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우고 덜어냄으로써 더 없는 충만함을 갖게 되는 것이 진정한 미니멀의 가치

[코리아데일리 이주옥기자] 단순하기, 덜어내기, 들어내기. 잊힌 듯하면서도 조용하게 꾸준히 이어지고 있는 미니멀 라이프의 가장 쉽고도 명쾌한 설명이다. 불필요한 물건을 줄이고 최소한의 것으로 살아가는 생활방식. 우선은 생활 속 물건을 덜어내는 것으로 실천을 시작하지만, 이는 적게 가짐으로써 삶의 중요한 부분에 집중한다는 것으로 확장된다는 점에 주목할 만하다. 물건에 치대지 않고 버리고 비움으로써 더 중요한 인생의 시간과 공간을 만드는 것이 미니멀 라이프의 참다운 정의다.

치열하게 일하고 많은 물질을 소유하고 거미줄처럼 얽힌 관계의 홍수 속에 사는 것이 이 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의 텍스처다. 하루 24시간이 부족하게 살아가는 것을 오히려 열정과 능력이라는 이름으로 포장하며 육체와 정신을 혹사시키는 것이 사실이다. 그러면서 소진된 에너지를 보상받는 방법으로 기왕이면 더 큰 집, 더 큰 차, 집안 가득 빼곡한 물건들로 채운다.

핸드폰에 입력된 전화번호 개수로 인맥 부자를 자랑하며 관계가 짓누르는 무게를 견딘다. 강박증처럼 오래된 가구나 TV를 빼내면 오히려 더 큰 것으로 채워 넣었다. 그러다 보니 마치 사람이 사는 집이 아니라 가구가 사는 집에 사람이 얹혀사는 꼴이 됐다. 하지만 넘치는 돈과 넘치는 물건이 사람보다 더 중요한 가치가 되고 사람의 정신을 무참히 덮친다는 것을 느끼며 수시로 참담해진다. 점점 알 수 없는 허기와 갈증이 생기면서 무엇이 진정 삶에 중요한 것인지 심각하게 고민해보게 된다.

미니멀 라이프는 지난 2010년 영미권에서부터 바람이 불기 시작했으니 이제는 역사라는 범위 안에 넣을 만도 하다. 사람들은 먼저 집 안에 가득 차 있는 물건부터 빼내기 시작하며 미니멀 라이프에 동참했다. 집 안을 호화롭게 장식하고 몸에 갖은 치장을 함으로써 부와 지위를 뽐내고자 했던 사람들이 점점 단순하고 단조로운 생활패턴을 추구하고 모던한 차림새를 지향했다.

커다란 소파가 빠져나간 자리는 처음엔 다소 휑해 보이지만 이내 알 수 없는 후련함과 개운함이 있었다. 한두 번 입다가 걸어둔 장롱 안 옷가지들도 모두 정리했더니 오히려 숨통이 트이는 기분이었다. 먼지 뒤집어쓰고 책꽂이에 두서없이 꽂혀있던 묵은 책들도 골라냈더니 오히려 책을 뽑아 드는 일이 잦아졌다. 눈과 귀는 스마트 폰에 있으면서도 습관처럼 켜 놓던 TV를 없앴지만 내 일상에 별다른 영향은 없었다. 거실에 두툼하게 걸린 커튼, 주방을 가리는 가리개, 집안이 온통 무엇인가 드리우고 걸친 것 투성이었지만 걷어내고 치웠더니 햇살도 더 많이 들어오고 바람도 더 많이 드나들었다. 공간의 환기는 물론 마음의 환기도 되는 듯했다. 늘 답답하던 가슴이 뻥 뚫리는 것 같았다.

비우고 덜어낸 결과는 의외로 충만하고 긍정적인 결과로 남았다. 생활을 단순하게 만드니 불필요한 에너지를 사용하는 일도 줄었다. 일상을 털고 훌쩍 여행을 떠나기도 쉬워졌다. 미니멀 라이프는 무조건 적게 가지는 것이 아니라, 단순한 삶을 통해 더 큰 만족과 공간을 만드는 것임에 틀림 없다. 

다양한 세상은 우리에게 더 복잡하고 많은 관계의 로드맵을 만들었다. 특히 사람과의 얽히고설킨 관계의 홍수 속에서 비틀거릴 때가 많다. 비워 내거나 버릴 틈 없이 모든 소리와 모습을 거르지 않고 켜켜이 담아두고 살다 보니 오히려 감정은 돌처럼 굳어갔다. 마음 곳곳에 멍이 들고 생채기가 생겼다. 때로는 눈물을 흘리고 때로는 소리도 질러 보지만 앙금과 찌꺼기는 쉬이 빠지지 않고 피폐함만 남았다. 정작 물건보다는 사람과의 관계에 더 필요한 것이 미니멀이 아닐까 싶다.

인간관계도 수시로 조율과 정리정돈이 필요하다. 상처받으면서도 붙들고 있었던 인연들도 정리하면 오히려 명쾌해지고 더 깊은 내면의 만남으로 재탄생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 사이에 사람을 너무 뜨겁게 만날 일도 아니고 너무 차갑게 멀어질 일도 아니라는 진리도 터득했다. 

사람이 머물다 지나간 자리에 꼭 사람으로 채우지 않아도 그리 아쉽지 않다. 서로 동의 없이 무심히 인연을 다한다 해도 아프지 않고 상처가 되지 않기 위해서는 마음속에 유연하고 담백한 공간이 필요하다. 사람이건 사물이건 버리지 않고 무조건 남기고 붙드는 것이 의리이고 사랑은 아닐 것이다. 별 의미 없이 쟁여놓거나 붙들어 놓지 않고 말끔히 비우고 덜어냄으로써 더 없는 충만함을 갖게 되는 것이 진정한 미니멀의 가치 아니겠는가. 어쩌면 불충분한 관계가 빠져나간 자리에는 허무함과 상실감이 아닌, 충만한 평화가 남을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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