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을 위한 봉사와 헌신, 그것이 절이 해야 할 입니다”

▲ 용호사 법호스님

[코리아데일리=장순배 기자]35년 전, 인천 서구에 온 법호스님은 우여곡절 끝에 법당을 세웠다. 갖은 행정적인 부딪힘에도 불구하고 절은 세워지기 시작했고 그렇게 해서 터를 잡게 된 사찰이 바로 서구 석남동(신석로51번안길 14-2)에 위치한 용수사다.

▲ 법호스님

용수사는 2014년 4월 21일 인천광역시의 문화재자료 제26호로 지정된 철조여래좌상(仁川 龍壽寺 鐵造如來坐像)으로도 유명하다. 그리고 그 불상과 함께 오랜 세월 용수사와 함께해 온 법호스님은 오늘도 이 시대에 불교가 해야 할 근본적인 역할에 대해 강조한다.

드러내기보다 뒤에서 묵묵히 헌신하는 도구가 되길…

5살 때 출가한 법호스님이 사찰에서 세월을 보낸 지는 벌써 65년이 다 되어간다. 그는 처음 출가했을 때의 은사를 아직도 잊지 못한다. 그 시절 그가 스승과 함께 전국 사찰을 돌아다니며 배운 것은 ‘베풂’이다. 그때의 가르침 때문일까.

법호스님은 용수사가 세워진 이후로도 절이 이 사회를 위해 해야 할 역할을 단 한 순간도 잊지 않고 있다. 어떤 방식으로든 이 사회에 기여할 수 있는 일을 찾고 사회봉사를 지속시켜나가는 것이 불교의 임무이자 자신이 이곳에 있는 이유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스님들이 받는 것에 익숙해지는 모습을 보면 안타깝지 않을 수 없습니다. 신문, 방송 등에 얼굴을 비치는 것에 관심을 두는 현상도 아쉽고요. 우리가 집중해야 할 역할은 그 어떤 것도 아닌 사회봉사인데 말입니다”

실제로 용수사를 바라보고 있노라면 다른 절들과 조금 차별화된 느낌을 받는다. 화려함이 없이 수수하고 단조로움으로 채워진 차별화 말이다. 누군가에겐 조금 허름해 보일 수도 있지만 그는 사람들의 눈에 만족을 주기 위한 꾸밈을 거부한다. 대신 사람들을 위해 자신과 절이 해 줄 수 있는 일을 더 고민한다.

▲ 용수사 전경

풍요롭지 않지만 나눔으로 풍요로워지는 곳

풍요로운 느낌이 들지 않는 용수사이지만 이곳에서 나누는 일들을 보면 어떤 일이든 풍요로움이 묻어난다. 지원이 넉넉하지 않은데도 용수사는 어떻게 해서든 힘이 닿는 대로 베풀려고 애쓰는 것이다.

▲ 용수사 큰법당 모습

법호스님은 용수사가 처음 세워지던 그 시절, 전・의경들에게 제공될 라면을 50박스, 100박스씩 차로 실어 보내던 일들을 떠올린다. 열악한 상황에서도 타인을 먼저 챙기던 그 일들은 힘들어도 잊을 수 없는 추억으로 남아있다. 그 이후로도 어려운 이웃을 위해 장학금을 주는 등, 용수사는 ‘절이 이 시대의 지역사회를 위해 나서야 할 일’들을 지속적으로 만들어갔다.

그중에서도 재소자, 출소자들을 위해 용수사가 한 일들을 보면 놀라움을 금치 못할 정도다. 인천구치소 종교인위원이기도 한 법호스님은 출소자들을 대상으로 수요일마다 상담을 하며 봉사활동을 해 오고 있다. 특히 유난히 더웠던 작년 여름에도 인천구치소 교정국에서 필요로 하는 물을 7000병 마련하여 올려주기도 하는 등, 그들의 요청을 외면하지 않았다.

또한 추석이나 설, 초파일, 2,300명가량이 되는 재소자들에게 떡을 해서 챙겨주는 것 역시 포기할 수 없는 일이었다. 재소자들뿐만이 아니라, 출소한 이후의 삶을 책임지기 위해서도 다양한 노력을 다하고 있다. 보호관찰을 통해 갱생에 기여하는 것은 물론 그들에게 일정 기간 먹여주고 재워주면서 기술을 가르친다. 무작정 물질적인 봉사를 하는 것만이 아니라 취직을 하여 삶의 기반을 마련할 수 있도록 뒷받침을 해 주는 것이다.

▲ 용수사, 철조여래좌상(인천문화재26호)

움직이는 신문고를 자처하다

법호스님은 지역에서 ‘직접 부딪히며 봉사하는 스님’으로 유명하다. 오랜 세월 주민과 같이 살면서 그들을 위해 도울 수 있는 일이라면 언제든 발 벗고 나서는 게 그의 일상이었다.

“가령 장갑 끼고 쓰레기를 줍는 것, 이런 것 하나하나가 저의 일입니다. 또한 스님들이 해야 할 역할이기도 하고요. 저는 어디를 가든 이런 일을 놓치지 않고 내 손으로 직접 해 보려고 합니다. 작아 보이지만 너무나도 중요한 일들이죠”

그가 지역의 길을 위해 하는 일은 쓰레기 줍는 일만이 아니다. 현재 이 지역에 깔려있는 시멘트 길 일부도 사실상 그의 끈질긴 노력 끝에 얻어진 일이다. 기존의 방식대로 돈을 걷어 시멘트 길을 만드는 것이 주민들에게 부담임을 잘 알았던 그이기에, 구청에 지속적으로 요청하고 설득하여 지금의 평평하고도 안정된 길을 얻을 수 있게 된 것이다. 그밖에도 주민들은 억울한 일, 당황스러운 일 앞에서 항상 법호 스님을 찾는다. 그만큼 법호 스님은 주민들의 신문고가 되기를 자청하며 도움을 청하는 주민들의 손과 발이 되어주고 있다.

어려움에 처한 이들을 외면하지 않는 일, 그것이 부처의 뜻을 사회에 실현하는 것임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는 법호스님은 오늘도 지역사회와 주민의 고충에 귀를 기울인다. 그런 발자취로 가득 차 있는 용수사 35년간의 역사는 앞으로도 그 맥을 계속 이어갈 것이다. 그리고 이 사회 속에서 불교의 진정한 가치를 드러내는 공간으로 자리매김하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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