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스크로 인해 마음이 가려지지는 않았는지, 다정한 말을 잃어버리지는 않았는지 되돌아볼 시간

익숙한 것에서 벗어나기란 쉽지 않다. 그것이 좋은 것이든 나쁜 것이든. 3년여 가까이 지속된 코로나19 팬데믹을 가장 절실하게 실감한 것은 마스크 착용이었다. 처음엔 짧게는 한 사나흘, 길게는 한 두어 달 착용하다가 벗을 것이라고 믿었던 마스크는 생각과는 다르게 오랜 시간 우리 몸의 일부가 됐다. 본래 인간이란 길들여지기 마련이어선지 처음의 답답함과는 달리 이제는 벗는 것이 어색할 만큼 우리 몸에 밀착된 물건이 됐다.

처음 마스크를 구입하기 위해 길게 줄을 섰던 기억도 어느 땐 아련한 추억으로 자리할지도 모르겠다. 마스크는 그 와중에 칼러풀하고 다양한 디자인으로 색다른 패션의 용도로 사용되기도 했고 여성들은 간단한 미용 시술을 하는 기회로 삼기도 했다. 집 앞에 우유만 사러 나가도 화장을 하던 사람들은 세수도 안 하고 마트에 가니 오히려 편하다고도 했다.

그런 마스크를 566일 만에 공식적으로 벗을 수 있게 됐다. 물론 야외라는 조건이 붙어 있지만 그나마 일상 회복의 전초전인 것 같아 반갑기 그지없다. 코로나19부터 몇 개의 변이 바이러스 를 겪으면서 사망자가 많았고 요양원 등에서는 부모 자식 간 생이별을 겪기도 했다. 역병으로 인해 하루아침에 부모 곁을 떠난 자식들 사연은 국민 모두의 가슴을 아프게도 했다.

‘모든 것은 끝이 있고 지나간다’는 말은 어느 때 어느 상황에도 진리로 작용한다. 그저 무조건 참고 견디라는 말보다 훨씬 더 부드럽고 서정적인 말 임이 분명하다. 정부에서는 5월 2일 자로 야외에서 마스크 착용 의무를 해제한다고 공식 발표했다.

하지만 아직은 길거리에 벗은 사람보다는 착용한 사람이 더 많다. 익숙함에서 벗어나지 못한 것도 있지만 아직은 시기상조라는 심리적 불안이 더 크게 작용한 탓이리라. 아직 연일 3만 명 가까운 확진자가 발표되면서 긴장감을 주는 상황이지만 분명 심리적 유연성이 생긴 건 사실이다. 왠지 종식된 기분이라고 말하는 사람도 있다.

생각해보면 마스크는 단순히 역병을 차단하는 용도로만 사용되지 않았다. 마주 보고 앉아 차 한잔 마시기에도 눈치가 보였고 맘껏 웃기도 쉽지 않았다. 얼굴을 반이나 가린 마스크에 공감이나 소통도 반만 되는 듯한 느낌이 있었다. 온전히 소통하기 위해서는 표정이 중요하다. 계산하지 않는 진솔하고 풍성한 표정은 공감의 일등공신이다.

봄볕 완연한 5월, 가장 푸른 시절이다. 싱그런 바람이 불고 화사한 꽃이 가득한 들판을 맨얼굴로 걸을 수 있는 것만으로도 저절로 에너지가 생기고 신바람이 난다. 이제는 그동안 마스크로 인해 마음이 가려지지는 않았는지, 정작 해야 할 다정한 말을 잃어버리지는 않았는지 되돌아볼 시간이다. 다만 마스크 안에서 줄어든 말 대신 내면의 나와 더 많은 소통을 했다면 그 또한 알찬 시간이었으리라 위로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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