 점령당하였다.

브루나이의 전성기는 15~17세기로 그 영역이 보르네오섬 전역과 북부 필리핀에 이르렀다. 이 시기의 대표적 군주는 마닐라를 일시 점령한 5대 술탄 볼키아(Bolkiah, 재위 1473~1521)와 오늘날과 같은 왕실체계를 성립시킨 9대 술탄 하싼(Hassan, 재위 1605~1619)이다.

하싼 국왕 이후 브루나이는 왕위 계승 다툼과 같은 왕실 내부문제와 함께 유럽인의 도전으로 쇠락의 길로 접어들었다. 1

839년 영국인 탐험가 제임스 브룩(James Brooke)이 당시 들끓고 있던 해적들을 소탕하면서 보르네오섬에 입성하고 그의 조카 찰스 부룩(Charles Brooke)과 함께 백인왕(White Raja)으로서 사라와크를 통치하기 시작했다. 비록 브루나이는 백인왕에 의해 통치 받지 않았지만 선조들이 정복한 영토의 대부분을 잃어야만 했다.

1888년 영국은 브루나이, 사바, 사라와크를 보호령으로 선언하고, 1906년에 공식적으로 영국총독부(British Resident)가 풍습과 종교를 제외한 모든 행정권을 장악하였다.

초호화 전용기
2차 대전 이후 주변국이 속속 독립을 쟁취하고, 브루나이인민당(Parti Rakyat Brunei)의 급진적 민족주의를 두려워 한 영국은 1959년 외무, 안보, 국방 분야를 제외하고 브루나이 국왕에게 모든 권한을 이양하고 가까운 장래에 총선을 치를 것을 약속했다.

1962년 제한된 의석수에 한해서 총선이 실시되었고 브루나이인민당이 승리하였으나, 브루나이를 말레이시아연방으로 합병하려는 국왕과 영국의 의도를 간파하고 브루나이인민당 소속 군인들이 12월 반란을 일으켰다. 국외적으로도 브루나이는 말레이시아에 편입된 사바와 사라와크로부터 압력을 받았다.

1965년 실시된 선거에서 과반수 이상을 차지한 정당이 출현하지 않은 상황에서 당시 국왕이었던 오마르 알리 싸이푸딘(Omar Ali Saifuddin)은 국무회의(Council of Ministers) 구성에 동의하지 않고, 1967년 왕위를 아들인 하싸날 볼키아(Hassanal Bolkiah)에게 이양하였다.

브루나이를 민주화 시키려는 영국의 전략에 따라 의회를 소집하는 행위는 군주제에 대한 심각한 위기였기 때문에 이를 최대한 지연시킴으로써 군주제를 굳건히 다지고, 오마르 알리 싸이푸틴은 막후에서 정치에 개입할 의향이었다. 퇴위 후 오마르 알리 싸이푸틴은 국방부 장관직을 수행하며 스리 베가완(Seri Begawan: 위대한 현자)이란 칭호를 받으며 1986년 사망할 때까지 국민적 추앙의 대상이었다. 1979년 1월 4일, 브루나이와 영국은 우호협력조약을 체결하였고, 1984년 1월 1일 영국으로부터 독립하였다.

한편 브루나이 왕 하사날 볼키야는 비행기와 자동차의 광으로 불리운다. 550대 벤츠 390대 페라리 190대 MBW 금도금으로된 1788개의 방 257개 초호화 욕실 등 총 재산이 28조인 세계 초고의 부자 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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