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전 때 미군 사격으로 민간인 4백여명 희생
2001년 클린턴 대통령 ‘유감’ 표명…유족 반발

충북 영동군 황간면에 위치한 노근리평화공원에 피해자 상징 조각상이 눈길을 끌고 있다.
충북 영동군 황간면에 위치한 노근리평화공원에 피해자 상징 조각상이 눈길을 끌고 있다.

 

노근리 사건’. 한국과 미국이 공유하고 있는 현대사의 불편한 진실이다.

6·25 한국전쟁 때 대한민국을 지키다 많은 미국 젊은이들이 희생했다. 고마운 일이다. 그러나 그 과정에 무고한 민간인들이 미군에 의해 죽임을 당했다. 노근리 비극이 대표적이다. ‘노근리 사건은 한국전쟁 발발 한 달 후인 19507월 말, 미군이 ‘No-Gun-Ri’라고 부른 충북 영동군 황간면 노근리 일대에서 미군의 공중 폭격과 사격에 의해 45일 간 민간인 400여명의 희생자가 발생한 사건이다. 참극이다. 공식적으로 확인된 희생자만 사망 150, 행방불명 13, 후유장애 63명 등 모두 226명이다. 유족은 2240명에 달한다.

노근리 사건이 안고 있는 진실의 속살을 들여다보자. 노근리 사건은 6·25 발발 한달 만인 1950725일부터 29일에 걸쳐 일어났다. 북한군의 남진을 막기 위해 미군 제1기병사단은 당시 충북 영동과 황간 지역에 방어선을 쳤다. 방어선 인근에 있던 영동읍 주곡리 마을에 723일 미군 1명과 한국 경찰 1명이 찾아가 이곳이 전쟁터가 될 가능성이 있으니 오늘 중으로 마을을 비우라고 명령했다. 이에 대부분의 주민들은 약 2km 떨어진 산속 마을인 임계리로 피난을 갔다. 25일 늦은 오후에는 미군들이 다시 임계리를 찾아 다른 곳으로 피난갈 수 있게 해주겠다면서 주민들을 황간 쪽으로 출발시켰다. 미군은 두 마을 주민 500~600명을 하가리 근처의 하천변에서 밤을 보내게 하면서 대열을 조금이라도 이탈하는 사람에 대해서는 총을 쏘았다. 이날 저녁 1~4명의 희생자가 나왔다.

이튿날인 26일 아침에는 미군들이 사라졌고, 대부분의 피난민들은 가던 방향인 황간 쪽으로 걷고 있었다. 서송원리 쯤에 이르자, 미군들이 다시 나타나 이들을 도로 옆의 경부선 철도 위로 올라가게 했다. 당시 미군은 원활한 병력 수송을 위해 자주 피난민의 도로 통행을 금했다. 철로 위에서 피난민들이 미군한테 짐 검사를 받고 났을 때 남쪽에서 날아온 미군 전투기가 이들에게 무차별로 총을 쐈다. 많은 사람들이 죽고 다쳤다.

민간인들이 주로 희생된 노근리 쌍굴다리가 어제의 상흔을 안은 채 말없이 증언하고 있다.
민간인들이 주로 희생된 노근리 쌍굴다리가 어제의 상흔을 안은 채 말없이 증언하고 있다.

 

 

살아남은 사람들은 철로 아래 수로 등에 몸을 숨겼다가 근처의 노근리 쌍굴로 피신했다. 이때부터 29일까지 미군은 쌍굴 바깥 양쪽의 진지에서 다리 아래에 있던 피난민들에게 총격을 가했다. 야간에 젊은 사람 일부는 쌍굴을 탈출했지만, 노약자들은 미군이 철수할 때까지 그들의 총격 대상이 됐다. 나중에 발굴된 미군의 문서에 따르면, 당시 그들은 방어선을 아무도 넘어가지 못하게 하라는 명령을 받고 있었다. 이 사건으로 사망자와 행방불명, 부상을 입어 장애인이 됐다.

