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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취재> "천탕산(陳唐山)과 김대중(金大中)은 정치적 신념의 동반자와 동지였다"천탕산(陳唐山) 前 타이완 총통부 비서실장 인터뷰
류재복 기자  |  yjb0802@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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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20.08.20  17:32: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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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취재>“천탕산(陳唐山)과 김대중(金大中)은 

                           정치적 신념의 동반자와 동지였다.”

   
천탕산(陳唐山) 前 타이완 총통부 비서실장 

천탕산(陳唐山) 前 타이완 총통부 비서실장 인터뷰 

김대중 전 대통령과는 재야시절, 워싱턴에서 교분 쌓으며 친교

최근 한반도 관계가 조금은 안정돼 가고 있다. 지난 8월 18일은 2000년 6월 15일, 남북정상회담을 역사적으로 성공시킨 김대중 전 대통령의 서거11주년이 되는 날이다. 특히 노벨평화상을 수상한 김 대통령은 동북아 한반도의 평화를 촉구하고 동시에 각국의 민주화 운동가들과 교류를 하고 서로를 소중히 여긴민주주의의 화신이다.

“아시아 만델라로 알려진 김대중 전 대통령은 태국에서 개최한 아시아 민주주의와 인권에 관한 국제회의에 적극 참여했으며 그와 비슷한 민주화 투쟁을 했던 넬슨만델라 전 남아프리카 공화국의 대통령은 자신이 가장 아끼던 손목시계를 김대중 전 대통령에게 선물한 일화가 기억에 남는다”고 천탕산(陳唐山)은 회상을 했다.

미국 망명시절 김대중 전 대통령은 필리핀 야당 지도자 베니그노 아키노 2세 (Benigno “Ninoy” Aquino Jr.)와 교류를 했으며 필리핀 아키노2세는 1983년 필리핀으로 귀국 시 암살되었지만 그의 부인 코라손 아키노(Maria Corazon “Cory” Cojuangco Aquino)가 아키노 2세의 뜻을 이어 필리핀 최초 여성대통령이 되었다. 아키노 2세도 자신이 가장 아끼던 수동식 타자기를 김대중 전 대통령에게 선물할 정도로 깊은 친분을 쌓은 바 있다.

陳唐山(Mark Chen)은 김대중 전 대통령이 재야시절, 워싱턴 D.C.에 있을 때 교분을 쌓았으며 서로 교류를 하였다. 천탕산(陳唐山)은 당시 워싱턴 타이완 고향 동호회 회장이었는데 그는 이 모임에 김대중 선생을 초청하여 연설을 듣기도 하였다. 천탕산(陳唐山)은 지난 8월 17일 타이페이에서 본지와의 인터뷰에서 "어려운 상황과 고난 속에서의 김대중 선생님의 민주화의 노력은 민주주의와 자유를 추구하는 많은 젊은이들에게 감동을 주었으며 그와 우리는 서로 민주주의와 자유를 추구한다는 공통된 이념을 공유하면서 동시에 서로 노력했다"고 말했다.

   
한국의 김대중 전 대통령과 함께한 천탕산(陳唐山)

천탕산(陳唐山), 타이완 독립 지지로 당국 블랙리스트에 올라

1986년 美 타이완 고향동문회 이끌고 서울서 김대중선생 만나

천탕산(陳唐山)은 1964년에 미국으로 유학을 갔고 당시 그는 타이완의 독립을 지지했기 때문에 타이완 당국의 블랙리스트에 올라서 타이완에 귀국 할 수가 없었다. 그의 부친은 1974년에 세상을 떠났고 당시 타이완 정부는 그가 부친의 장례식을 위해 타이완에 귀국하는 것을 허가하지 않았다.

이때 천탕산(陳唐山)은 “유교 사상에서는 부모가 돌아가시면 자녀들이 반드시 곁에서 임종을 지켜야합니다. 그러나 저는 미국에서 부친의 장례에 참석을 할 수가 없는 인생의 큰 비극에 접하게 되었습니다.” 라고 말 하면서 눈물을 흘리고 잠시 말문이 막히기도 했다. 천탕산(陳唐山)은 이후 여전히​​ 그의 신념을 포기하지 않았다.

   
한국의 김영삼 전 대통령과 함께한 천탕산(陳唐山)

“한국정부 권력자들에게 밉게 보였던 김대중 선생님은 용감히 그의 뜻을 이루기 위해 전진했고 이러한 정신이 저를 비롯 타이완 유학생들에게 큰 격려가 되었습니다. 김대중 선생님의 개인적 선택으로 말하면 미국이 더 안전하지만 그는 항상 진심으로 고국인 대한민국으로 돌아가고 싶다며 그 의지를 포기 하지 않으셨습니다.” 라고 천탕산(陳唐山)은 당시를 회상 했다.

