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봉조

[코리아데일리 박지수 기자]

21일 인터넷 실시간 1위에 오른 이봉조는 색소폰연주자·가요작곡가이다.

경상남도 남해출생인 그는 진주중학교 재학시절 가요작곡가 이재호(李在鎬)의 문하생이 되었다. 1952년 한양대학교 건축공학과에 입학하였으며 테너색소폰 연주자 엄토미(嚴吐美)의 문하생이 되어 본격적인 연주법을 사사받았다.

1958년 한양대학교 졸업후, 서울시청 토목과에 취직하였고, 이봉조악단을 조직하여 주한미8군 각부대 나이트클럽에서 연주활동을 하였으며, 특히 미국의 재즈음악에 열중하였다. '밤안개'라는 노래를 현미(玄美)에게 부르게 하여 가요작곡가로서 각광을 받기 시작하였다.

이런 가운데 1964년 MBC TV에서 주최한 전국경음악경연대회에서 이봉조악단이 대상을 받았고, 같은해 극영화 '맨발의 청춘'으로 청룡영화상에서 음악상을 받았다.

▲ 이봉조 선생과 현미(방송 캡쳐)
그해 말 동양TV방송국이 개국할 때 전속악단장이 되었다. 1970년 11월 일본 동경에서 개최하는 국제가요제에 참가하여 '안개'(정훈희 노래)로 입상하였고, 1971년 이 공로가 인정되어 대한민국문화예술상을 수상하였다.

그는 또 그리스가요제에 참가하여 1971년에 ‘너’(정훈희 노래), 1973년에 ‘나의 별’(현미 노래)로 입상하였다.

남미 칠레가요제에 참가하여 1974년 ‘좋아서 만났지요’(정훈희 노래), 1975년 ‘무인도’(김추자 노래), 1979년 ‘꽃밭에서’(정훈희 노래)로 수상하였다. 1980년 KBS 전속악단장, 1987년 서울올림픽 문화행사 공연분야 준비자문위원을 지냈으며, 레코드 10매(LP)와 300여곡의 가요곡을 남겼다.

이런 이봉조 선생이 주목을 받고 있는 것은 21일 오전 방송된 KBS2 `여유만만`에서는 `대한민국을 흔드는 바람의 정체`를 가수 현미, 정훈희, 간통전문 형사 구무모, 민성원 소장이 이야기를 나눈 것이 방송되면서부터.

▲ 방송캡쳐
이 방송에서 현미는 "글쎄 뭐, 이봉조는 바람하면 둘째 가라면 서러운 사람이었다. 웬만한 바람은 눈감아 줬다. 가정을 지켜야 하니까. 오늘이 중요하지 어제가 중요한 것은 아니다"고 당시를 회상했다.

이어 "그는 참 매력있다. 작곡하고 연주하고 잘생겼다. 그렇게 잘난 사람이었다. 또 여자가 좋다는데 안 넘어갈 남자가 어디 있겠냐. 지금까지도 방송국 다니면서 이봉조와 바람피운 여자들을 다 알고 있고 말해 네티즌들의 화제가 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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