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란 봄'은 먼 길 돌아 끝내 우리에게 돌아오리라.

이주옥 기자
이주옥 기자

봄이 제법 빠른 걸음으로 오는 것 같더니 엊그제 느닷없이 강원도 대관령 일대는 폭설이 내렸다. 움트던 새순은 아이쿠나 하며 줄행랑이고 사람 발자국 한 개 없이 흰 눈에 덮인 널따란 마당은 다시 크리스마스를 꿈꾸기에도 애매하고 그렇다고 샤갈의 눈 내리는 마을을 떠올리며 낭만에 젖을 수도 없었다. 때 되면 바뀌고 변화하며 그에 순응하는 것이 우리네 인생 순리 아니던가.

역행하는 계절은 오히려 꿈을 뺏고 희망을 저버리게 만든다. 본격적으로 땅을 뒤집고 씨를 뿌려야 할 춘분을 이틀 앞둔 선물 치고는 괴이하면서 심술궂었다. 무엇하나 정상적으로 돌아가지 않는 세상사에 계절까지 덩달아 합세 하나 싶어 화가 났다. 도시 곳곳에서도 하루 다르게 나무에 물이 오르는 것이 보이지만 하루아침에 뚝 떨어진 기온에 다시 몸을 숨겨 옹그린 몸과 마음이 펴질 기미가 안 보인다.  그 와중에 남쪽에서는 노란 산수유와 하얀 목련이 자태를 뽐내며 만화방창을 알린다. 아무리 순서나 질서가 없어진 뒤죽박죽 세상이라지만 그래도 적당히 균형을 맞춰 ‘가는 봄 오는 봄’ 할 수 있으면 얼마나 좋으랴.

반면 서울을 비롯한 수도권 일대는 눈이 아닌, 비가 내렸다. 오랜 날 비 소식이 없어 봄 가뭄에 애가 탄 상황에 촉촉하게 내린 봄비는 약비였다. 지난 3월 4일 발생한 울진 삼척 영월의 산불, 한 사람의 분노로 인해 발현된 방화였다. 이 불은 서울 여의도 면적의 절반, 축구장 3만개 규모의 피해를 주고 2000시간이 넘는 시간을 끌다가 가까스로 진화됐다. 방화는 한 사람 분노의 발현치고는 치명적이었고 애먼 심술의 대상이었다. 오랜 가뭄으로 물기를 잃고 바싹 마른 나무는 한 치의 망설임 없이 불길을 끌어안았고 몇 십 년 키운 나무를 허무하게 태웠다. 벌건 불길은 온 국민의 분노를 무시하고 연일 같은 강도로 치솟았다. 소실시킨 산불 피해액이 무려 1500억 원에 가깝단다. 역대 급이다.

거기다 오랜 가뭄이었으니 피해는 더 컸다. 인공적인 장비나 인공적인 급수로는 감당할 수 없었던 산불은 속수무책 속에서 울창한 산을 잿더미 수북한 민둥산으로 만들었다. 그나마 어느 하루에 내려준 봄비에 주 불이 잡힌 은공을 베풀었으니 온 몸으로 끌어 모아 춤을 춰도 모자랄 판국이었다. 때맞춰 비 내리고 바람 불고 눈 내려주는 것도 자연의 보시일 터, 간혹 필요할 때에 모른 척 시침 떼는 통에 우리는 언제나 발을 동동거린다.

강원도에 낙향한 지인은 앞마당에 수북이 쌓인 눈을 전송하며 푸른 것들의 소생이 하 세월이라고 한숨이다. 하긴 땅 1000여 평을 진즉에 다져놓고 호미랑 쇠스랑 상표도 떼지 않은 초보 농부에게 눈이 쌓이고 얼어버린 땅은 지루하고 안타깝기만 하리라. 그는 땅이 부드러워지면 파헤쳐 사과나무를 심고 매실나무를 심을 꿈에 부풀어 있다. 하지만 하얀 눈 아래서 꽁꽁 얼어버린 땅은 언제 몸을 풀어 뿌리를 품어줄지 아득하기만 하다. 그래도 '너란 봄'은 이 모든 것을 이기고 먼 길 돌아 끝내 우리에게 돌아오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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