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은 곧 ‘사는 방식’이며 숨쉬기다. “내 작품의 궁극은 인간을 위로하는 것”

작품 '무제' (사진=갤러리 현대)
작품 '무제' (사진=갤러리 현대)

[코리아데일리 이주옥기자] 서양화가 도윤희는 전시회 ‘베를린’이 지난 1월 14일부터 삼청동 겔러리 현대에서 개최되고 있다. 이제 이틀 후면 전시회는 마무리 된다. ‘베를린’ 뭔가 이국적이면서도 몽환적인 이미지가 떠오르는 이름이다. 보랏빛과 분홍빛 파스탤 톤의 꽃구름이 가득한 갤러리에는 이미 찬란한 봄이었다. ‘이제 정말 봄이구나’ 하는 안도와 푸근함이 밀려왔다. 조금씩 다른 그림에 붙은 제목들은 모두 ‘무제’다. 그래서 더 많은 의미가 함축되고 그녀의 자유로운 영혼이 보였다.

전시회 제목 ‘베를린’, 그녀의 마음과 감성에 머무는 진한 이름인 모양이다.

베를린은 분명 먼저 장소성을 의미한다. 베를린에서 작업한 지 10년, 그 시간을 건너오면서 분명 있었을 작품의 변화가 우선 그 의미 앞에서 명분을 세운다. 작품은 작가의 내면을 반영하는 것이 분명한 만큼, 내 생각과 철학의 변화 과정이 복합적으로 포함된다. 분명 명사화 된 지명이지만 ‘베를린’은 내게 기호적인 의미가 더 크다.

분홍빛의 파스텔 색감이 따스하다. 화가에게 색이란.

좋아하는 색이 따로 있는 것이 아니다. 하지만 분명 감정이나 행위를 촉발시키는 요인이다. 첫 번 째 선택하는 색, 그리고 순간적으로 보게 되는 색에서 하나의 이미지가 떠올라 캔버스에 옮기기에 이른다. 빨강 , 파랑, 노랑 등 색 마다 고유의 표현력은 다르게 파생되고 이에 자기의 표현 의지에 따라 천차만별의 색으로 변하지 않는가. 마치 음악에서 음표와 음표 사이에서 소리가 나오는 것처럼 색과 색이 섞이면서 감정이 나오고 그래서 색은 명명된 명사가 아니고 감정이라고 생각한다.

◆작품들 대부분 제목이 ‘무제’다. 포괄적이지만 그 안에 함축된 의미도 남다를 것 같다.

‘무제’도 결국 제목이다. 특별한 의미부여보다는 ‘제목을 붙여야 하니’ 라고 대답하면 무책임할까요?(웃음) 예술 뿐 아니라 대부분이 삶이 특별한 테마가 있는 것은 아니다. 몸이 허용하고 삶에 대한 관점을 물질화 시킨다고나 할까. 곧 모든 표현은 곧 ‘나’의 원인이며 작품의 원인이더라. 총체적인 것을 한 단어로 결집해 놓으면 어느 하나의 프레임에 갇히게 되는 것 같다. 삶의 경험이 건드려져서 관객으로 하여금 자기감정을 그 안에서 느끼고 그림 안으로 들어가서 정신적인 확장을 하는 것이 좋은 그림이며 예술이다. 그것이 결국은 소통이다. 그래서 딱히 규정을 짓지 않고 ‘무제’라고 이름 붙였다.

◆“나의 작업은 현상의 배후에 숨겨져 있는 아름다움을 찾아내는 일이다”라고 했다. 거시적이면서 예술의 궁극이 아닌가 싶다.

우리가 사물이나 경치, 정물, 사건 모든 것을 생각해보면 숨겨져 있는 시적인 부분들이 있다. 그 시를 끄집어 내 실제적으로 표현해 내는 것이 예술이다. 시와 현실 사이에 끼워진 것을 찾아내고 표현하는 것이 그림이다. 언어도 하나의 기호이며 소통의 중요성으로 작용한다. 문학적인 부분과 팩토리얼 부분이 쉼 없이 다툰다. 단어를 버리고 팩토리얼 랭귀지로 풀었다. 나는 단어대신 물감을 사용하는 것뿐이다. 그림을 통해 작가의 생각을 읽으며 정신적인 소통을 하기 때문에 어느 특정의 제목으로 규정할 수는 없다.

