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편 공공기관(공기업)의 갑질 횡포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 조합원들이 대통령직 인수위원회 앞에서 새정부 민주노총 요구안 발표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 조합원들이 대통령직 인수위원회 앞에서 새정부 민주노총 요구안 발표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코리아데일리 이주옥기자] 대한민국 내로라하는 공기업은 신의 직장이라고 불릴 정도로 모두가 선망하는 곳이다. 이들 공기업은 방대한 조직에 세부적인 업무 분담이 필요하다 보니 크고 작은 자회사가 있다. 

또한 비정규직의 정규직화를 위한 방편이라는 것도 큰 이유다. 하지만 속전속결로 정규직화를 밀어붙인 탓에 법적 근거조차 없는 자회사가 수두룩하다. 자회사 10곳 중 세 곳이 법령이나 모회사의 정관에 근거가 없이 그저 정부의 정규직 전환 가이드 라인에 따라 설립됐다. 

심지어 법령에 따라 설립된 자회사도 모회사의 관련법이 아닌 상법 같은 엉뚱한 법에 근거하고 있다. 이에 설립 근거가 없는 회사는 정부 정책이 바뀌기라도 하면 유령회사로 전락할 위험을 안을 수밖에 없다. 고용 안정은커녕 대량 실직 사태에까지 이를 수 있다. 

이런 상황이다 보니 이들 자회사들은 독립 법인으로 대접을 받는 곳은 드물고 대부분 모 회사에 딸린 또 다른 부서 정도로 취급받는다. 

그런 와중에 이들 공기업이나 기관들은 자회사 및 협력사에 소위 갑질 행태를 공공연하게 자행한다. 이런 사실은 한국노동연구원이 조사한 ‘공공부문 정규직 전환 자회사 운영 실태’ 보고서에서 드러났다. 

조사는 고용노동부 의뢰로 49개의 공기업과 공공기관인 모회사에 딸린 57개의 자회사를 대상으로 조사한 것이다. 자회사의 운영실태가 낱낱이 공개돼 우리가 알고 있는 사실보다 더 심각한 현실을 드러냈다. 

자회사의 평균 직원 수는 654명이고 100명 미만의 소규모 자회사가 17.5%로 평균 10개를 차지하고 있다. 자회사 대표이사 10명 중 6명은 모회사인 공기업이나 기관 임직원 출신이다. 때로는 퇴직한 고위직 공무원들이 낙하산 형식으로 자리를 차지한다. 

거기에다 많은 자회사는 모회사 대표이사와 겸직 체제라고 하니 이들의 갑질 행태는 고질적이면서 자연스러운 것인지도 모른다. 

자회사가 하나의 독립된 회사이기보다 모회사의 별도 부서 취급을 받다 보니 자회사 직원들은 피동적인 입장일 수밖에 없다. 또한 이들이 모회사의 갑질을 견딜 수밖에 없는 이유다. 모회사가 자회사를 향한 상식 밖의 모욕적인 언행은 한 인격을 말살하는 것이나 다름없기에 더욱 공분을 사고 있다.  

최근에도 한국수력원자력(주)일부 직원들이 변압기 제조사로부터 1억 원이 넘는 뇌물을 받고 불량 납품을 받은 일이 일어났고 한국마사회는 여직원들에게 상습적인 성희롱과 부적절한 언행 등을 일삼아 사회적 이슈가 되기도 했다.

자회사와 협력사, 공공연한 갑질 행태 만연

49개 공기업이 57개 자회사에 우월적 지위 

지방정부 공기업, 갑질은 눈뜨고 못 볼 가관

좋은 세상은 모든 게 제자리서 평등함 유지

거기에 해당 간부는 자신의 과실을 인정하지 않고 오히려 성추행한 사실을 부인해 논란을 더 키웠다. 한국가스안전공사 박기동 전 사장은 공개채용 과정에서 여성 후보의 면접 점수를 조작해 여성을 고의로 배제한 혐의를 받아 고용평등과 일·가정 양립 지원 등에 관한 법률 위반 혐의로 징역 1년을 선고받기도 했다. 드러난 것이 이 정도이면 숨겨져 있는 자잘한 일들은 얼마나 많을지 능히 짐작이 되고도 남는다. 

최근 인천에 있는 공기업에서도 환경 미화 직원들에게 본부장 사택 청소를 시켜 물의를 일으켰다. 더구나 공기업 직원이 코로나에 감염돼서 코로나19 감염 예방이 필요했고 이에 미화원들은 대기 지시가 내려진 상태였다. 그럼에도 본부장 이사에 따른 사택 청소를 지시해서 더욱 지탄의 대상이 됐다. 미화 직원들은 이 같은 지시에 반발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고 결국 세 명이 반나절이나 사택 청소에 동원됐다고 한다. 

이 순간 자회사 미화원들은 육체적 고통도 물론이지만 정신적으로 심한 모멸감을 느꼈을 것이다. 거기다 이곳은 지난해 8월 자회사 직원이 모멸적 업무 지시에 항의해 옥상에서 뛰어내리는 사건도 있었다. 그랬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이어지고 있는 갑질 횡포. 그들은 도덕성이나 윤리적 불감증에 젖어 미화원들을 한낱 지시받는 하급 노동자로 취급을 했을 뿐인가. 

