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 공연장에서 팬과 함께한 정재만 교수

[코리아데일리 강태오 기자]

중요무형문화재 제27호 승무 예능보유자인 정재만 숙명여대 명예교수가 12일 오후 11시20분쯤 교통사고로 별세했다. 향년 66세.

1948년 경기 화성군에서 태어난 고인은 한영숙 선생의 수제자로 승무의 길에 들어섰다.

고인은 중요무형문화재 제27호 승무와 제40호 학무를 계승한 인간문화재 한영숙 선생의 뒤를 이어 2000년 중요무형문화재 제27호 승무 예능보유자로 지정돼 한 많은 승무의 애환을 예술로 승화시켜왔다.

세종대학을 거쳐서 1996년부터 숙명여대 무용학과 교수로 재직했고 지난해 8월 정년 퇴직한 뒤 명예교수로 일해왔다.

▲ 정재만 교수
2002년 한일 월드컵 전야제 안무 총괄, 부산아시안게임 무용총감독, 2003년 대구유니버시아드 대회 무용총감독 등을 역임했다.

대한민국무용제 안무상과 대상, 체육부장관표창, 대통령표창, 옥관문화훈장 등을 받았다.

한편 승무는 홀로 추는 춤이다. 정신의 깊이가 없으면 춤사위가 거칠고 산만해지기 십상이다. 어지간한 춤꾼조차 쉽게 엄두를 내지 못할 만큼 어렵다.

춤은 제사와 의식에서 비롯하고 발전한 것이다. 인간의 육신이 빚어내는 몸짓으로 하늘과 땅을 잇고 영혼의 자유로움을 그려낸다.

이런 춤을 그동안 전승보급에 앞장서온 정재만 교수의 특이한 이력은 춤이 가진 종교성과 통해 있다. 어린 시절 그는 신부가 되기 위해 신학교를 다녔다. 수원 재인청이 가까웠던 화성의 고향마을에는 매일 굿판이 그치지 않았다. 걸음마를 배울 적부터 오며 가며 춤을 보고 따라했다. 10대 후반이 되어서는 웬만한 춤은 몸에 배었다. 신학교보다는 마을 마당이 스승이자 학교가 된 셈이다.

더 이상 배울 춤이 없자 국립무용단의 송범 선생을 찾아갔다. 배우러 간 것이 아니라 모든 춤을 배워서 간 것이다. 스승은 그를 인간문화재인 한영숙 선생께 맡겨 이수자 교육을 받게 한다. 그리고 50년 가까이 삶이 춤이고 춤이 인생이 되었다.

특히 그가 밝힌 말대로 “아침에 일어나면 춤사위부터 시작합니다. 몸이 자연스럽게 풀리고 마음에 흥이 생기지요. 잘 때까지 춤추지 않는 순간이 없습니다. 너무나 재미있습니다. 10대부터 지금까지 춤 이외의 것은 아무것도 하지 않았고 모릅니다. 춤에는 어떤 감정도 다 담을 수 있으니 나이를 먹을수록 더 깊어지고 익어갑니다. 다른 목적 없이 오직 사랑하며 견딜 수 없을 만큼 춤을 추라고 가르치고 있습니다.”고 평소에 말한 내용이 영원히 국내 무용계에 울려 퍼질 것으로 보인다.

▲ 승무를 추는 정재민 교수
한편 승무는 공간의 구성미가 뛰어나 어떤 종류의 춤과도 구분된다. 긴 장삼자락이 그리는 선은 육신의 제약을 확장하여 하늘까지 닿는 염원을 시각적으로 그려내고 있다. 어떤 춤보다 몸짓이 크지만 절제가 담겨 있고 육체와 정신, 동작과 정지의 조화를 보여준다.

고인의 유족은 아내 박순자씨와 아들 용진씨, 딸 형진씨가 있다. 삼성서울병원 장례식장 20호실. 발인 15일 오전 9시. (02)3410-69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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