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0년 5월 18일 광주 전남대학교 정문을 막고 있던 군부대와 대학생들 사이에 충돌이 발생했다. 대학생들은 학교는 학생들의 것이니 돌려주라고 요구했으며 이 과정에서 투석 행위도 벌어졌다. 이에 전남대에 주둔 중이던 군인들이 학생들을 폭력적으로 진압하며 5.18 민주화운동이 시작됐다.

무참하게 훼손되었기에 오히려 지켜진 광주

다음날부터 공수부대가 총에 대검을 꽂아 버스 안, 길거리 상점 안까지 들어가 민간인을 살상하는 등 무자비한 행위가 이어졌다. 펑범한 시민이 시내에서 식사를 마치고 집에 가는 길에 계엄군에 붙들려 구타를 당하고 5살 아이가 친구들과 놀다 총소리가 나서 집으로 달려가던 중 신발 한 짝이 벗겨져 뒤를 돌아보다 계엄군의 총탄에 희생됐다. 마을에 총소리가 나서 주민들을 대피시키다 총에 맞아 희생당한 이장, 할머니와 살던 고3 남학생이 항쟁에 참여해 주검으로 발견되기도 했다.

한강의 소설 ‘소년이 온다’는 5.18을 주제로 하고 있다. 소설 속에는 반복되고 기계적인 노동에 시달리는 무지랭이 여공이 나온다. 척박한 보리밭 일궈 내 새끼 배만 부르면 세상 다른 욕심 없었던 촌노도 등장한다. 하지만 5.18은 이들에게 보이지 않는 곳을 보게 만드는 시야를 키웠고 칙칙한 공장보다 돌맹이 가득한 척박한 땅보다 더 어둡고 거친 곳이 있다는 것을 알게 했다.

내게도 지워지지 않는 선명한 실루엣이 있다. 고향 집 근처 이름 없는 암자에서 초점을 잃은 눈으로 허공을 바라보던 소녀와 그 소녀를 절반쯤 가리고 있던 샘가에 핀 하얀 수국, 그 후 그 소녀가 영화 '꽃잎'에서 이정현이 연기했던 ‘소녀’였다는 사실은 충격으로 자리해 지금까지도 찬란한 5월을 무참히 덮고 있다. 그리고 오가다 바라본 담양 국립5.18민주묘지에 즐비하게 늘어섰던 희생자들의 무덤.

5월 광주를 대변하는 단어는 ‘훼손’이다. 국가가 훼손되고 민족성이 훼손되고 민주주의가 훼손됐다. 지역과 지역의 연대감, 혈육과 혈육, 학생과 군인이라는 이름 앞에 청년의 동질감이 훼손됐다. 훼손이라는 단어 앞에서 복구와 회복이라는 단어가 무력하게 전의를 상실했다. 차마 다가서거나 손댈 수 없는 막막함이었다. 하지만 이제 와 생각해보면 광주는 그렇게 무참하게 훼손되었기에 오히려 지켜진 것이 아닌가 싶다. 푸른 5월 뒤에 선명한 빨간빛으로 똬리를 튼 광주 이야기 5ᆞ.18은 잊어버리려 할수록 더 또렷한 시간으로 자리한다.

늘 이쯤이면 다시 끄집어내서 서너 번 읽는 시가 있다.

‘나가 자전거 끌고잉 출근허고 있었시야. 근디 갑재기 어떤 놈이 떡 하니 뒤에 올라 타블더라고, 난 뉘요 혔더니, 고 어린놈이 같이 좀 갑시다 허잖어, 가잔께 갔재. 가다본께 누가 뒤에서 자꾸 부르는 거 같어. 그랴서 멈췄재. 근디 내 뒤에 고놈이 갑시다 갑시다 그라데. 아까부텅 머리에 피도 안 마른 놈이 어른한티 말을 놓는거이 우째 생겨먹은 놈인가 볼라고 뒤엘 봤시야. 근디 눈물 반 콧물 반 된 고놈 얼굴보당도 저짝에 총구녕이 먼저 뵈데. 총구녕이 점점 가까이 와. 아따 지금 생각혀도··· 그 땐 정말 오줌 지릴 뻔 했시야.

그때 나가 떤건지 나 옷자락 붙든 고놈이 떤건지 암튼 겁나 떨려블데. 고놈이 목이 다 쇠갔고 갑시다 갑시다 그라는데잉 발이 안떨어져브냐. 총구녕이 날 쿡 찔러. 무슨관계요? 하는디 말이 안나와. 근디 내 뒤에 고놈이 얼굴이 허어얘 갔고서는 우리 사촌 형님이요 허드랑께. 아깐 떨어지도 않던 나 입에서 아니오 요 말이 떡 나오데. 고놈은 총구녕이 델꼬가고, 난 뒤도 안돌아보고 허벌나게 달렸제. 심장이 쿵쾅쿵쾅 허더라고. 저 짝 언덕까정 달려 가 그쟈서 뒤를 본께 아까 고놈이 교복을 입고있데, 어린놈이··· 그라고 보내놓고 나가 테레비도 안보고야, 라디오도 안틀었시야. 근디 맨날 매칠이 지나도 누가 자꼬 뒤에서 갑시다 갑시다 해브냐. 아직꺼정 고놈 뒷모습이 그라고 아른거린다잉··· [정민경의 시 ’그날‘] 전문

인간의 잔인함은 뜨거운 사랑도 다정한 언어도 무참하게 가려버리는 위력을 발휘한다. 5월의 광주가 그랬다. 4월은 잔인하다고 말했던 시인은 오히려 행복할 지 모르겠다. 1980년 5월, 광주가 지닌 상처와 아픔에 비하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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