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근태 칼럼니스트.

주변에 걱정되는 사람들이 많다. 애들은 아직 어린데 회사에서 구조조정의 압력을 받고 있는 사람들이다. 그들 역시 자신의 문제를 알고 있다. 그런데 이들 중 상당수는 걱정만 할 뿐 그것을 해결하기 위한 별다른 노력은 하지 않는다. 거기에 대한 이야기도 회피하기만 한다. 그들이 걱정을 해소하기 위해 하는 유일한 일은 비슷한 사람들을 찾아다니는 것이다.

이미 회사를 그만둔 사람, 회사를 그만둘 예정인 사람들과 주로 어울린다. 그런 사람들과 놀다 보면 얻는 것이 있다. 우선 자신만 이런 어려움에 처한 것이 아니란 사실을 알게 되는 데서 오는 위안이다. 불황이 닥치고 세상이 바뀌면서 많은 사람들이 비슷한 문제에 직면한다는 사실을 발견한다. 혼자 당하는 것보다는 같이 당하는 게 낫기 때문에 그나마 위로가 된다. 재수가 좋으면 자신보다 훨씬 상황이 좋지 않은 사람을 발견하기도 한다. 그럼 내심 '그래도 재보단 내가 낫네‘라는 생각을 하며 며칠간은 속 편하게 지낼 수 있다.

이들의 가장 큰 문제는 기존에 자신이 하던 일 외에는 아무 관심도 흥미도 없다는 것이다. 당연히 호기심도 없고 질문도 없다. 그러니 발전할 계기도 없다. 이들의 수준은 학교를 졸업하고 자신이 속했던 조직에서 경험한 것의 틀을 벗어나지 못한다. 비슷비슷한 사람들과 매일 밥을 먹고 등산을 하니 생각 자체도 거기에 머문다. 발전 자체가 불가능하다.

발전은 언제 일어나는가? 새로운 것을 공부할 때 나온다. 공부하다 보면 호기심이 생기고, 거기에 대해 질문하고 답을 찾기 위해 더 알아보면서 발전하는 것이다. 세상에서 가장 위험한 일은 현재의 자신에 만족하며 제자리에 머무는 것이다. 이만하면 됐다고 생각하면서 더 이상 배우기를 멈추는 것이다. 박사 학위를 따고는 더 이상 공부하지 않는 사람, 취직에 성공한 뒤 자기 일은 끝났다고 생각하는 사람, 변호사 시험 합격을 인생 목표로 생각하는 사람들은 그런 면에서 위험하다. 목표를 달성하는 순간 삶의 의미를 잃기 때문이다.

난 말이 통하는 사람을 좋아한다. 다양한 소재를 가진 사람을 좋아한다. 호기심이 많고 좋은 질문을 하는 사람이 좋다. 현재 자신이 하는 일에 대해 통찰력을 갖고 계속 공부하는 사람을 좋아한다. 상대에 대해 관심을 갖고 뭔가를 물어보고 그 과정을 통해 화학반응을 일으키는 사람이 좋다. 반면 질문이 없는 사람, 호기심이 사라진 사람들과의 대화는 좋아하지 않는다. 남 이야기 하는 사람도 싫어한다. 나와는 아무 상관 없는 사돈의 팔촌 이야기를 길게 하는 사람은 질색이다. 정치인과 연예인을 주제로 오래 이야기하는 것도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이들을 보면 할 이야기가 있어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라 뭔가 이야기를 하기 위해 불필요한 화젯거리를 자꾸 끄집어낸다는 생각이 든다. 무엇보다 호기심이 없고 질문하지 않고 자기 이야기만 하는 사람을 싫어한다.

그런데 왜 이들은 질문하지 않는 것일까? 왜 이들에게는 호기심이 없을까? 공부하지 않기 때문이다. 아는 것이 너무 없기 때문이다. 아무것도 모르면 질문할 수 없다. 질문은 어느 정도의 지식이 있어야 가능하다. 내가 아는 것과 더 알고 싶은 것 사이의 간극을 줄이기 위해 나오는 것이 질문이다. 호기심도 그렇다. 평생 책 한 권 읽지 않고, 신문 한 장 보지 않는 사람에게 호기심은 존재하지 않는다. 심리학자 대니얼 벌라인(Daniel Berlyne)은 호기심에 대해 이렇게 주장한다. “호기심은 지식에 의해 생겨나는 동시에 지식의 부재에 의해 촉발된다. 어떤 정보를 접하면 그것이 무지를 자극해 알고자 하는 욕망을 불러일으킨다. 어떤 주제에 대해 무언가를 알게 되면 그 주제에 대해 모르는 것이 많다는 사실을 알게 되고, 간극을 좁히고 싶은 욕망이 생긴다. 음악적 뇌가 불협화음에 반응하듯 과학적 호기심은 지식의 빈틈, 지식의 간극에서 나온다.”

한마디로 호기심이 생기려면 그것과 관련해 일정 수준의 지식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아는 것이 아무것도 없으면 호기심도 질문도 나올 수 없다. 왜 사는 것이 힘들까? 세상은 빠른 속도로 변하는데 거기에 적응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기존의 알량한 지식을 가지고는 더 이상 먹고살기가 힘들기 때문이다. 방법은 한 가지뿐이다. 변하는 세상을 알기 위해, 자기 자신을 알기 위해 공부를 하는 것이다. 책을 읽고 다른 분야의 사람을 만나보면서 새로운 것을 공부해야 한다. 현재 아는 것과 더 알고 싶은 것 사이에 간극을 발견해야 한다. 정보 간극을 줄이고 싶은 충동을 느껴야 한다. 그게호기심이다. 호기심이 있어야 질문하게 된다.

(한근태 칼럼니스트. 한스컨설팅 대표. 미국 애크런대 공학박사. 대우자동차 최연소 이사. 서울과학종합대학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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