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제대교 건설로 정취 잃은 수북정, 낙화암에서 자온대 오가는 유람선 만이 옛 영화와 추억 싣고 있어

▲ 수북정 정경 (사진=정호성 기자)

[코리아데일리 이주옥기자] 백제대교는 충청남도 부여군 부여읍 동남리와 규암면 규암리를 연결하는 백마강의 다리로 2차선 차도와 인도가 설치되어 있다. 길이 812.72m, 너비 12.50m로 1965년 4월에 착공하여 1968년 10월에 완공했다. 다리의 건설로 금강을 건너는 시간상의 단축 및 사람과 물자의 대량수송으로 이 일대의 괄목할만 한 발전을 가져왔다.

백제 대교가 건설되기 이전에는 규암나루의 배다리가 유일한 통행로였다. 두 사람이 겨우 통행할 수 있는 좁은 다리였지만 인정이 있고 인심이 오가는 곳이었다. 장마철에 백마강이 범람하면 사람들의 통행이 불가능하여 교통상의 불편은 따랐지만 이런 불편쯤은 능히 감수할 만큼 규암나루는 정스러우면서도 따사로운 마음의 고향 같은 곳이기도 하다. 그곳을 통해 금강을 건너 부여로 들어가는 중요한 교통로로 장을 드나들며 서민들의 의식주가 거래되고 소통구 역할도 했다. 충청도의 중심지였던 공주목에 이르는 금강수로의 중요한 지점으로서 한때는 군산과 강경을 잇는 정기여객선이 다닐 만큼 성황을 이루었던 나루터였다.

1968년 백제대교 건설을 위해 자온대는 큰 시련을 겪었다. 자온대를 아우르고 있던 수북정의 바위를 폭파하여 그곳에 다리 기둥이 세워졌고 육중한 그 기둥은 자온대의 멋스러운 정취를 앗아가 버린 것은 물론 자온대의 품이었다고 할 수 있는 부산 또한 허리가 잘리고 말았다.

사실 부여는 백제 유적의 산실이며 대한민국 존립의 근간이었던 곳이라고 할 수 있다. 또한 교교히 흐르는 백마강을 바라보노라면 ‘백마강 달밤에 물새가 울어 ~~’라는 가요가 절로 흥얼거려지는 애수와 낭만이 깃든 곳이다. 특히 낙화암 3천 궁녀 이야기는 역사를 넘어 신화로까지 인식되지 않는가. 그만큼 부여는 우리에게 역사적 의미 이상의 정서적 감흥이 머무는 곳이다. 특히 한 나라의 구국의 선봉에 선 백제 여인들의 한이 서려 아직도 그들의 슬픈 넋이 흐르고 있는 것 같아 누구든 한번 쯤 찾고 싶은 곳이었다. 그런 곳에 다리 건설은 너무나 짧은 소견이었고 단말마적인 구상이었음을 부인할 수 없다.

▲ 바위를 뚫어 기둥을 세운 백제대교로 인해 망가진 자운대의 풍광 (사진=이은나 기자)

현대인들에게 문명의 존재는 물리적인 밥 이상의 필요성이고 포만감을 안겨주는 것이 사실이다. 우리는 분명 문명을 쫓아 정신없이 치달렸으며 실보다는 득이 많은 것을 부인하기는 어렵다. 하지만 한 나라의 역사를 무참히 거스르는 문명은 존재가치를 논할 수 없을 것이다. 백제 대교 건설을 두고 설계자나 시행처가 한번 만 더 심사숙고했다면 자온대를 관통하며 우리의 역사와 정서를 자를 수는 없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물론 지방자치를 이끄는 관계자들의 입장에서는 변해가는 세상에 맞춰가는 시류도 중요했을 것이다. 하지만 그것을 지키고 보존하는 방안은 생각해봐야 했을 터, 최소한 다리의 방향이나 구도만 조금 달리했어도 지금의 상황과는 다른 모습이지 않았을까. 역사는 근간이 보존될 때 그 유산의 의미와 가치가 더 확실하게 정립 되기 때문이다.

부여군에서는 지난 1993년 백제문화단지 조성에 돌입하여 7년간의 공사 끝에 지난 2010년 완공했다. 정부가 지정한 백제 문화권이 대통령령에 의해 국책사업으로 추진되어 이루어낸 결과다. 백제의 옛 수도 지역이었던 충청남도 부여군 규암면 합정리 일대에 조성된 백제 관련 테마파크. 롯데그룹의 민자 투자를 받아 롯데부여리조트, 롯데아울렛이 안에 위치해 있으며 한국전통문화대학교도 있다.

백제문화단지는 총 100여만 평 규모로 1994년부터 충청남도와 문화관광부가 부소산과 낙화암 맞은편 백마강변에 백제의 역사와 문화를 재현하기 위해 조성했다. 1993년 첫 삽을 떴을 때는 국무총리까지 다녀갔을 정도로 관심을 받았다. 당시 국무총리가 김종필 씨였고, 이 사업 자체가 김종필 씨의 주도로 충청권의 민심을 사기 위해 이뤄진 거라는 말이 나돌기도 했다.

이에 지난 2010년 ‘세계대백제전’ 개막에 맞춰서 9월 17일에 공개됐다. 특히 백제문화단지는 무려 8천억 원이나 투입된 사업이었기 때문에 단순히 '역사 재현'을 목표로 삼을 수는 없었을 것이라 짐작된다, 하여 '테마파크'형식으로 개장되어 가족단위 관광지로 부상되었다. 하지만 말끔하지만 인위적인 세트장처럼 조성된 테마파크가 아닌, 백마강의 정취와 함께 수북정과 자온대를 그대로 살려 조화를 이뤘으면 더 완벽한 부여의 상징이 되었을 것이라는 아쉬움이 크다.

▲ 자온대 바위를 폭파하여 기둥을 세운 구 백제대교 (사진=정호성 기자)

자온대는 옛 규암나루터로 지금의 백제대교의 남쪽에 이르는 강변에는 높이 20여 미터의 바위가 솟아 있고 그 위쪽에는 수북정(水北亭)이 있다. 강 쪽에 돌출한 암벽에 우암(尤庵) 송시열(宋時烈, 1607-1689년)의 필적으로 알려진 ’자온대‘라는 글자가 새겨져 있어 이곳을 『삼국유사』의 돌석으로 볼 만큼 역사적 가치가 있는 곳이다. 하지만 백제대교 건설로 규암나루는 이제 폐허가 됐다. 사람의 발길이 끊어진 곳에 오일장도 쇠퇴하고 황량함만 남았다. 간신히 낙화암에서 자온대를 오가는 유람선만이 옛 영화와 추억을 싣고 있는 것 같아 쓸쓸하다.

지금도 백마강과 그 주변의 수려한 경관을 바라보노라면 누구나 마음이 편안해지고 힐링이 된다고 말한다. 운동하기도 좋고 산책로로도 그만이다. 이제라도 무용지물 같은 구 백제대교를 개선한다면 한 눈에 들어오는 자온대를 볼 수 있고 수북정의 정취도 찾을 수 있을 것이다. 수많은 역사적 사연과 정취를 지닌 오래된 것들을 끌어내고 드러내어 부여의 따뜻하고 온유한 이미지를 되살리면 문화재 의식 고취는 물론 유서 깊은 명품 관광지로 거듭날 것이다.

어느 작가는 ‘기록이 햇빛에 바래면 역사가 되고 달빛에 물들면 신화가 된다’고 했다. 백마강 달빛을 머금은 수북정과 자온대의 정취가 진정 백제의 신화가 되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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