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 10km의 녹산로의 유채꽃 길은 제주의 햇살과 바람이 만들어 낸 가장 청량하고 명랑한 봄 풍경

▲ 사진=이주옥 기자

제주는 사계절 내내 꽃으로 장식되는 섬이다. 봄소식이 오기 시작하면서 피는 벚꽃은 3월이면 일찍이 피기 시작한다. 어차피 자연이 하는 일이니 인간이 왈가왈부할 수는 없지만 부르지 않아도 봄이 스스로 두 팔 걷고 온다는 것은 분명 행복한 일이다. 하긴 사계절 내내 꽃을 피워내야 하는 제주로서는 햇볕 한줄기에도 꽃을 피우는 마법을 부릴 수밖에 없으리라. 이에 제주는 일찌감치 벚꽃으로 봄의 신호탄을 쏘면 이어 유채꽃이 피고 여름의 뜨거운 태양 아래 색색의 수국이 아름다운 바다 빛깔 블루와 어우러져 환상적인 풍경을 만든다. 가을의 코스모스와 핑크 뮬리, 그리고 겨울의 눈꽃까지. 꽃이 없는 제주는 바다를 뺀 제주를 상상할 수 없는 것처럼 상징적인 존재로 자리하고 있다.

제주의 봄은 초록과 노랑 그리고 무채색 바람으로 그리는 수채화다. 어디나 유채꽃이 만발한다. 꽃말은 ‘쾌활’함이다. 여리고 조붓한 모양의 작은 꽃잎과는 어울리지 않는 것 같지만 온통 노란빛으로 출렁이고 있을 때는 영락없이 명랑하게 재잘거리는 유치원생 아이 같다. 뻥 뚫린 도롯가 옆으로, 고사리가 수북한 여느 작은 공터에도, 좁은 골목 돌담 사이사이 어디서나 올망졸망한 유채꽃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하지만 노란 물결의 향연을 제대로 담고 싶다면 유채꽃 명소로 가보자. 특히 제주시 조천읍 교래리 서진 승마장에서 정석 항공관을 지나 서귀포시 표선면 가시리까지 이어진 약 10km의 녹산로는 이제 막 피기 시작한 유채꽃으로 초록과 노랑의 향연을 이루고 있었다. 초록만큼 사람의 눈과 마음을 정화시키는 것이 또 있을까. 또한 그 초록을 거뜬히 이기며 제 색을 발하고 명랑함을 주는 것이 노랑보다 더한 것이 있을까. 막 피어나기 시작한 녹산로의 유채꽃 길은 자연이 만들어 낸 가장 명랑하면서도 청량한 봄 풍경이었다. 부신 햇살에 풍력기가 돌고 사람들은 그 안에서 가슴을 활짝 열고 맘껏 웃으면 되는 것이었다.

푸르디푸른 성읍 녹차 밭은 다소 덜렁거리며 들썩이는 봄을 지그시 누르듯 고요함을 품고 있었다. 녹차 밭을 한 바퀴 돌고 들른 녹차 밭 동굴은 사람의 발길이 적어서 더 만족스러웠다. 성산읍 광치기 해변 일대, 애월읍 한담 해안산책로, 조천읍 함덕 서우봉 일대도 푸른 바다와 눈이 시릴 만큼 샛노란 유채꽃이 선명한 대비를 이룬다. 또, 늠름한 산방산 아래 안덕 일대, 중문 엉덩물 계곡에도 유채꽃의 물결은 찰랑인다. 유채꽃이 절정에 이르는 3월 말에서 4월 초 사이, 서귀포 유채꽃 국제 걷기대회, 제주 유채꽃 축제를 펼치며 만개한 유채꽃의 향연을 원 없이 만끽할 수 있다.

제주의 마법 같은 힘을 믿고 향한 제주여행. 제주의 봄에 온전히 나를 담근 지가 언제였던가. 언제 건 늘 가고 싶은 곳이 남겨져 있다는 것은 제주에도 나에게도 축복 같은 일, 공항에 내리자 야자수부터 시작해 이국적인 불빛이 아른거리는 제주의 공항은 이번이 처음이 아닌데도 역시 탄성부터 흘러나왔다. 벚꽃은 대부분 빛이 바래고 유채꽃이 한창이었다. 아침저녁 조금씩 방향이 다른 햇볕만으로도 꽃은 예민하게 반응하며 색을 달리하는 마법을 부린다. 코로나로 인해 지친 심신을 안고도 눈치만 보던 여행객들은 저마다의 방식과 저마다의 가슴으로 제주 구석구석에 숨은 햇살과 바람과 꽃을 만끽하고 있었다.

제주만의 특별한 바다 색깔도 여전했다. 월정리 바다에 부는 봄바람은 연인의 품을 믿은 여인의 얇은 원피스 자락만큼이나 향기롭고 고왔다. 바람이 미는 속도만큼 밀려왔다 밀려가는 파도 또한 세상사와는 상관없다는 듯 느릿느릿 봄을 만끽하고 있었다.

어디나 그 마을 사람만이 아는 작은 골목은 더 정겹다. 낮은 돌담으로 쌓인 제주의 집들은 하나의 그림처럼 고요히 제주를 지키고 있었다. 급하게 뛰거나 서둘러서는 안 될 것 같은 제주만의 속도는 심신이 지친 외지의 사람들을 푸근하게 감싼다. 이제 파릇파릇하게 봄을 일으키는 청보리, 해사한 메밀꽃이 제주를 뒤덮을 준비를 하고 있다. 아쉬울 틈 없이 봄을 피워내는 제주의 생명들. 이들이 내뿜는 그윽한 향기는 세상사 시름 따위는 잊으라고 말하고 있었다. 제주는 이제 유채꽃이 지고 수국이 절정이다. 파스텔톤의 수많은 수국이, 조금씩 짙어져 가는 바다 빛과 어우러져 또 다른 천국이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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