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리아데일리 강지현 기자]

수니파와 시아파에 대한 관심이 뜨겁다.

'시아파'가 탄생 된 배경에는 본래 칼리프는 공동체에서 선출했는데, 5대 칼리프인 무이위야가 자기의 아들을 후계자로 임명함에 따라 680년 무아위야의 아들이 6대 칼리프가 되면서 전통이 깨지며 발생한다.

이에 4대 칼리프였고 무아위야에  의해 살해된 알리의 차남 후세인이 결사반대, 추종자들이 있던 쿠파로 떠났다.

그러나 무아위야의 아들 야지드는 후세인을 카르발라(현 이라크 지역)에서 살해해버렸다. 이 카르빌라 참극으로 알리의 추종 세력이  뭉치게 되면서 '시아파'라는 별개의 체계를 형성했다.

따라서 시아파에게는 카르발라가 메카보다 더 중요한 성지가 되었고 후세인 순교일을 중요한날로 생각하게 되었다. 전 세계 약 13억 명에 달하는 이슬람교도 중 수니파가  85퍼센트이고, 시아파가 15퍼센트 정도된다.

이란 인구 7천만 명 중 90퍼센트(6천300만 명), 이라크인구(2천7백만명 중 60퍼센트 1천 600만명), 레바논 인구 400만 명 중 30 ~ 35퍼센트(140만명), 바리엔 인구 67만 명 중 70퍼센트(50만명)가 시아파이지만 이를 제외하고는 대부분 수니파다.

그중 이란이 시아파의 종주국이다. 한편 이라크에서는 시아파가 60퍼센트나 되는데, 수니파인 사담 후세인이 정권을 잡고 독재를 하자 시아파의 반발이 거세게 일어나기도 했다.

이에 오늘 날 이라크에서 수니파와 시아파의 불화가 지속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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