 

추모비·장학금 명목 400만달러 미 국고로 회수

유족 대표·법률전문가 미국정부 상대 소송 준비

국제사법재판소와 유엔인권위에 제소도 추진중

국회, 희생자·유족 보상 근거 조항 법안 마련을

 

노근리 사건이 세상에 처음으로 알려진 것은 1994년 정은용이 실명소설인 <그대, 우리의 아픔을 아는가>를 출간하면서부터였다. 소설 형식을 취했지만, 실제로는 직접 보고 들은 사실을 기록한 역사책이다. 이에 국내 미군 관련 학살 중 한·미 양국이 함께 진상을 조사했다. 2001112일 퇴임을 앞둔 빌 클린턴 당시 미국 대통령이 유감을 표명했다. 미국 정부는 노근리 사건 조사 결과를 발표하면서 미군의 한국 민간인 살해를 '인정은 하되 사과는 하지 않는다' 는 선을 굵게 그었다. 클린턴 성명은 사과(apologize)라는 표현 대신 '깊은 유감(deeply regret)' 이라고 명시했다. 게다가 성명은 노근리에서 한국 민간인이 사망했다는 것만을 인정했을 뿐 살해의 주체가 미군이라는 사실은 슬쩍 넘어갔다.

클린턴 대통령은 "개인적으로 (유감과 사과라는)두 단어에 차이가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고 말하고 "두 단어 모두 우리가 (노근리에서) 일어난 잘못된 일에 대해 매우 유감스럽게 생각하고 있음을 의미하는 것" 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성명서에서 희생자들을 위한 추모비(memorial)와 그 자녀들을 위한 장학금(commemorative scholarship fund)을 제의했다. 미국 정부는 추모비 건립비용 119만달러와 장학기금 280만달러 등 모두 400만달러(현 시세로 약 44억원)의 예산을 책정했다. 하지만 이 돈은 사용되지 못하고 2006년 미국 국고로 회수됐다.

미국 대통령이 내놓겠다고 공개적으로 약속했는데 왜 사용하지 않은 이유는 미국의 성의 있는 사과가 없었기 때문이다. 노근리 사건 피해가족들이 받아들일 수 없었던 것이다. 물론, 미국 대통령의 유감 성명은 그동안 미국이 세계 각국에서 자국 군대가 저지른 숱한 범죄행위에 대해 한 번도 사과나 유감을 표명한 적이 없다는 점에서 나름대로 의미가 있다.

하지만, 공식 사과가 아닌 유감이다 보니까 배상이나 보상금이 아니었다. 미국으로서는 배상이 무척 부담스러웠을 것이다. 노근리가 선례가 될 경우 베트남과 이라크, 아프가니스탄 등 전세계에서 쏟아져 나올 배상 요구를 감당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우리나라만 해도 미군에 의한 피해가 120건이나 신고돼 있다. 이 때문에 배상 아닌 위로금 성격의 장학금을 내놓겠다고 한 것이다. 미미한 금액이지만, 피해자들은 노근리 사건에 대한 진정한 사죄의 뜻이라면 수용하려고 했다.

그런데 미국은 그게 아니었다. 추모비나 장학금 대상을 노근리 피해자에 한정하지 않고 한국전쟁 동안 고통을 당하고 사망한 모든 민간인’(all Korean civilians who suffered and died during the Korean War)으로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아직 조사도 안 이뤄진 다른 피해자들을 노근리에 끼워 넣어서 넘어갈 수는 없었던 것이다.

피해 가족들은 노근리 보상을 외면하는 우리 정부에 대해서도 몹시 서운하다. 노근리 사건의 직접적인 가해자는 미국이지만, 한국 정부의 책임도 배제할 수 없다. 1950726일 미8군이 내린 피란민 소개 및 이동통제에 관한 지침에는 '언제 어떠한 피란민도 방어선을 넘어오게 해서는 안 된다'는 내용이 담겨있다.

그런데 한국 정부는 미국 대통령이 유일하게 유감을 표한 노근리 사건을 외면해 왔다. 200712월 제정된 '노근리 사건 희생자 심사 및 명예회복에 관한 특별법에 따라 희생자 심사 결정과 희생자를 기리는 추모사업을 지원하는 근거가 마련됐지만, 희생자와 유족들에 대한 보상 근거 조항은 없어 실효성 있는 피해 회복은 이뤄지지 않고 있다.

정부 진실화해위원회의 종합보고서에 의하면 국가 공권력이 사실상 학살을 묵인하고 방조한 셈이다. 이러니 "노근리 사건은 한미 양국 고위층이 피란민에 대한 사격명령이나 다름없는 피란민통제정책을 결정해 발생한 불상사"라고 하는 것이다.