천탕산(陳唐山)은 또 “김대중 전 대통령은 당시 정치활동으로 인해 무기징역을 선고받고 미국으로 망명한 상태였습니다. 그는 평생 여러 번 감옥에 갔고 암살위협도 직면했었습니다. 김대중 선생님과 저의 인연은 김대중 선생님이 귀국한 후에도 계속되었으며 저는 1986년 미국 타이완 고향 동문회를 이끌고 서울의 김대중 선생님을 찾아뵈었다”고 말했다.

천탕산(陳唐山)은 또 “김대중 선생님은 자신의 이상에 대한 끈기를 반영하는 거울과도 같으며 그분의 신념의 가치는 헤아릴수가 없고 자유와 민주주의를 추구하는 그의 영향력은 멀리 퍼져나갔으며 서로 다른 국가 간의 경계가 없을 정도로 영향력을 발휘하였습니다."라고 말했다. 그 후 타이완 정부는 1992년에 천탕산(陳唐山)을 블랙리스트에서 해제하였다.

   
인터뷰중인  천탕산(陳唐山)

1992년 블랙리스트에서 해제, 타이완 政界 입문 국회의원 돼

귀국하는 해, 한-타이완 국교단절에 아쉬움 표해

이에 천탕산(陳唐山)은 당시 미국상무부(U.S. Department of Commerce)직장을 그만두고 고향인 타이완으로 귀국하여 정계에 입문을 했다. 그 후 천탕산(陳唐山)은 타이완 민주주의운동의 선구자로서 타이완의 국회의원, 외무부장관, 총통부 비서실장, 국가안보위원회(National Security Council: 국정원)비서장을 역임했다.

“가시가 넘쳐나는 민주의 꽃길이라면 저는 후회 없이 끝까지 갈 것입니다” 라고 천탕산(陳唐山)은 고향으로 귀국을 하면서 말했다. 그는 또 영원히 “민주주의와 자유의 길을 택할 것”이라고 강조를 했다. 그러나 같은 해에 대한민국과 타이완 관계는 어려움을 겪고 말았다.

   
인터뷰중인  천탕산(陳唐山)

노태우 전 대통령이 1992년 8월 중화인민공화국과 외교 관계를 맺고 1949년 미국에 이어 세계 두 번째로 대한민국을 국가로 승인하고 공식 외교관계를 수립한 중화민국- 타이완과의 외교 관계를 단절했기 때문이다. 동시에 타이완은 대한민국과의 우대 무역 대우를 취소하고 양국 민간 항공 협정을 중단하는 등 보복 조치가 이루어졌다. 이후 대한민국과 타이완은 실질적인 교류와 협력을 촉진하기위해 각각 대표사무소를 설치했다.

김대중 선생과의 인연으로 천탕산(陳唐山)은 계속해서 ​​대한민국과 소통을 했다. 김영삼 전 대통령 및 대한민국정치 지도자들과 싱크탱크와도 자주 접촉을 했다. 현재는 대한민국을 방문하는 3위 외국인 관광객이 타이완이며 작년에는120만명 이상의 타이완 관광객이 대한민국을 방문했다. 2019년에는 총 124만명의 한국인이 타이완을 방문했다. 양국 무역은 작년에 미화 346억 5천만 달러에 달한다. 타이완은 지금 대한민국의 여섯 번째로 큰 무역 파트너다.

천탕산(陳唐山)은 “앞으로는 대한민국과 타이완 쌍방이 경제, 문화, 관광의 교류를 지속해서 강화할 수 있으며 동시에 지역평화를 촉진하기 위해 인도- 태평양 전략 하에서 서로 협력할 수 있다”고 강조를 했다. 그는 또 “정치인의 공과(功過)는 역사에 의해 평가됩니다. 그러나 오늘날의 세계에서는 강대국들과의 관계에서 혼란이 증가되고 지역안정도 심각한 도전에 직면하고 있습니다. 모든 인류 사회가 슬기롭게 난국을 헤쳐나간다면 기회를 잡을 수 있을 것으로확신한다”고 말했다.

   
기자들과 함께한 천탕산(陳唐山)

천탕산(陳唐山)은 또 “나 자신의 민주주의운동과 자유를 열망하는 길에 감명을 주신 김대중 전 대통령의 85세 일기를 보면 ‘돌아보면 나는 파란만장의 일생이었다. 그러나 민주주의를 위해 목숨을 바치고 투쟁한 일생, 그리고 경제를 살리고 남북 화해의 길을 여는 혼신의 노력을 기울인 일생이었다. 내가 살아온 길에 미흡한 점은 있으나 후회는 없다'고 말하신 민주주의의 위인 김대중 전 대통령을 기리고 있다.”고 말했다.

천탕산(陳唐山)은 타이완 민주주의운동의 선구자로 국회의원, 외무부장관, 총통부 비서실장, 국가안보위원회 (National Security Council: 국정원) 비서장을 역임했다.

<취재=류재복 大기자, 金勲, Adela L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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