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래를 부르는 일이 거스를 수 없는 길이었기에 갈 수밖에 없었고 지금의 그를 있게 한 원동력

귀공자풍의 얼굴, 세련된 춤 솜씨. 그리고 중후하면서 때로는 우수에 젖은 목소리로 60~70년대 한국 가요계의 독보적인 존재로 자리한 가수. 그는 여전히 젊고 건강한 모습으로 트로트 프로그램에서 종횡무진 활약하며 그 존재감을 확인시키고 있다.

1965년도에 데뷔했으니 가수 인생 올해로 55년째다. 반세기 넘게 한 길에서 한결같은 존재감을 가지고 대접을 받는다는 것은 말 그대로 천운을 타고났기에 가능할 일이다. 걸쭉한 전라도 사투리를 숨기지 않음으로 오히려 더 친근하게 다가드는 그는 익히 아는 대로 목포 출신이다. 그의 사투리 사랑이 전라도라는 다소 부정적인 인식에 맞서는 그만의 애향심의 표출이었다. 또한 목포에서 뿌리를 박고 목포를 지켰던 부모님에 대한 사랑이 전라도 사랑으로 확장됐다고 한다. 하지만 경상도 사랑도 그에 못지않다. 아내가 부산 출신에다 첫 히트곡 ‘울려고 내가 왔나’를 부산 보림극장에서 부른 인연이란다. 자칭 경상도와 전라도의 장벽을 허문 장본인이라고 말하며 호탕하게 웃는다.

예전, 분위기나 배경으로나 연예인에 대한 인식은 지금과는 사뭇 달랐다. 그도 역시 목포 지역유지였던 아버지로부터 적극적인 응원을 받지는 못했다고 한다. 듬직한 아들이 자신의 가업을 이어주기를 바라는 부모의 마음이 우리 정서에 더 어울리는 일이었으리라. 하지만 노래를 좋아하고 그 좋아하는 일로 평생 직업으로 삼고 싶은 자식의 마음을 어느 부모가 꺾을 수 있었겠는가.

얼추 계산해도 꽤 많은 나이가 됐을 그는 여전히 젊다. 화려한 의상을 입고 현란한 리듬에 맞춰 다리를 흔들며 노래하던 젊을 때 모습이 지금도 어색하지 않은 비결을 묻자 ‘노래’ 때문이라고 단호하게 말한다. 노래는 그의 인생의 전부였고 그의 오늘을 지키는 강력한 힘인 것에 의심의 여지가 없다. 그는 자신의 가수 인생을 운명이며 팔자라고 말한다. 거스를 수 없는 길이었기에 갈 수밖에 없었고 지금의 그를 있게 한 원동력이었으니 사람에게 숙명은 있는 모양이다. 그는 연륜답게 사람의 일에 운은 반드시 필요하다고 말한다. 어쩌면 노력보다 더한 힘을 발휘하는 게 운이라는 사실은 그가 걸어온 인생 여정의 진솔한 결론이리라.

나훈아는 언제나 그와 함께 자동으로 소환되는 가수다. 그들의 라이벌 구도는 본인들이 원하든 원치 않던 대중과 연예계라는 거대한 테두리가 만든 하나의 작품이란 것도 솔직히 밝힌다. 나훈아와의 인연은 그가 월남전에 참전하기 이전부터 시작됐다고 한다. 비슷한 시기에 활동하였으나 확연히 다른 결을 가진 남자 가수들은 라이벌 구도였기에 오히려 더 자극되고 더 발전할 수 있는 명분이 되었을 것이다.

남진이 트로트 열풍과 함께 왕성한 활동을 하는 사이에 다분히 은거하던 나훈아는 얼마 전 강렬하게 돌아와 한 곡의 노래를 이슈화시켰다. 그에게 나훈아의 귀환에 대한 소회를 묻자 우선 반가웠다고 말한다. 그러면서 각자의 성향이나 삶의 빛깔은 다르기에 존중할 필요는 있다고 말한다. 그의 활약에 따른 나훈아의 존재 여부도 그렇게 차별화하면서 받아들여 달라는 심중의 말로 해석할 수 있겠다.

그는 요즘 여러 오디션 프로그램 심사위원으로 맹활약한다. 특유의 친근한 입담으로 호평을 하면서 늘 긍정적인 시선으로 출연자들에게 격려를 전한다. 그리고 언제나 후한 점수를 준다. 그에 특별한 속내를 물었다. 그는 오디션에 참여하는 가수들이 아마추어 가수는 아니라고 말한다. 단지 무명일 뿐이지 이미 무대 경력 20년 가까운 베테랑들이라며 그들에게 자신이 단지 선배라는 이유로 평가를 하고 냉혹하게 지적을 할 수는 없단다. 단지 운이 좋지 않아서, 그날 컨디션에 따라서 실력 발휘가 안 될 뿐임을 잘 알기 때문이라고 변을 한다. 그리고 무엇보다 자신의 신인 시절이 떠오르기 때문이란다. 50년 넘은 지금도 무대에 오르면 떨리는 것은 여전하다고. 그의 따뜻한 품성을 느낄 수 있는 대목이다. 그리고 그가 그토록 오래 사랑받는 이유까지도.

트로트 열풍에 대한 이야기도 빼놓을 수 없다. 옛사람들이 유행 가수, 유행 가요라고 말하는 이유. 그만큼 생명이 짧고 바람 같은 연예계의 생리를 대변하는 말이다. 트로트 후배들에게는 예전 자신들이 노래할 때보다 월등히 좋아진 환경이나 조건을 백분 활용해 자기만의 색깔을 가질 것을 강조한다. 자신의 것이 기본이 되어야 생명력이 길다는 것. 신인 시절, 선배들이 먼저 사람이 되라고 했던 깊은 뜻을 이제는 잘 알겠다면서 후배들에게도 제일 먼저 갖춰야 할 덕목으로 인성을 강조한다.

자신의 인생을 돌아볼 때 가수 남진으로서는 성공했는지 몰라도 인간 김남진으로는 부족함 투성이었다고 자평한다. 그는 1남 3녀의 자녀를 두었는데 가장으로서, 아버지로서 소홀했던 것을 손자들에게 사랑으로 갚는다고 한다. 이어 소박한 소망으로는 손녀를 얻는 것이라니 그 꿈이야 곧 이루어질 일 아니겠는가.

특유의 소탈한 언변으로 시종일관 즐거움을 나누어주던 국민가수 남진. 그를 보며 나이가 주는 묵직한 연륜 속에 깃든 소탈함이 멋진 노래 속에 담겨 나온다는 것을 여실히 알 수 있었다.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저작권자 © 코리아데일리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