201110월 말 노근리 쌍굴다리 등 사건 현장 일대 4만여평에 미군 총격에 희생된 피란민을 추모하고 유족의 명예회복을 위한 노근리평화공원이 세워졌다. 35개국 평화박물관장, 인권학자 등 200명이 참가한 국제평화박물관네트워크(INMP) 콘퍼런스 및 총회가 개최될 만큼 현재의 노근리는 인권과 평화의 상징으로 발돋움했지만, 여기까지 오는 데 피해자들은 숱한 '눈물의 강'을 건너야 했다.

이장섭 국회의원(더불어민주당·청주 서원)은 노근리 사건 희생자와 유족들의 피해에 대한 국가의 보상금 지급 의무를 명시하고 노근리 트라우마치유센터를 설치·운영하는 내용을 담은 '노근리사건 희생자 심사 및 명예회복에 관한 특별법 전부개정법률안'을 대표 발의한 상태다.

이 의원은 "희생자와 유족에 대한 보상조치가 조속히 시행될 필요성이 있으나 법적 근거가 없는 실정"이라며 "70년 가까이 고통 받고 있는 이들의 명예회복을 위해서라도 개정안이 반드시 국회를 통과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202012월 발의된 이 특별법은 지금도 국회에 계류 중이다.

유사 과거사 사건인 제주 4·3은 올해 초 진상규명 및 희생자 명예회복에 관한 특별법 전부 개정안이 국회 본회의를 통과, 명예회복과 배·보상의 길이 열렸다. 이처럼 노근리 사건 희생자와 가족들의 한()을 풀어주는 미국의 성의 있는 사과와 피해 보상, 한국 정부의 역사적 교훈을 되새기는 조치 등이 요청된다.

노근리 평화공원 내 두 개의 탑 모양 기둥은 희생된 이들을 위로하고 평화를 기원하고 있어 숙연한 마음 금할 수 없다.
노근리 평화공원 내 두 개의 탑 모양 기둥은 희생된 이들을 위로하고 평화를 기원하고 있어 숙연한 마음 금할 수 없다.

 

한편 피해자·유족 대표들과 뜻 있는 법률전문가 등은 미국정부를 상대로 민사소송을 준비하고 있다. 이들은 이와 별도로 국제사법재판소와 유엔인권위원회에 제소하는 방안도 추진 중이다. 미국 참전군인, 피해자 가족, 법률전문가 등이 참여한 가운데 `모의재판'을 열고 이어 미국 내 시민단체들과 연대해 여론을 조성한다는 방침이다.

노근리 양민 학살 사건 피해자들을 대리해 미국에서 소송을 준비하고 있는 마이클 최(한국명 최영) 변호사는 일부 미국 언론에서 미군 병사들이 상부 명령에 따라 노근리 양민을 학살했다는 언론 보도를 정면 부인한 것과 관련, “최후의 한 명까지 죽이려 해놓고 무슨 소리냐고 반문하고 당시 제7연대 2대대장의 보직 해임은 잘못된 명령의 집행을 의미하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최 변호사는 “‘유에스 뉴스 앤드 월드 리포트취재진이 노근리에 갔을 때 엉뚱한 시각으로 몰고 가려고 해서 협조하지 말라고 피해자들에게 얘기했다고 말하고, “미국 국방부는 노근리 사건을 60여 유사 사건의 전례로 만들지 않으려고 역정보를 슬슬 흘리며 여론의 눈치를 보고 있다고 주장했다.

6·25 전쟁의 아픔을 고스란히 안고 있는 노근리. 71년여 세월이 흘렀건만 이곳 주민들에겐 씻을 수 없는 전쟁의 상처가 여전히 새겨져 있다. 피해자가 한 명이라도 더 살아있을 때 노근리 피해자 배·보상 문제가 해결돼야 함을 말해주고 있다.

피해자들이 배·보상 문제를 거론한다고 해서 사회 일각의 부정적인 시선처럼 돈 문제로만 보는 것은 합당치 않다. 우리가 나라다운 나라에 살며 법적으로 찾아야 할 권리를 찾아 인권의 존귀함을 지키려하는 노력으로 봐야 한다.

충북 영동군 황간면 노근리 경부선 기찻길 아래에 놓여 있는 쌍굴 안팎엔 당시 미군이 쏜 총탄 자국이 곳곳에 표시돼 있다. 전쟁 참상의 상흔이자 무고한 민간인 희생자들의 절규가 새겨진 눈물자국 같다. 이를 아는 듯 열차의 기적은 늘 목이 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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