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진=신안군청

“살아 꽃이었던 그 어떤 당신들이 해마다 내 가슴에서 참말로 징한 꽃으로 피어 왜 그리 시뻘건지, 속살 벌어진 상처 모냥 이리 아픈 게 동백 맞는지, 꽃 맞는지” (한춘화/동백)

 

겨울이란 계절엔 언제나 꽃보다는 찬바람과 하얀 눈이 먼저 떠오른다. 하지만 선홍빛 화사함으로 동토의 삭막함을 덮어버리는 곳이 있다. 전남 신안, 그곳엔 동백이 지천이었다. 꽃이 피지 않는 겨울에 피어나 겨울을 온통 아우르는 동백은 ‘겨울 동(冬)’에 ‘나무 이름 백(柏)’을 사용한다. 이름 그대로 ‘겨울꽃’이다. 차디찬 겨울에 꽃망울을 터뜨려 사람들의 추운 마음을 녹이는 동백의 이미지는 ‘꼿꼿함’이다.

시인 한춘화는 동백을 “살아 꽃이었던 그 어떤 당신들이 해마다 내 가슴에서 참말로 징한 꽃으로 피어 왜 그리 시뻘건지, 속살 벌어진 상처 모냥 이리 아픈 게 동백 맞는지, 꽃 맞는지”라고 노래했다. 이렇듯 동백은 뭇사람들의 심장을 저미고 징하게 슬픈 선홍빛으로 각인된다. 추위와 차가움을 견디게 하고 홀로 청청한 이미지로 다가든다.

동백들이 붉은 꽃송이를 피웠을 때도 아름답지만 꽃송이가 바닥에 떨어져 융단처럼 깔릴 때도 그 아름다움은 극치를 이룬다. 거기에 하얀 눈이라도 소담하게 덮어쓰고 있으면 그야말로 천상의 풍경이 따로 없다. 송이송이 쌓인 흰 눈 사이로 내민 빨간 꽃잎이 고혹적이다.

동백은 12월부터 이른 봄까지 쉼 없이 피고 지고를 반복한다. 이 동안 동백 군락을 이룬 신안은 마치 붉은색 융단이 깔리고 붉은색 커튼이 드리워져 있는 신비한 왕국이 된다. 코로나19로 어느 때보다 힘들었던 작년 한 해였건만 동백은 돌아가는 세상 시절과는 아무런 상관없는 듯 변함없이 고고한 자태로 피어나 잔뜩 움츠러들었던 사람들의 마음에 미소와 온기를 깃들이고 있었다.

▲ 사진=신안군청

신안의 ‘천사섬 분재공원’은 1996년 산불로 폐허가 됐던 송공산(해발 230m) 자락에 조성한 수목원이다. 동백 길은 약 2km 길이로 산 중턱까지 올라갔다가 내려오는 코스다. 신안군이 10여 년 전부터 꾸준히 동백을 심어 현재 12만m² 규모에 애기동백 1만 7000여 그루가 자라고 있다. 공원에 심어진 동백들은 나이가 제각각이다. 10년 넘게 공원을 지키고 있는 동백이 있는가 하면 올해 겨울에 심어진 초보 동백도 있다. 걷다 보면 키가 크고 풍성하게 꽃망울을 피운 동백도 보이고, 초등학생 키 높이로 수줍게 작은 꽃송이를 들이미는 동백꽃은 제각각의 모양으로 사람들의 마음에 종처럼 매달린다.

공원 입구부터 지그재그로 펼쳐진 산책길엔 빨간색 꽃송이를 머금은 동백이 마치 수백 개의 작은 종처럼 매달려있다. 동백 길을 따라 천천히 걸으면서 길 양쪽으로 활짝 핀 동백꽃을 실컷 볼 수 있다. 신안 앞바다에서 불어오는 차가운 바닷바람에 옷깃을 여미다가도 동백꽃을 보면 어느새 마음이 따뜻해지면서 훈기가 돈다.

조금 걷다 보면 빨간색 페인트를 칠한 전망대는 빨간색 동백꽃과 깔맞춤 하고 완벽한 조화를 이루고 있다. 그곳에 올라서면 신안 바다가 한눈에 담긴다. 넓은 바다에 펼쳐진 김 양식장과 오가는 배들이 평화롭게 보여 이곳만 별세상인 듯하다. 또 분재공원이라는 이름에 걸맞게 다양하고 멋진 분재들도 동백을 뒷받침하며 지루함을 거둬간다.

동백의 여운은 길게 이어진다. 분재공원 근처에 자리한 저녁노을 미술관에서 작가 13명이 동백을 주제로 한 그림 43점을 전시하기 때문이다. 작가들이 가슴으로 품은 동백을 만나다 보면 동백꽃의 속삭임이 마치 아름다운 멜로디처럼 들린다. 신안은 이제 천일염이 깔린 척박하고 아득한 섬이 아닌, 한겨울에도 붉은 동백이 카펫으로 깔리는 환상의 섬이다.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저작권자 © 코리아데일리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