◆“회화의 특정 방법론에 고착되길 거부하고 새로움을 갈구하며 찾겠다”고 선언도 멋지다. 이번 전시회의 만족도는.

이번 작업의 만족감은 필요충분이다. 그동안은 항상 연필로 작업했다. 작업할 때는 “이상한데” 더 가야 하는데?“라는 의문과 아쉬움에 자주 봉착한다. 하지만 이번에는 ”그래, 이렇게 가면 돼!“라는 느낌이 들었다. 그렇다면 만족도는 높다고 볼 수 있다. 어떻게 예술에 끝이 있고 마무리가 있겠는가.

◆도상봉 화백을 떼 놓고 화가 도윤희를 얘기할 수는 없다.

할아버지는 고1때 돌아가셨다. 손녀로서 편애를 받았다. 저명한 화가들이 “할아버지가 너를 무릎위에서 내려놓지 않았다“고 회고했다. 할아버지께 달리 그림을 지도받은 적은 없고 그림은 생활 안에 있었고 자연스런 삶이었다. 할아버지 작업 모습이나 일상생활을 봐 왔기 때문에 배운 게 아니라 체득이다. 이것은 굉장한 유산이다. 재능적인 유전자라기보다는 정서적인 영향이 컸다. 작가의 삶, 생각 등등 그냥 인간의 한 種이었다. 딸이 아니고 손녀였기 때문에 정신적인 억압은 없었지만 부담감은 있었다. 하지만 작가로서의 자세, 성격이나 생활방식은 알게 모르게 나를 지배했다. 물론 시대적 요인도 있었지만 깊이와 품격에 넌지시 영향을 받았을 것이다. 또한 시대성은 노력 없이도 이루어지지만 전통적인 회화방식 등은 무의식적인 습득이 있었다.

◆3M이상의 대형작품이 눈에 띤다. 보통 완성하기까지 기간은.

작업마다 다르지만 2년에서 5년 정도의 기간이 소요된다. 간혹 너무 맘에 들 때 ‘아, 저걸 내가 해내다니’ 하는 뿌듯함이 오지만 자주 있는 일이 아니다. 언제나 미흡함에 자괴감이 든다. 그것이 예술가들이 기꺼이 껴안고 사는 천형이며 숙명 아닐까.

◆가장 기억에 남는 전시회가 있다면.

지난 2007년 출품한 바이엘러 겔러리 전시회가 아직도 생생하다. 미스터 바이엘러와 함께 하면서 많은 것을 느끼고 보고 배웠다. 그의 태도, 눈빛, 간략하고 정확한 말(언어)까지도. 소통의 도구는 단어였지만 영적인 교류와 에너지를 받았다. 이번 ‘베를린’ 전시회 또한 몸으로 다가섰고 펜데믹이라는 상황에 어느 때보다 봄이 그리웠다. 그래서 일부러 전시기간을 겨울에 정했다. 그림을 통해 잠시라도 바깥세상의 광풍은 잊을 수 있기를 바라는 마음이었다.

도윤희 작가 (사진=갤러리 현대)
도윤희 작가 (사진=갤러리 현대)

◆화가 도윤희에게 그림은 무엇일까. 그리고 앞으로의 계획은.

그림은 곧 ‘사는 방식’이며 숨쉬기다. 어차피 사는 것은 苦 아니던가. 즉 작품이라는 것의 궁극의 ‘인간을 위로하는 것’이다. 표면적으로 아름다운 것들도 자꾸 들여다보면 뭔가 심오한 것이 더 나오지 않던가. 예를 들어 이상한 나라의 엘리스가 남녀노소 불문하고 재밌는 책이지만 나이에 따라 상황에 따라 느낌은 다르다. 모차르트 음악 또한 들을수록 처절하고 슬프고 그 안에서 파생되는 소소한 느낌은 매번 다른 것처럼 예술이라는 것은 늘 새롭고 신비롭다. 언제나 계획을 갖고 살지는 않는다. 성격도 계획적으로 사는 편이 아니고 내 안에 있는 어떤 궁극적인 욕망을 실현하는 게 재밌다보니 그게 사회생활과 연결이 됐다. 그저 살다보니 이렇게 됐고 지금에 이르렀다. 간혹 후배들로부터 전시 관련 조언을 구할 때도 매뉴얼이 없다. 루틴은 있지만 플랜은 없다고 할까. 오늘은 어제 못한 일을 하고 내일은 또 오늘 하던 작업을 하듯 나의 계획은 늘 그렇게 무계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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