한편 공기업은 시장형과 준시장형으로 나뉜다. 한전을 비롯한 에너지 분야의 공기업은 대부분 시장형이고 조폐공사, 도로공사 등은 준시장형 공기업이다. 성격상 전자는 시장에 미치는 영향이 크고 후자는 시장에 미치는 영향이 적다. 

시장에 미치는 영향이 크다는 것은 민간 기업이나 일반 국민의 경제 활동에 미치는 영향력이 강하다는 뜻이다. 물론 준시장형 공기업의 영향력은 절대적일 수 있지만 국가 경제를 뒷받침하거나 특수한 목적을 위해 설립되는 경우에는 시장에 미치는 영향력이 매우 제한적이다. 

민간 분야에서 대기업의 갑질이 시장에서 경제적으로 우월한 위치를 이용하는 것이라면 경제적·법적 우위를 모두 가진 공기업은 대기업 뺨치는 갑질을 한다. 에너지 분야에서는 석유산업을 제외한 모든 산업을 공기업이 지배하고 있다. 

공기업 분류를 보면 한전·가스·지역난방을 비롯한 발전 자회사 등 몇 개 안 되는 것처럼 보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내부적으로 들어가 연결재무제표를 하는 기업의 수를 전부 포함하면 수백 개의 공기업이 존재한다. 따라서 우리나라에서 공기업을 외면하고 할 수 있는 에너지 사업은 없다고 보아도 무방하다. 

요즈음 재생에너지 분야 공기업의 갑질 행태를 보자. 재생에너지 설비를 설치하고 계통 연결을 해야 하는데 의도적으로 연결해주지 않는 사례가 가장 많다. 

어느 공기업은 민간 기업이 허가를 받아 놓은 사업의 지분을 50%나 가로채기도 했다. 한발 더 나아가 우월적 지위를 확보하기 위해 민간 기업의 지분을 2~3개로 쪼개도록 했다. 전자는 공기업이 전력 계통을 독점하는 법적 지위를 이용했고 후자는 민간이 하기 어려운 인허가에 유리한 점을 내세웠다.

여기에는 정부의 인허가 기관도 가세했다. 보편적으로 민간에서는 정부의 인허가 기관 인사들과 접촉이 쉽지 않지만 공기업은 정부 기관과 다름없기 때문이다.

공기업의 설립은 법적으로 제한하고 있지만 최근 들어 지방 정부의 공기업 설립이 늘어나는 추세다. 지방 정부의 공기업 갑질은 실로 눈 뜨고 못 볼 가관이다. 공기업의 갑질로 인한 피해 사례는 수없이 많지만 정작 잘 드러나지 않는 이유는 한 번 찍히면 영영 그 사업을 할 수 없기 때문이다. 

선진국들이 공기업을 줄여나가는 것은 대세다. 그러나 유독 우리 정치권은 공기업을 민영화하는 일에 인색하다. 세계 조류를 읽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공기업을 민영화하면 우리 사회의 갑질을 크게 줄일 수 있을 것이다. 그렇게 하지 못한다면 공기업 갑질의 실태를 파악하고 방지책을 마련해야 한다. 

이련 현실에서 민주노동조합총연맹은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에게 우선 노동권 보장과 비정규직 문제를 우선 협의하자고 제안하면서 한국사회의 극단적 불평등 해소에 협조해달라고 했다. 

이어 3개 핵심 노동 과제와 13개의 정책요구안 발표와 함께 잇따른 규제 완화와 대기업 이윤 보장에만 관심을 두지 말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핵심 노동 과제는 5인 미만 사업장 노동자 등 노동권 사각지대 해결 및 산업 전환에 따른 고용 감소 문제, 비정규직 남용과 차별 문제다.

이어 5인 미만 사업장 노동자와 특수고용직 등에 노동법을 확대 적용하고 산업 전환 관련 논의에 노동자 참여를 보장하며 비정규직 사용을 억제하는 정책을 펴 달라고 요구했다. 

양경수 민주노총 위원장은 “기후위기로 일자리가 감소하는 부분은 정부가 주도해 교사, 의료, 돌봄과 같은 공공부문 양질의 일자리를 만들어내고 상시·지속 업무는 원칙적으로 비정규직 사용을 제한해 정부가 모범 사용자로서 역할을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또 초기업 교섭 제도화와 비노조 조합원에 대한 단체협약 효력 확장, 중대재해처벌법 50인 미만 사업장 적용 유예 폐지와 교원·공무원의 노조 활동 권리 보장 등 13개의 노동 현안 정책요구안도 제시했다. 

끝으로 “2000만 노동자의 목소리를 담은 민주노총을 비롯한 산별연맹들의 주요 요구에 대해 새 정부와의 정례적인 대화 틀이 마련되기를 기대한다”고 밝혔다.

직업에 귀천이 없다는 말은 너무나 식상한 사회적 관계의 관용구다. 갑과 을이라는 수직적인 관계가 아닌, 수평적인 관계만이 더욱 효율적인 노사의 상생이 이뤄진다. 좋은 세상은 모든 것들이 제 자리에서 원칙을 지키며 평등함 속에서 이루어진다는 것을 잊어서는 안 될 것이다.

공기업의 갑질은 적폐 중의 적폐다. 공기업이 국가 권력이기 때문이다. 이를 대개혁해야 한다. 그것이 우리 사회를 좀 더 건전하게 만드는 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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