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단히 자신을 가꾸고 뚜렷한 소신으로 노래하는 그녀
“생이 끝날 때까지 가수이고 싶다”는 바람으로 꾸준히 무대에 서

 

[코리아데일리(KD) 이주옥 기자] 첫 만남에서 들은 ‘안녕하세요’라는 한마디는 너무나 친숙했다. 노래 한 곡을 이미 들은 듯 반가웠다. 노래 부를 때와 말하는 목소리가 닮았다는 얘기를 이미 들었던 터라고 했다. 가수 최유나. 1990년대를 풍미했던 존재감 가득한 가수다.

1984년 KBS ‘신인 탄생’이라는 프로그램을 통해 데뷔했으니 어언 30년을 훌쩍 넘은 중견이다. 이후 서울 국제가요제를 통해 확실한 실력을 인정받았다. 그만의 독특한 음색은 가히 독보적이다. 저음에서는 허스키한 소리가 나오고 고음에서는 비성이 섞여 무슨 노래든 더 애상적으로 들린다. 자신만의 차별화된 목소리는 가수에게는 보물 같은 달란트다. 하지만 그는 이 독특한 목소리가 좋기도 하고 아쉽기도 하다고 말한다. 독특한 목소리는 개성이 돼 나만의 고유 영역이 되지만 모창이 어려워 다른 사람들을 통해 쉽게 불리지 않은 점은 조금 아쉽다고 말한다. 때론 내 노래가 다른 가수의 입을 통해 역주행을 일으키는 사례가 많은 것을 보면 수긍이 가는 부분이다.

그는 다분히 이지적이고 도시적인 외모다. 어쩌면 트로트보다는 다른 장르가 더 어울릴 듯도 싶다. 처음엔 발라드가 가미된 세미 트로트를 불렀다고 한다. 이후 조금씩 멜로디에 트로트 가락이 섞이면서 트로트 가수로 분리됐단다.

최유나에게 ‘흔적’은 자신의 최고 히트곡이자 가수 인생 여정을 상징하는 것일까. 자신의 존재감을 확실히 해 준 곡이기도 하지만 또한 지금 그가 파주 헤이리에서 운영하는 랍스터 레스토랑 이름도 ‘흔적’이니 분명 최유나의 대명사다. ‘흔적’ 외 ‘애정의 조건’도 그에 못지않은 대표곡이다. 주인공인 황신혜의 화려한 등장에 시청자들의 관심을 받았으나 아쉽게도 조기에 종영되는 바람에 주제곡이었던 ‘애정의 조건’은 빛을 발하지 못하고 말았다. 하지만 ‘애정의 조건’이 가요계 스타로 가는 여정에 든든한 징검다리가 된 것을 부인할 수는 없다고 한다.

화면이나 스크린을 통해 어필되는 연예인들에게 외모나 스타일은 중요하다. 최유나는 짧은 숏컷 머리가 트레이드마크처럼 각인됐고 조금은 이지적인 외모와 잘 어울리는 모습이었다. 당시 홍콩 여가수의 짧은 머리가 마음에 들어 본인이 선택했다니 자신의 모습을 자신이 만드는 재능도 있었던 모양이다. 부르는 노래가 대부분 정적이어서 주로 드레스를 입었지만 때론 팔뚝을 덮는 긴 장갑, 중절모를 쓴 보이시한 모습으로 그만의 스타일을 만들었다고 한다. 1992년 흔적을 시작으로 1993년도부터 본격적인 전성기를 누렸다. 곡목만 들어도 ‘아! 그 노래!!’ 할 만큼 히트한 노래도 15곡이 넘으니 여한 없는 가수 인생이다.

요즘 대거 양산되는 젊은 후배들에 대한 나름의 소신을 폈다. 화려한 퍼포먼스와 다양한 볼거리를 제공하는 것을 보면 대견하기도 하고 부러운 부분이기도 하지만 그들이 각자 자신만의 히트곡이 아닌, 선배들의 노래를 부르는 데 그치는 것은 몹시 애석하다고 한다. 가수라면 뭐니 뭐니 해도 확실한 노래 실력으로 자신의 노래를 불러야 한다는 소신. 요즘 젊은 트로트 가수들에게 하는 현실적이고 뼈아픈 충언이다.

그의 데뷔 시기를 생각하면 얼추 계산이 나오는 나이다. 하지만 세월은 그를 비껴갔을까? 숏컷에서 단발머리 스타일로 변한 것 빼고는 거의 달라지지 않은 모습이었다. 외모 관리에 대한 질문에 다른 어떤 것보다 허릿살에 신경을 쓴다는 의외의 답을 들을 수 있었다. 23인치를 넘기지 말아야 한다는 일념에 게으름을 피울 수는 없었다고. 이는 자기 관리가 필요한 현대인들에게 롤모델을 제시한다.

코로나 19로 인해 모든 것들이 경직되고 있는 시기에 자칫 풀어지기 좋은 조건이지만 언제나 자신을 놓지 않고 아침형 인간으로 거듭나고 있다고 한다. 무대에서 자주 볼 수 없는 것 같지만 꾸준히 활동했다. 가요 무대를 비롯해 2년마다 꾸준히 음반도 발표했다고. 그 참에 신곡 ‘옛날 사람’을 소개한다. 신상호 작사, 김순곤 작곡이다. 특히 김순곤 작곡가가 자신의 곡을 가장 맛깔나게 잘 표현하는 가수라고 했던 만큼 최유나에게 찰떡같은 노래다. 지금까지와는 달리 탱고 리듬이니 또 다른 최유나를 느낄 수 있을 것 같다.

최유나에게 가수는 천직이다. 인터뷰 내내 죽을 때까지 노래를 부르고 노래를 사랑하는 사람으로 살겠다는 말을 수차례 반복했다. 그의 고향은 목포다. 목포는 예향답게 걸출한 가수가 많이 배출된 곳이다. 특히 대한민국 불후의 명곡, ‘목포의 눈물’을 부른 이난영과 트로트의 상징적 존재 남진은 목포 출신 선배다. 이에 그는 서럽고 애수에 젖은 가사와 멜로디의 ‘목포의 눈물’과는 다른 희망적이고 밝은 ‘목포의 사랑’이란 노래로 또 다른 목포 사랑을 말하며 선배 가수들의 계보를 이었다.

별달리 굴곡 없는 삶이었다. 하지만 그는 추억이 없고 사연이 없는 것은 가수로서 감정 표현하기에는 바람직하지 않다고 말한다. 이만 봐도 그가 얼마나 노래를 사랑하고 노래하는 가수인지 알 수 있다. 이제 그도 ‘가요무대’에 서는 연륜이다. 세상과 인생을 헤아리는 나이다. 그런 그에게 바람이 있다면 어르신들이 참여하고 즐거움을 느끼는 가요 프로그램이 많이 생기는 것이다. 이는 동시대에 활동했던 가수들이 설 무대가 많아지기를 바라는 소망이기도 하다. 생활 속에서 부단히 자신을 가꾸고 뚜렷한 소신으로 노래하는 그이기에 앞으로 ‘생이 끝날 때까지 가수이고 싶다’는 바람은 충분히 가능하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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